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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보호법'으로 '인간 광우병' 막아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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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보호법'으로 '인간 광우병' 막아내겠다고?

[한미 FTA 뜯어보기 181 : 기고] 유시민장관, '농장에서 식탁까지' 국민건강 지켜야

2004년 12월 일본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간광우병(vCJD,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중년의 남자였다. 이 충격적 사실을 조사해 발표한 일본의 장관은 후생노동성의 오츠지 장관이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약 지금 한국에서 인간광우병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발병 원인을 조사하고 예방대책을 발표해야 할 장관은 누구일까? 바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장관은 2006년 6월 '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광우병을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고시했다. 이처럼 유 장관에게는 인간광우병의 위협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킬 법률적 의무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안 사먹으면 그만?

세계 최초의 인간광우병 희생자는 1994년에 죽은 19살의 영국 청년이었다. 사람이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소 광우병과 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는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에 의하더라도 치료방법이 없다. 쇠고기를 끓이거나 삶아 먹어도 발병 원인물질인 프리온 단백질을 거의 파괴시킬 수 없어 이 병을 예방할 방법도 사실상 없다. 결국 최선의 예방대책은 원인물질이 유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현재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이 발생한 나라 가운데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그러기에 미국산 쇠고기를 안전하게 수입하는 문제는 유시민 장관에게 매우 중대한 숙제다.

'미국산 쇠고기를 안 사 먹으면 된다'는 것은 유 장관의 답이 될 수 없다.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는 학교 급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먹어도 되는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하는 것이 유 장관의 책임이다. 하지만 유 장관은 여태 이 숙제를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쓰레기 만두' 파동 후…'식품안전기본법'의 좌절

2006년 3월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고시를 만든 것은 순전히 '가축 전염병 예방법' 제32조와 제34조에 따른 절차를 밟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이름 그대로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을 전염병에서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어떻게 소와 돼지의 건강을 지키는 '가축전염병 예방법' 절차가 인간광우병 무대 위에서 단독으로 공연될 수 있을까? 한국에는 '식품안전기본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 통합적인 식품안전 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세계 식품법의 흐름을 여태껏 수용하지 못했다. 유럽연합(EU)은 2002년 새 식품법을 제정해 유럽식품안전청(EFSA)을 신설했다.

일본도 2003년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해 내각부에 식품안전위원회를 설치했다. 바로 이 위원회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권한이 있다. 일본 총리대신이 이 위원회의 위원들을 임명하려면 일본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004년 이른바 '쓰레기 만두'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통합적인 식품안전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국무조정실은 2005년 2월 식품안전기본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먼지만 뒤집어쓴 신세다.

물론 유 장관은 이러한 식품안전기본법의 좌절을 핑계 삼아 무대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유 장관에게는 '전염병예방법'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이 있다.

'있지도 않는 국제기준' 선전하는 정부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안전하게 수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한국은 '태어난 지 30개월이 넘지 않은 소는 안전하다'는 게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은 모든 수입 쇠고기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한 결과 30개월령 이하의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되자 이를 근거로 삼아 20개월령이 넘는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해 정부는 '우리나라는 뼈를 제거한 살코기만 수입하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국정브리핑>은 '오해를 털고 실리를 챙기자 ④'는 제목의 글에서 "OIE는 뼈의 유무와 상관 없이 30개월령 이하의 소에 대해 안전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보다 더 강화해 30개월령 이하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키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가 관영매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병일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미 FTA 역전 시나리오>에서 "한국은 30개월 이하의 소라면 뼈의 유무를 떠나서 안전하다는 OIE 기준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OIE의 안전기준에도 '뼈를 제거한 근육살(deboned skeletal muscle meat)"이 안전하다고만 명시돼 있다(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 2.3.13.1.조). '뼈의 유무를 떠나서 안전하다'는 국제기준은 없다.

아직도 팽배한 '조국 근대화'의 습관

이처럼 정부가 국민에게 기초적 정보조차 제대로 제공하는 틀을 갖고 있지 않고, 식품안전기본법조차 없으며, 소와 돼지의 건강을 지키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고, 나아가 이런 일이 널리 통용되고 합리화되고 칭송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세히 살펴볼 지면은 없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 특히 주류사회가 공적 가치를 패대기치며 폭주한 '조국 근대화'의 습관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리가 있다면 한미 FTA를 체결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광우병의 위협을 국민이 떠안는 것이 'FTA 가입비'라면 그런 FTA는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수출이 더 늘고 총생산량이 늘어난다 한들 다 같이 잘 살 수 없다.

유시민 장관이 인간광우병 진단 부검 능력을 갖춘 공식의료기관을 처음 지정한 때가 2006년 4월이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뇌를 부검하여 인간광우병 여부를 판정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결국 관건은 미국산 쇠고기를 안전하게 수입하는 것이다. 유 장관으로부터 그 대책을 듣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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