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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내야 하나?"

"총독부 100년 기념과 마찬가지" vs "2007년 역사인식 수준"

서울대병원이 13억75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광혜원) 122주년 기념사업'이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가 2007년에 나올 예정이다. 의사학(醫史學)계 일각에서는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세운 대한의원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의 발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나온다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의 우표실 관계자는 5일 "이번 주에 확정돼 발표될 예정인 2007년도 우표 발행계획에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기념우표는 서울대병원이 2005년에 발행 신청을 했으며, 올해 4월에 열린 우표심의위원회에서 발행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당시 우표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한 심의위원은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외에 '대한변호사협회 100주년 기념우표'도 심의대상에 들어 있었다"며 "대한변호사협회 100주년 기념우표에 대해서는 친일에 앞장섰던 대한변호사협회를 기념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제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 사적 248호로 지정된 대한의원. 이 건물은 1907년 대한의원으로 지어진 후 조선총독부 의원, 경성제국대 부속병원으로 사용되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병원 본관 건물로 쓰였다. 현재는 박물관이 들어섰다. ⓒ프레시안

이 심의위원은 "우표 발행을 희망하는 연도의 2년 전 12월까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우표 발행 신청을 하면 우표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다"고 절차를 설명하면서 "역사학자도 포함된 이 위원회에서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과 관련한 논란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의원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게 의사학계의 중론이다. 의사학계의 한 중진 학자는 "서울대병원 내에서도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놓고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마당에 기념우표까지 발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원,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로 1907년 설립돼

의사학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세운 대한의원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의 소산이며 한국 의학의 미래에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는 3월 15일로 설립 100주년이 되는 대한의원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지시로 1907년에 설립됐다.

1906년 통감부가 발행한 <한국시정일반>은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사토 육군 군의총감에게 명령해 1906년부터 경성 동소문 내의 장소(현재 서울대병원)를 부지로 해 공사에 착수했다"고 기록했다. <한국시정일반>은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친히 이를 대한의원이라고 명명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대병원 측의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의 문제점을 최초로 공론화한 연세대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는 "1907년은 을사늑약으로 우리가 실질적 주권을 상실하고 통감부의 지배를 받던 때였다"며 "이토 히로부미는 이완용, 이지용 등 매국에 앞장 선 고위관료와 함께 조선 통치의 현안을 논의했고, 대한의원 설립이 논의된 곳도 바로 이 자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의원의 초대 원장은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이었으며, 대한의원이 생긴 후 이 기관과 관련해 대중의 이목을 끈 최대 사건은 1909년 총리대신 이완용의 입원이었다.

대한의원, 근대의학에 과연 기여했나?

근대의학에 대한 기여의 측면에서도 대한의원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대한의사학회장을 지낸 기창덕 박사가 자신의 저서 <한국근대의학교육사>에서 대한의원에 대해 "외관으로는 한국인을 위한 최신식 의료시설로 선전됐으나, 실은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 관리 및 그 가족, 그리고 일본인 거류민의 보건을 위한 의료시설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조선총독부가 펴낸 <총독부통계연보>를 보면 1908년에서 1910년 사이에 경기도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18.9%가 대한의원을 이용한 반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0.5%만 이 기관을 이용했다.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연세대병원 측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의원이 자생적인 근대의학의 성장을 좌절시켰다고 주장한다.

연세대의대 박형우 교수(의사학)는 "통감부가 그에 앞서 대한제국이 세운 3개 의료기관(광제원, 의학교, 대한적십자병원)을 통폐합함으로써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보건의료체계를 확립하려 한 대한제국의 노력은 좌절됐고, 이들 기관은 식민지 의료기관으로 전락했다"며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건물을 서울대의대와 서울대병원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로 내세우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 총독부 건물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건물로 내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조선총독부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과 똑같은 일"

박형우 교수는 "한국사회 내에서 통감부, 총독부 설치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는 일이 용납될 수 없는 것처럼 통감부 정치의 산물인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도 용납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둘러싸고 연세대병원 주도로 전개되고 있는 이같은 비판적 논의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신동아> 9월호에서 "식민지 역사가 부담스럽다고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대한의원은 근대 의료개혁 사업의 내적 성과와 식민지성의 결합체 또는 혼합체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표 발행, 주먹구구식 아닌가?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새삼 국내 우표 발행의 관행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국가의 역사와 각 시기 서민의 삶을 담게 되는 우표 발행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현재 우표 발행은 우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어 있으나 다분히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우취계(郵趣界)의 한 관계자는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우표 발행은 특히 그 권위가 없다"며 "우표심의위원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이런 사정이니 특정 기관이나 우취계의 요구가 여과 없이 그대로 우표 발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된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또 다른 우취계 관계자는 "우표는 국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각 시기 역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도면 충분하다"며 "예를 들어 2005년 2월 발행된 이른바 '황우석 우표'가 황 박사의 사기행각이 드러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 시기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황 박사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역시 2007년 한국사회의 역사인식 수준에 대한 증거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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