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재까지의 협상 수준에서 체결될 경우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 중 15%가 개정 또는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같은 상충 법률의 개수는 협상이 진행되면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왔다.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 소속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과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16일 오전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최재천 의원실과 범국본이 지난 한달 동안 각계 전문가 17명을 동원해 1~5차 협상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내법 1163개 가운데 헌법을 포함해 169개의 법률이 한미 FTA와 상충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최재천 의원과 범국본은 이미 지난달 한미 FTA와 상충되는 국내 법률이 10%가 넘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보다 정밀한 분석을 하고 보니 상충 법률의 개수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공공 분야서 상충법 다수 발견돼…부동산 관련법도 우려
최재천 의원과 범국본에 따르면 서비스 분과와 금융서비스 분과에서는 각각 52개와 27개의 상충 법률이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서비스 분과에서는 특히 교육, 방송·통신, 가스, 발전정비 등 공공 분야에서 다수의 상충 법률이 발견됐다.
또 금융서비스 분과에서는 상법, 은행법, 보험업법, 증권거래법, 외국환거래법 등 현행법은 물론이고 재정경제부가 제정하려고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에도 한미 FTA와 상충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분과에서는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기반시설 부담금에 관한 법률 등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법령들이 한미 FTA와 충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 분과에서는 조세특례 제한법 등 조세 관련법이나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 남북관계 관련법 등에서도 다수의 상충 법률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최재천 의원 "미국은 안 하는데 왜 우리만?"
현재 한미 FTA와 충돌하는 법률에 대한 조사 및 분석은 법무부가 아니라 외통부 통상교섭본부 산하의 법무팀(legal office)이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 FTA와 상충하는 국내법의 개수는 36개뿐이라고 국회에 보고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 한미 FTA 소위원회 위원장인 이찬진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공개한 협상 정보가 한정돼 있고, 정부가 상충 법률에 대한 정부 측 정보를 공개하라는 우리 측 요구도 거부함에 따라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전제한 후 "169개의 상충 법률은 (정부 측 반박을 예상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선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협상 정보가 더 나오면 개폐 위기에 처한 국내 법령의 개수가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외통부는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한미 FTA에서의 미국 측 요구사항과 국내 법령 사항 간 상충 여부는 협상이 타결돼 최종 협정문이 확정돼야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밖에 최재천 의원은 "국내 법률이 무더기로 개정·폐기돼야 할 위기에 처한 것뿐만 아니라 미국 측은 우리나라에 새로운 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가령 미국 측은 (지난 5차 협상 때) 지적재산권 단속과 관련해 양형기준을 만들라고 우리 측에 권유했는데 이는 1차적인 양형 권한을 쥔 국회의 입법권과 2차적 양정 권한을 쥔 법원의 사법권을 동시에 다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은 1994년 도입한 '우루과이라운드 이행법(URAA)'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과 국내법이 상충될 경우 철저한 '국내법 우선주의'를 택하기로 한 바 있어 앞으로 있을 한미 FTA 협상에서도 추가적인 법 개정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실제로 미국 측 협상단은 협상 시 자국법의 개폐가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협상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이유로 논의 자체를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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