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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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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FTA는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입니다"

[리처드 스톨먼의 강연(2)] 미국식 기준의 문제점

미국은 할 수만 있다면 유사한 법을 다른 나라에도 강요하려고 합니다. 전형적으로 이른바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것을 이용합니다. 이에 대항해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싸워나가야 합니다. 미국은 흔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미국의 명성은 과거에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날 파시스트 국가의 특성을 목록으로 뽑아보면 미국이 그것에 꽤 부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합니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미국 대통령은 두 번이나 선거를 훔쳐서 당선된 사람입니다. 미국은 재판 없이 사람들을 투옥하고, 사람들을 고문하고, 공격과 정복의 전쟁을 벌입니다. 미국은 당신이 꼽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혐오스러운 일들을 다 저지르고 있습니다.

FTA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빈껍데기로 만드는 것

FTA는 세계 다른 나라들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FTA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빈껍데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FTA들이 명시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내가 아는 사례 중 이런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입니다. 이 협정에는 흥미로운 규칙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법률 때문에 기업이 돈을 적게 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기업은 정부를 제소해서 법이 달랐다면 자사가 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금액을 지급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환경이나 대중의 건강, 또는 삶의 일반적인 기준 등 중요한 무엇인가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할 경우에 그렇게 되도록 하려면 기업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조약은 기업이 시민보다 더 중요하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잔혹무도한 행위입니다.

민주주의의 목적은 일반 대중이 부자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중은 서로 단합하는 것을 통해서, 다른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부자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FTA는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입니다.
▲ 리처드 스톨먼. ⓒ 프레시안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같은 예전의 자유무역 조약에는 이런 조항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런 조약들도 나름대로의 효과를 통해 지금도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약들을 통해 기업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해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매수된 정치인들에게 빌미를 주었습니다. 대중이 그들에게 환경이나 공중보건, 삶의 기준 등 대중에게 유익한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들은 "그렇게 하면 기업이 다른 나라로 가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여러 자유무역 조약들로 인해 기업은 국가들을 서로 대치시키며 갖고 놀 수 있게 됐고, 국가는 기업들의 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경쟁을 벌일 뿐 자국 시민의 권리는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약들은 민주적이지 못한 정부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민주적이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기업에 넘겨주었습니다. 이건 잘못된 일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국제무역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무역은 모두를 이롭게 한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부분은 말하지 않습니다. 국제무역을 증진하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업들이 몰려다니면서 더 많은 권력을 달라고 각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게 놔두면 안 됩니다. 우리는 국제무역의 증진도 민주주의가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국가는 기업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하며, 기업에 대한 규제를 통해 대중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안 되는 커다란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제 외에 저작권의 유효기간을 늘리려는 한미 FTA의 사악함 역시 그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런 사악함은 상대적으로 작은 이유일지는 모르지만 조약을 거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물론 FTA를 거부해야 할 중요한 이유들은 얼마든지 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미국이 좋아하는 조약은 모두 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미국 정부는 '기업 제국(corporate empire)'의 꼭두각시입니다.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것은 미 제국주의가 아니라 기업 제국입니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 정부는 기업들의 하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워싱턴에 있는 정부를 주인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기업들에 복종하는 집행자일 뿐입니다.

비민주적인 정부들이 저작권법에 대해서 하고 있는 짓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적인 정부라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저작권을 여러 다양한 측면에서 줄일 것입니다. 먼저 저작권 보호기간을 들어봅시다. 지난 수십 년 간 저작권 보호기간이 점점 더 연장되는 동안 출판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졌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책이 나오면 2년 정도 시장에서 유지될 뿐입니다. 2년이 지나면 모든 책이 할인가격에 팔리고 3년 안에 절판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100년 동안이나 저작권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10년으로 줄일 것을 제안합니다. 출판 날짜로부터 10년으로 하자는 겁니다. 저작자가 원고를 하나 갖고 있는데 그 원고를 책으로 내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고 합시다. 그걸 복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잃을 것은 없습니다. 저작자가 얼마든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출판사를 물색하도록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책이 한번 출판되고 나면 그 책의 저작권은 10년 동안만 지속돼야 합니다. 그 뒤에는 그 책이 공유정보 영역(퍼블릭 도메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0%의 진실과 90%의 거짓

