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라츠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에 석유를 넣지 않는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0여 년간 동서 유럽의 관문 역할을 했던 그라츠가 21세기 '석유 시대'와 '탈(脫)석유 시대'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미래의 수송연료로 각광 받고 있는 '식물연료'가 있다.
고소한 냄새 풍기는 버스
도시 서쪽에 위치한 그라츠 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역 앞 광장에 길게 늘어서 있는 초록색의 벤츠 버스들이다. 시내 곳곳을 운행하는 150대의 버스는 단 한 대도 예외 없이 모두 바이오디젤유(BD100)로 움직인다. 이 바이오디젤유는 모두 그라츠 시, 인근의 레스토랑, 가정에서 수거된 폐식용유를 원료로 만든다.
버스뿐만이 아니다. 그라츠 시에서 운행하는 택시의 60%도 바이오디젤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라츠 대학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버스, 택시에 100% 폐식용유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디젤유를 사용한다"며 "버스 뒤에 서 있으면 매캐한 냄새 대신에 감자를 튀길 때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식용유로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독일의 기술자 루돌프 디젤이 1900년 프랑스 파리 자동차 박람회에 내놓은 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 자동차 '오토 컴퍼니'는 콩기름으로 움직였다. '사막의 여우' 로멜 장군이 전차를 움직일 연료가 부족하자 전차에 경유 대신 폐식용유를 넣어 위기를 극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숨은 일화다.
그러나 이렇게 콩기름과 같은 식물 기름을 이용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했다. 값싼 석유의 등장으로 콩기름으로 가는 자동차를 상상했던 디젤의 꿈은 20세기 내내 유예되었기 때문이다. 1985년 미텔바흐 교수가 식물 기름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폐식용유 수거해 버스 연료 생산
그라츠 시가 미텔바흐 교수의 바이오디젤유에 처음 주목한 이유는 대기오염 탓이었다. 미텔바흐 교수는 "산으로 둘러싸인 그라츠는 특히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했다"며 "바이오디젤유(BD100)는 경유에 비해 미세먼지가 55.4%나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오염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서울시가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그라츠 시는 우선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내뿜는 운송수단인 버스에 이 바이오디젤유를 넣기로 결정하고, 1994년 처음으로 2대의 버스에 바이오디젤유를 넣었다. 이렇게 시작된 '에너지 전환'은 10년 만인 2005년에 완성되었다. 그라츠의 가장 큰 택시 회사(Taxi 878)가 이런 에너지 전환에 동참하면서 그라츠 시는 자동차에 석유를 넣지 않는 도시로 더욱 가까워져 갔다.
바이오디젤유의 원료가 되는 폐식용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미텔바흐 교수는 "그라츠에서 쓰이는 폐식용유는 시내와 반경 50㎞ 이내의 레스토랑,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 등에서 나온다"며 한 주일에 2~3번 정도 자동차가 다니면서 수거하는데 그 양은 연간 2000~3000t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폐식용유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면 연간 40만~50만t의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과 비교했을 때 오스트리아의 식물연료 정책은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세계가 바이오디젤유에 주목하고 있다"며 "시작할 때만 해도 채 20년도 안 돼 세계의 주목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덧붙였다.
지구 온난화 막는 식물연료
미텔바흐 교수의 지적대로 상황이 변했다. 1990년대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이 전 세계 국가의 화두가 되고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발효가 임박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식물 연료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했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수송 연료를 대체할 수단으로 식물 연료가 떠오른 것이다.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3억2000만t 줄여 교토의정서가 규정한 감축 목표량(1990년 대비 평균 5.2%)의 95%를 달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식물 연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여줄까? 바이오디젤유(BD100)를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78% 낮아진다.
바이오디젤유와 같은 식물 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탁월한 것은 식물 연료가 콩, 유채, 야자수처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식물에서 직접 나오기 때문이다. 식물이 자라면서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디젤기관이 연소해 다시 배출하는 식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EU는 바이오디젤유나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식물성 기름을 통틀어 '수송용 식물연료'로 규정하고 그 사용 범위를 확대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3년 EU는 2010년까지 수송연료의 5.75%를 식물 연료로 대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전체 수송연료의 25%를 식물연료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5년 현재 그 점유율이 0.97%에 불과한 것에 비춰보자면 대단히 야심만만한 계획인 셈이다.
