정성진 교수의 새 저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출판사 펴냄)를 둘러싸고 트로츠키가 한국 사회에 주는 현재적 의미를 묻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은 정 교수의 저서에 대한 평가에 앞서 트로츠키의 삶과 사상이 한국의 진보 세력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짚는 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너희는 이제부터 영원히, 너희가 비롯된 곳으로 돌아가라, 역사의 먼지 속으로!"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앞두고, 혁명에 반대하며 소비에트 회의장에서 퇴장하는 온건파 사회주의자를 향해 이렇게 장엄한 외침을 남긴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도 '역사의 먼지' 속으로 돌아가길 거부한다. 아니, 우리가 그를 그렇게 보낼 수가 없다. 그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지금 우리가 트로츠키를 돌아봐야 할 이유
최근에 그의 이름을 불러내 마르크스와 나란히 세운 책이 나왔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그것이다. 요즘 그 책에 대한 서평 탓에 좀 떠들썩한 것으로 안다. 나는 책을 아직 꼼꼼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해 직접 언급하거나 논쟁에 뛰어들 처지도 아니고, 그럴 의도도 없다.
다만, 1917년 10월 혁명이 아흔 돌을 맞는 올해에 트로츠키를 다시 불러내는 두툼한 분량의 책이 국내 저자의 손으로 나왔다는 것은 일단 의미가 적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책을 훑어보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더 생각났다. 바로 아무도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2006년이 1956년으로부터 50주년이 되는 해였다는 사실이다. 1956년은 어떤 해인가?
1956년 2월 25일 새벽,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의 폐막을 앞두고 갑자기 대회장이 봉쇄한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예정에 없던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장장 일곱 시간에 걸쳐 계속 소개된 보고서의 내용은, 3년 전 죽은 스탈린 대원수의, '전 세계 노동계급의 영도자'라 불리던 그 사람의 (사실은 그 개인만이 아니라 그의 일파와 그 체제의) 죄상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제20차 당 대회의 스탈린 비판이 새로운 시대의 개막 선언인 줄 잘못 이해한 헝가리 민중이 그로부터 39년 전 10월의 러시아 민중과 똑같은 포즈로 역사의 무대 위에 나섰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회주의 조국'은 탱크로 대답했다. 이른바 '노동자 국가'에서 일어난 노동자·민중의 봉기, 헝가리 혁명이었다.
사회주의 조국의 탱크에 유린당한 헝가리 민중을 보며 가슴이 찢어진 서유럽 사회주의자는 결국 1956년 말부터 공산당을 집단으로 탈당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이른바 '신좌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20년 전에 연초에 있었던 흐루시초프의 지루한 연설보다 더 정확히 소련 '사회주의'의 문제를 꿰뚫고 또 한 번의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람을 재발견한다.
착잡하지만, 작정하고 낸 그 책의 제목도 다시금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배반당한 혁명>(김성훈 옮김, 갈무리 펴냄)이 그것이다. (편집자 : 트로츠키는 1929년 스탈린으로부터 추방당한 후, 암살 위협을 피해가며 터키,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1936년 이 책을 완성한다. 1937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결국 1940년 트로츠키가 멕시코에서 비극적으로 암살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바로 이 1956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작년에 '스탈린주의 대 제국주의'의 구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 한반도에서는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와 연관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왕년에 미국과 소련이 벌이던 핵무기 개발 경쟁 비슷한 일이 재연됐고, 남한의 좌파정당이 북한 정권과의 관계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아니, 지금도 와병 중이다).
이때마다 내가 주문처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름이 바로 '트로츠키'였다. 1917년의 승리를 통해 한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올 뿐만 아니라, 1956년의 패배를 통해 여전히 우리와 동시대인인 저 트로츠키 말이다. 그리고 그가 반백의 나이에 망명지에서 새롭게 시작한 투쟁을 새삼 다시 돌아보았다.
"관료주의적 전제체제는 소비에트 민주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비판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거를 하는 것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것은 볼셰비키를 비롯한 소비에트 내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의 회복, 그리고 노동조합의 부활을 의미한다. 산업 활동에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근로 대중의 이해에 들어맞도록 기존 계획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경제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함으로써 관료주의적 오류와 좌충우돌 때문에 생겨나는 비용 전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에트 궁전, 새로운 극장, 전시용 지하철 등 실속은 없으면서 비용만 많이 드는 사업들은 순위에서 노동자 주택단지 건설에 밀려날 것이다.
(…) 군대 내의 계급은 즉시 철폐될 것이다. 훈장의 번쩍거리는 쇳조각은 용광로 속에 던져질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 중)
이 짧은 문장이, 지금 이 사회에서 똑같이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 안에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미래의 절실한 과제일 수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종파주의'의 딱지를 붙일 이유가 될 수 있다. 거의 한 세기 전에 쓰인 글월이 아직도 이렇게 격한 찬반 대결을 낳는다면, 이런 현상을 '동시대성'의 징표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 아직도 이렇게 치열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꼭 그만큼 트로츠키는 21세기의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적이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자이기를 사양하는 이유
그럼 이 시대의 좌파는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뒤늦게라도 트로츠키'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운동을 만들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건 아니다," 이렇게 답하겠다. 트로츠키주의는 우리의 '교과서'가 아닐 뿐더러, 우리에게 새삼 또 다른 교과서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 속 혁명 사상의 '위대함'은 그것의 '해방을 지향하는 힘'에서 나온다. 가령, 우리에게 레닌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혁명의 공식과 상투어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서다.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잡동사니를 헤치고 혁명의 '정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한데, 그 '레닌'이라는 이름을 앞에 내건 '레닌주의'는 정작 또 다른 공식과 상투어로 변질하곤 했다.
트로츠키의 경우 이 반전은 좀 더 희극적인 양상을 띠었다. 한평생을 역사에 대한 진지한 응시와 현실에 대한 창조적인 돌출로 일관했던 트로츠키 자신과는 정반대로, 트로츠키주의의 역사는 지루하고 번잡한 교리 문답과 스콜라적 논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한계를 돌파하기에는 자기만족적이기만 했던 소규모 정파들의 가족 멜로 드라마였다.
지금도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들어가서 영어로 '트로츠키주의(Trotskyism)'를 검색해보면 나라마다 족히 열 개 아니 스무 개는 넘는 무수한 트로츠키주의 정파를 찾아낼 수 있다.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애초에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갈라져서 지금은 서로 어떤 심오한 차이를 갖는지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굳이 이런 역사까지 외국 것을 수입해서 반복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먼지' 속으로 돌아가야 할 것들 중의 하나일 뿐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간판을 내건 이론가나 활동가의 무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일 테다.
지금 우리에게는 한 나라 안에만 붙잡힌 시각으로는 그 한 나라의 변화마저 이뤄낼 수 없다는 각성과 한반도 안에 존재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한계와 모순을 돌파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동안 우리는 그 각성과 용기를 일깨우는 상징으로, 평생을 현실의 문제에 대한 각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용기로 일관했던 트로츠키, 그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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