이런 나의 제안이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하실 겁니다. 나는 여러 작가들과의 토론회에서 이 제안을 던지고는 그들의 반응을 듣고자 했고, 실제로 반응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상 경력이 있는 한 판타지 작가가 내 옆에 앉아 있다가 "10년이라니! 끔찍하다! 5년 이상은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놀랍지 않습니까? 실은 나도 놀랐습니다. 나는 출판업자들의 선전을 믿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저작자들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더 길게 보장받기를 원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또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작자들이 출판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출판사들은 저작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앞에 저작자들이 무릎을 꿇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작가가 출판사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의 출판계약에 따르면 책이 다 팔리고 나면 저작권은 그에게 반환돼야 합니다. 그 뒤에는 그 책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이 다 팔려 사실상 절판됐지만 출판사는 저작권을 반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이 계속 배포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출판사와 법적 분쟁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마찰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출판업자들은 작가를 핑계 삼아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90%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은 절반의 거짓말은 완벽한 거짓말보다 더 나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절반의 거짓말에서는 무엇이 정말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를 알아내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기업들은 공정하지 못한 것을, 즉 절반의 거짓말보다 더 나쁜 '10% 진실, 90% 거짓말'인 것을 잘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작가들을 위해 저작권 강화를 원한다고 할 때 그건 10% 진실, 90% 거짓입니다.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성공적인 작가가 일부 있고, 그런 이들은 저작권 강화를 통해 실제로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작가들도 있고, 그런 이들은 출판업자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작권 강화를 통해 혜택을 입지 못 합니다. 혜택을 입는 것은 대부분 출판사이고, 그에 더해 몇 안 되는 유명한 작가들뿐입니다. 법적인 쟁점을 이야기할 때 출판사는 대리인과 함께 누가 들어도 아는 유명작가를 대동합니다. 아무도 대부분의 다른 작가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변화의 시작으로 출판 후 10년을 보호기간으로 제안합니다. 저작권 보호기간을 일단 10년으로 줄이고, 그런 다음 몇 년 동안 그 결과를 두고 보자는 겁니다. 이보다 더 줄일지, 아니면 늘릴지는 그 다음에 결정하면 됩니다. 경과를 지켜본 후에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호기간은 저작권의 한 측면이고, 또 다른 측면은 저작권이 어떠한 활동을 규제해야 하는가입니다. 이런 측면에서의 나의 제안은 모든 저작물에 대해 똑같지 않습니다. 나는 저작물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되는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는가에 따라 3개의 큰 범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매체에 따라 저작물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체가 큰 차이를 낳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용자들이 어떠한 자유를 누려야 하는가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저작물이 어떻게 이용되고 어떻게 사회에 이익을 가져다주는가가 판단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범주들은 첫째 우리가 실제의 기능을 하는 저작물인 기능적 저작물, 둘째 어떤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저작물, 셋째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저작물로 나눠집니다.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첫째, 어떤 일을 할 때 사용되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저작물입니다. 이 범주에는 프로그램, 요리법, 교과서나 매뉴얼과 같은 교육용 저작물, 백과사전이나 사전과 같은 참조용 저작물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저작물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이것들은 모두 자유롭게 이용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근거에서입니다. 만일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일에 그 저작물을 이용하고 있을 때 당신이 필요한 방식으로 그 저작물을 수정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저작물을 당신의 사용목적에 맞게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했다면 당신은 수정된 버전을 자유롭게 공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약 당신과 같은 필요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수정한 버전으로부터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데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20년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용자들을 제약하고 사용자들이 좀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하는 구조가 없다면 저작물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런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압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매우 성공적인 자유 소프트웨어 공동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수천 개의 유용한 자유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왔습니다. 많은 경우 개발자는 사용자를 제약하지 않는 방법으로 돈도 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능적 저작물의 영역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위키피디어만이 아닙니다. 위키피디어의 정보와 다른 종류의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일반 대중이 그 정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협력하는 사이트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거에 이야기했던 우려들은 허상이라는 것이 이제는 아주 명확해졌습니다. 우리는 저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자들의 자유를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내게 하곤 하던 질문에 대해 답하려 합니다. 그것은 자유 소프트웨어의 이념이 얼마나 넓게 확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인 일을 하는 데 이용되는 모든 종류의 저작물로 이 이념이 확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목적의 저작물이라는 범주 외에 두 개의 범주가 더 필요합니다. 두 번째 범주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범주의 저작물이 있습니다. 이런 저작물들의 수정된 버전을 공표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자유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범주의 저작물에 대해서는 절충적인 저작권 시스템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절충적인 저작권 시스템에서는 모든 사람이 저작물의 정확한 복제본을 비영리적으로 배포할 자유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개작과 모든 상업적 이용은 여전히 저작권에 의해 보호되며, 여전히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최소한의 자유를 부여합니다. 인쇄기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저작권이 산업적 규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저작권의 험악한 측면, 즉 음반회사가 사람들을 고소해서 그 사람들이 일생 동안 벌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음반회사들은 사람들이 단지 음악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절충적인 저작권 시스템에서도 상업적인 이용은 여전히 저작권의 적용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현 저작권 체제와 마찬가지로 저작자들에게 수입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잃게 되지는 않습니다.

