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전통이 있었는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에게도 그런 전통이 있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3)] 우울한 현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라 시대의 화랑 관창 이후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나라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솔선수범으로 헌신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그리고 한말의 민비 시해사건 이후 경향 각지에서 유학자들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일이 그 좋은 증거다. 한일합방이 되자 온 집안이 의병과 독립운동가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왕산 허위 일가와 6형제가 모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몸 바친 우당 이회영 집안, 그리고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 가문 등 우리나라 3대 항일 명문의 일화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부터 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300년 10대에 걸쳐 만석의 부를 세습한 경주 최부자 집안은 서구의 어느 귀족이나 부자보다도 '가진 자'의 책무를 훌륭하게 실천한 사례다. 현대에 와서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며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유언장 한 장 남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같은 분의 일화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미담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개발연대의 압축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국가가 어려울 때에는 존재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지금 없어졌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늘날 우리의 노블레스들은 항일투쟁같이 싸워야 할 일이나 상대가 없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경유착이나 편법상속 같은 일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부 부유층 자제들은 서구의 귀족들처럼 솔선수범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 되어 남들이 다 가는 군에도 안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우리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다. 이제 우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부문화의 정착을 통해 새롭게 싹을 틔워야 한다. 선진국들에는 나눔의 미덕이 기부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 와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기부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고로 인정이 많았다. 지금도 그 인정은 수재나 화재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도처에서 목격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베풂은 다분히 일회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의 70%가 연말연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기부는 개인(30%)보다는 기업(70%) 중심이며, 정기적 기부자(18%)보다는 비정기적 기부자(82%)가 더 많다.

선진국의 기부는 우리와는 반대로 소액의 개인기부가 중심이며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기부하는 정기기부가 대종을 이룬다. 선진국 시민들에 있어 기부는 일상적인 일이다. 소액기부라 하지만 미국인들은 연평균 140만 원을 기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5만7900원을 기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크게 차이가 나는 액수다.

우리 기부문화의 주인공은 아직도 할머니들이다. 요즘도 김밥 할머니, 떡장수 할머니, 삯바느질 할머니들은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그야말로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쾌척하여 우리를 감동시킨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사회에서 빼앗기기만 했던 김군자 할머니는 2006년까지 세 번에 걸쳐 전 재산인 1억1000만 원을 장학기금 등으로 내놓아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세계 11위권의 무역대국이자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의 국민이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노력을 노쇠하신 할머니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에게도 나눔과 공익을 표방한 재벌들의 자선재단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재단들의 상당수가 공익사업은 체면치레로 쥐꼬리만큼 하면서 2세, 3세에 대한 편법상속을 하거나 세금 빼돌리기 등의 창구로 활용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자식에게 남길 재산은 있어도 사회에 남길 재산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일면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참 좋은 말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실종된 말이고 역사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사어가 되고 있는 단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나눔의 정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나눔의 문화가 부족하다. '가진 자'들이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가도를 달려 왔다. 그동안 국민 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나라가 이제 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어엿한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나누는 것보다는 파이를 키우는 데에만 온 국민이 몰두해 온 세월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좀 살 만해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엔 부자도 많아 생겼지만 아직 소외된 이들도 많다. 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끼니 해결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잠자리가 없어 노숙을 하는 이들도 있으며, 독거노인들과 소년소녀 가장도 허다하다.

그러나 불우한 이웃에 대한 우리 사회지도층의 관심은 아직 부족하다. 그동안 우리는 내 한 몸 잘 살고 내 가족 잘 지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가족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어려운 시절을 겪어 온 국민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나라 전체가 이만한 위치에 왔으면 이제 우리도 나눔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학자들은 세상이 앞으로 80대20의 사회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20%의 가진 자들이 80%의 못 가진 자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결코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이 사회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듯하다. 양극화의 조짐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깊어지면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 공동체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이윤 창출에 드는 비용보다 많아져 사회의 존립까지도 어려워진다.

자선적 기부는 이러한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나라에만 의존해서는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나눔은 계층 간의 격차를 갈등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며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아직도 나누기보다는 모으기에 급급하다. 나와 내 가족이 잘 살기 위해 모으고 더 많은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모은다.

이제 우리의 부자들도 다 같이 잘 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빌 게이츠는 "부자들은 사회에 특별한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우리의 재벌들도 세계의 부호 리스트에 심심치 않게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세계적인 기부자 리스트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기부현실을 떠올리면 우울해진다. 우리에게도 고액 기부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지 못한다. 특히 2006년에 있었던 몇몇 대기업의 황급한 기부는 그들이 아무리 '아무 조건 없음'을 강조해도 국민들 눈에는 면죄부와 맞바꾸려는 시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돈을 기부한다 해도 그 기부가 대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기부가 아니다. 그런 기부는 그 행위 자체가 선행이 아닌 것은 물론 순수한 기부의 의미를 훼손하며 순수 기부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나아가서 건전한 기부문화의 정착을 훼방하기까지 한다.

아직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아서일까. 선진국에 비해 우리 사회지도층의 기부문화는 초라하다.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전통도, 자녀에게 나눔을 가르치는 가정교육의 전통도 없다. 천박한 사치의 문화, 과시의 문화는 만연해 있으나 나눔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를 축적한 신흥 노블레스는 생겼으나 그들은 오블리주를 행하지 않는다.

카네기가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썼다는 각서에 "부의 축적은 가장 나쁜 종류의 우상숭배 가운데 하나다. 그 어떤 우상도 돈에 대한 숭배만큼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존경받는 부자가 나와야 할 때다. 어떤 국가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나라의 위상에 걸맞는 시대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은 지금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이다. 한국이 강하고 품위 있는 국가로 오랫동안 존속하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확립해야만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