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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익 제보자'의 끝은? 노숙인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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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익 제보자'의 끝은? 노숙인 신세!

식약청에 중국산 '가짜 참기름' 제보…신원 노출돼 '보복'

"수억 원대 가짜 참기름을 시중에 유통한 일당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적발됐습니다. 식약청에 적발된 가짜 참기름 제조업자는 이른바 보따리상을 통해 들여온 중국산 참기름과 식용유를 4대 6의 비율로 섞어 저질 참기름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만든 것처럼 원산지까지 허위로 표시했습니다."(2006년 5월 30일 <한국방송(KBS)> 뉴스 중)

지난 2006년 5월 29일 식약청은 중국에서 들여온 참기름을 이용해 가짜 참기름을 만들어 수억 원대의 이익을 챙긴 제조업자 5명을 적발해 고발했다. 당시 식약청에 이 사실을 제보한 이는 중국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국 장기거주자 유종열(59) 씨다. 그러나 유 씨는 6개월이 지난 지금 포상은커녕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먹을거리로 장난치는 것 못 참아 제보했는데…
▲ 유종열 씨의 제보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적발한 가짜 참기름. 이 사건은 한국방송(KBS)을 비롯한 언론에도 널리 보도됐다. ⓒ프레시안

유 씨가 지옥에 발을 디딘 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자신의 성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보따리상과 거래하던 그는 현지에서 생산된 중국산 참기름이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며 이를 일부 국내 기업이 국산인 것처럼 속이거나 식용유를 섞어 유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3일 기자와 만난 유 씨는 "일부 수집상은 보따리상(1인당 7㎏씩 참기름 휴대 가능)을 수십 명씩 고용하고 있다"며 "이렇게 수집된 참기름은 국내의 제조업체에 판매되어 국내산 참기름으로 둔갑하거나 또는 식용유 등과 섞인 저질 참기름으로 바뀌어 전국의 식당 등 시중으로 유통되고 있었다"고 자신의 제보 내용을 설명했다.

유 씨는 "이렇게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4월 10일 식약청 식품관리팀 중앙기동단속반을 직접 방문해 관련 사실을 제보한다. 그의 도움으로 식약청은 보따리상을 통해 들여온 중국산 참기름이 국산으로 둔갑한 사실을 확인하고 가짜 참기름 제조업체 5곳을 적발했다.

지난해 5월 29일 식약청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총 19만3878ℓ 20만 병 가량의 가짜 참기름이 유통됐다"며 "이 참기름은 중국으로부터 반입된 참기름을 국산인 것처럼 거짓 표시하거나 식용유와 섞어 만든 저질 가짜 참기름"이라고 발표했다. 이 모든 게 유 씨의 제보 덕이었다.

제보 후 돌아온 것 '보복'뿐…고발, 출국 금지 등

바로 그 시점부터 유 씨에게는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중국인 부인이 거주하고 있는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유 씨는 자신이 출국금지된 것을 알게 됐다. 한 참기름 제조업체가 자신을 '신용 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이었다. 그 참기름 제조업체는 유 씨가 식약청에 제보한 후 참고인으로 조사 받을 때 언급한 참기름 제조업체 A 기업이었다.

애초 유 씨는 이 기업을 가짜 참기름 제조업체 중 한 곳으로 지목했었다. 당시 식약청은 이틀간의 잠복근무를 한 뒤 "별다른 혐의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 기업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어떻게 알았는지 "유 씨가 본사를 가짜 참기름 제조업체로 지목했다"며 그를 신용 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유 씨는 "중국에서 계속 가명을 사용해 왔는데 해당 제조업체에서 어떻게 내 정확한 인적 사항을 알고 신용훼손으로 고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내 정확한 인적사항은 참고인으로 진술할 때 식약청에 알린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식약청에서 해당 업체에 자신의 인적사항과 제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의혹 제기인 것이다.

이런 의혹에 대해 식약청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식약청은 현재 유 씨를 돕고 있는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측이 관련 의혹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정식 공문을 통해 "A 기업이 유 씨를 고발한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만 답했다. 유 씨의 제보를 통해 가짜 참기름 제조업체를 적발한 식약청으로서는 무책임한 해명이다.

지옥 같은 6개월…그 끝은?

이렇게 식약청이 외면하고 있을 때 유 씨의 처지는 더욱더 어려워만 갔다. 지난 여름 국내의 한 과수원에서 3개월간 막노동을 해 모은 돈도 이젠 다 떨어졌다. 휴대전화는 끊어진 지 오래고, 중국에 있는 가족과의 전화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돼 의지할 사람도 없다.

유 씨는 식약청의 해명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는 "내 제보로 식약청은 가짜 참기름 제조업체를 적발하는 과정을 KBS의 한 프로그램(좋은나라운동본부)에 내보내기도 했다"며 "이렇게 이용은 실컷 하고 제보 탓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 씨는 "이 일을 겪고 나니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제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에서 좋은 일을 위해 제보를 하려고 하면 절대 못하게 말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방세를 못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의 한 쪽방에서도 쫓겨날 처지다.

먹을거리로 장난치는 것을 못 참아 의롭게 나선 사람이 노숙인이 되는 세상, 그게 바로 2007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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