저작권법이 있었다면 셰익스피어도…

세 번째 범주는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저작물입니다. 이 범주에서는 개작의 문제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저는 몇 년 동안 고민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상반된 주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어떤 하나의 저작물은 예술적 완결성(integrity)을 갖는 것이고, 저작물을 수정하는 것은 그 완결성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때로 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저작자나 예술가들이 자기 저작물의 완결성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들이 많은 돈을 받는 대가로 기꺼이 할리우드로 하여금 자기 저작물을 훼손하게 하는 것을 보십시오.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 저작물의 개작이 유용하다는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에 기여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민속문화의 전개과정을 보면 모든 저작물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으로 전파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내용이 풍부해지고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유명한 작가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쓰기 위해 최근의 다른 저작물에서 스토리를 빌렸습니다. 만일 오늘날의 저작권법이 그때 적용되었다면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쓰거나 발표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는 지금 그의 작품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셰익스피어가 만약 그렇게 빌려 쓰려고 하는 저작물의 저작권 소유자들에게 저작권 탓을 하며 불만을 제기했다면, 그들은 아마도 "당신은 우리의 작품을 빌려가 싸구려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 쓰레기를 누가 필요로 하겠는가"라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볼 수 없었다면 그들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보았고, 그것은 인류 문학의 걸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고 발표할 수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의 희곡들 중에는 그가 죽은 뒤에 출판된 것도 많지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어쨌든 출판됐습니다. 오늘날의 저작권법이 적용됐다면 그것들은 출판되지 못했거나 상연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희곡의 저작권 소유자들은 지극히 엄격합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수정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내용 상 아주 작은 수정도, 희곡이 상연되는 방식의 수정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술 저작물의 개작은 예술의 발전을 위해 사회에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해답을 찾은 것은 예술 저작물의 개작이 비록 사회에 이로울지라도 시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그것은 10년 정도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당신 삶에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기능적 저작물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그 기능적 저작물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당장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정된 것을 공표하고 싶다면 내일이면 공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그것을 이용하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위해 그것을 이용한다면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예술은 문제가 다릅니다. 우리는 예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예술을 개작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물론 좋은 일일지라도 사회는 당신이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까지 10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에도 절충적인 저작권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은 저작물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도록 하되, 누구나 비상업적으로는 그 작품 그대로의 정확한 복제본을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업적인 이용이나 개작을 위해서는 허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이용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10년 동안 보호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는 그 저작물이 공유정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누구나 그것을 개작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새로운 예술의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절충적 저작권 시스템으로도 여전히 예술가들에게 수입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작권이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긴 할 겁니다. 특히 인터넷 음악 공유는 합법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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