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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사회적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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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사회적 책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1)] 의미와 유래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 동안 <프레시안>에 'CEO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재해 기업인과 직장인들의 호평을 들었던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가 이번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관한 글로 <프레시안> 독자들과 만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 노동자, 농민, 서민 등 기층 민중의 희생 위에 국민경제의 생산력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추었고,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 보다 성숙한 나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권력, 부, 명예를 가진 지도층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그런 책임의식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종석 교수가 보내온 글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사회지도층에게 여러 모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소재를 제공해준다고 판단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주제를 요모조모 살펴본 예 교수의 글을 10여 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들은 이달 말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살림출판사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편집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노블레스는 원래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뜻이고, 오블리주는 동사로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중세의 귀족들은 신분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래 그러한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상응하는 도덕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용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귀족이라는 사회적 신분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졌고 오늘날에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사회지도층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사회지도층의 책무', 즉 부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갖고 있는 지도층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용어가 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프랑스의 작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Gaston Pierre Marc)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면서 1808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영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저술가였으며 미국에서의 결혼생활 중 노예해방을 주장하기도 했던 프란시스 켐블(Frances Anne Kemble)이 1837년에 작성한 한 편지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구절이 등장했다고 한다.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대표작 <고함과 분노>, <에밀리를 위한 장미> 등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존재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한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고 한다.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투에서 전체의 3분의 1이 죽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 귀족들은 이처럼 노예와 귀족의 차이를 사회적 책임 이행능력에서 찾았다.
  
  초기 로마시대의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서 앞장서는 것은 물론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검소한 삶을 살고 과소비를 하지 않았으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지 않았고,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존재 때문에 로마에서는 국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지도층에게는 높은 도덕성과 함께 남다른 의무가 지워졌다. 지도자가 특권을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솔선수범하면서 부를 사회에 환원할 때 존경받을 수 있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재임 중 국가가 어렵거나 돈이 필요할 때 개인 돈으로 국고를 네 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다던 로마인들로 하여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무려 1000년 동안이나 강한 국가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을 성경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즉, 누가복음 12장 48절의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는 대목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근원으로 보는 것이다. 또 프랑스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을 1808년에 레비(Levis) 공작이 저술한 <격률과 교훈>이라는 책에 나오는 "귀족은 물론 높은 지위에 오른 인사들은 누구나 자신의 품격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구절에서 찾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노블레스'의 본래 뜻인 귀족을 확대해석한 것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대적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는 있다. 우리의 역사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시대 지배층의 역사적 정통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통성 있는 세력이 그 시대를 지배할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시대의 정신으로 자리 잡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것이 실종된다는 것이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흔히들 알고 있는 당나라의 군사지원보다 화랑으로 대표되는 신라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는다.
  
  "서기 660년 김유신의 동생 흠춘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에게 수세에 몰리자 아들 반굴에게 '지금이 충과 효를 함께 이룰 수 있는 기회'라면서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반굴의 장렬한 전사를 본 장수 품일은 자신의 아들 관창에게도 같은 행위를 요구했고, 두 장수 아들의 전사는 신라 군사들의 마음을 격동시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김유신의 아들 원술은 나당전쟁 때 석문전투에서 패전한 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이들은 자식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김유신이 누구도 불가능하게 여겼던 평양 식량수송 작전을 자청했던 서기 671년 겨울 그의 나이는 이미 67살이었다. 그러나 김춘추는 험한 뱃길과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고구려, 왜국, 당나라를 돌아다니며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반면 백제는 의자왕과 호족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한창이었고,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 사이의 권력투쟁 끝에 장남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했다.
  
  세 나라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이가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의 정신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행동철학이다."

  
  그러고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사회지도층의 행동철학인 셈이다. 물론 세상이 변하면서 사회지도층의 의미도 달라져 왔고 그들의 책무도 달라졌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귀족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노블레스의 자리는 권력을 가진 정치가나 재력을 소유한 자본가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이나 왕족의 책무가 아니라 '가진 사람'들의 책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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