20㎞마다 식물연료 주유 가능해
2000년대 들어 계속된 고유가 사태는 바이오디젤유와 같은 식물연료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 세계에서 바이오디젤유 생산량, 소비량이 가장 많은 독일의 경우 2000년 24만9000t에 불과했던 바이오디젤유 생산량이 2005년 235만t으로 늘었다. 독일 전국 1900곳 주유소에서는 직접 소비자에게 바이오디젤유(BD100)를 주유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에너지·환경 연구소의 귀도 라인하르트 국장은 "독일에서는 20㎞만 가면 100% 바이오디젤유(BD100)를 넣을 수 있는 주유소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 곳곳에서는 벤츠, 아우디와 같은 디젤 엔진 승용차에 서슴지 않고 바이오디젤유를 넣는 시민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슈트트가르트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팀 폴머(31) 씨는 자신의 아우디(A6) 승용차에 바이오디젤유를 넣고 있었다. 폴머 씨는 "자동차 회사에서 요구한 대로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에 BD100을 넣어도 문제 될 게 없다"며 "경유에 비해서 싼 데다 환경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바이오디젤유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란 경유에 비해 점도가 높은 식물연료에 열을 가해 기체 상태로 디젤기관에 분사하는 장치다. 독일에서는 일부 승용차에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식물연료나 BD100을 넣을 때에는 이 장치를 부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필터가 막히는 것과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거꾸로 가는 한국
그라츠에서 수송연료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던 2006년 11월 말, 한국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있었다. 자동차를 개조해 폐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한 오 모(45) 씨가 연료장치 불법개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것. EU에서는 바이오디젤유뿐만 아니라 순수 식물연료도 수송연료로 규정해 적극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폐식용유를 정제해 순수 식물연료로 개발한 네오텍의 이근태 대표는 이렇게 '거꾸로 가는' 한국에서 가장 큰 피해자다. 이미 2년 전에 식물연료 활성화 장치의 국산화까지 성공해 놓았지만 정부가 순수 식물연료를 수송연료로 인정하지 않아 속만 탈 뿐이다. 그는 이렇게 씁쓸하게 말했다.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는 자발적인 흐름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절망이 깊어간다"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물연료, '밭에서 캐는 황금' 맞아?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과 같은 식물연료는 최근 '밭에서 캐는 황금'이라고 선전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뜨거운 관심의 한편에서는 과연 식물연료가 지구 온난화를 막으면서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연료인지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디젤을 최초로 개발한 화학자 미텔바흐 교수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쟁점에 대해 물었다. 미텔바흐 교수는 그라츠 대학에서 가장 바쁜 교수 중 하나다. 인터뷰를 한 2006년 11월 22일의 바로 전날까지도 그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그는 마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8월을 포함해 네 번에 걸쳐 한국을 찾아 국내 사정에도 밝았다. - 2005년 독일의 자동차업체는 새로운 디젤엔진 승용차에 바이오디젤유(BD100)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산화질소(NOx)를 엄격히 규제한 새로운 '배기가스 배출기준(Euro Ⅳ)'을 바이오디젤유가 만족시키지 못한 탓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바이오디젤유는 경유와 비교했을 때 오염 물질이 급격히 저감되지만 유독 산화질소가 증가한다. 한국에서도 이것을 이유로 바이오디젤유의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버스, 트럭처럼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을 많이 내뿜는 디젤엔진 자동차의 경우에는 바이오디젤유를 사용했을 때의 장점이 월등하다." - 월드워치연구소와 같은 기관은 식량 문제를 이유로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콩(바이오디젤), 밀(바이오에탄올), 옥수수(바이오에탄올)와 같은 식량 작물이 수송연료로 쓰이는 데에 부정적이다. 더구나 일부 환경단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만드는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이다. 우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부가 열대우림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까지 플랜테이션을 조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환경단체가 계속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지금 나는 콩, 팜 대신에 자트로파와 같은 식물로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연구 중이다. 자트로파는 독이 있어서 먹지 못하는 데에다 열대 지방에는 지천에 널려 있다. 이렇게 쉽게 수확할 수 있으면서도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 식물에서 바이오디젤유를 얻어낸다면 식량 작물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바이오에탄올의 경우에는 최근 셀룰로오스를 에탄올로 전환하는 효율적인 과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짚, 줄기, 나무껍질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굳이 식량으로 쓰이는 데에다 물 낭비도 심한 밀, 옥수수를 생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 옥수수와 같은 작물을 재배해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 전 과정을 염두에 두면 화석연료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효율, 환경 영향 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옥수수에서 생산된 바이오에탄올이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다는 연구도 있었다. "옥수수에서 생산하는 바이오에탄올의 경우에는 논란이 있다. 여러 가지 연구가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정확히 뭐가 맞는지 말하기 어렵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이오디젤의 경우에는 그런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바이오디젤은 경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 - 바이오디젤과 같은 식물연료를 이용해 지금처럼 자동차 시대를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식물연료는 석유의 3분의 1 정도를 대체하는 것이 최대일 것이다. 그럼 그 나머지는? 30~50년이 걸리겠지만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등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두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하지 않을까? 전체 에너지를 염두에 두면 바이오에너지, 지열, 풍력, 태양 에너지 등이 10~20%씩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 1980년대 중반이면 석유 값이 매우 쌀 때다. 그 때 바이오디젤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 놀랍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항상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린피스의 회원은 아니지만 그들의 활동에 관심도 많고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화학자로서 지구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물연료 연구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불과 20년 만에 이렇게 전 세계가 나의 연구에 관심과 성원을 보낼 줄 몰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과학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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