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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건 '나프타'덕, 잘못된 건 '멕시코'탓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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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건 '나프타'덕, 잘못된 건 '멕시코'탓이라니

[한미FTA 뜯어보기 64][멕시코 논쟁(끝)] 정부와 <국정브리핑>의 자가당착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을 둘러싼 논쟁이 얼마 전부터 정부와 방송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멕시코 논쟁'이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한미 FTA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의를 풍부하게 해주는가 싶었지만, 정부가 '멕시코의 양극화와 나프타는 관계없다'는 앵무새 소리만 반복하면서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일 MBC <PD 수첩>은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 FTA'라는 프로그램에서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1994년 미국과 FTA를 맺은 후 멕시코 경제와 사회가 어떤 부작용을 겪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한 일간지에 이를 반박하는 광고를 싣는가 하면 <국정브리핑>을 통해 연일 <PD 수첩>의 "편파" 보도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글들을 게재했다. 비판의 핵심은 <PD 수첩>이 고의로 멕시코 사회의 어두운 측면만 비췄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공격에 <PD 수첩>은 18일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 FTA 2편'을 방송해 맞대응했다. 이 방송에서 <PD 수첩>은 최신 데이터와 멕시코 학자들의 설명을 동원해 '나프타 이후에 멕시코의 양극화는 심화되지 않았다'는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재반박했다.

이제 다시 정부의 차례다. 정부는 이번에는 어떤 논리로 <PD 수첩>을, 나아가 한미 FTA에 대한 비판자들을 반박할 것인가.

페소화의 위기와 나프타를 분리해 보는 '무식의 극치'

멕시코를 둘러싼 논쟁이 한미 FTA를 위한 생산적인 논쟁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나프타가 멕시코에 초래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멕시코의 양극화는 오로지 나프타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단순무식한' 사람들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나프타 비판자들은 나프타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나 협정이 아니라 멕시코 정부가 198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 온 규제 철폐, 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나프타는 이런 흐름을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 이른바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를 발휘한다는 점을 끈질기게 지적해 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나프타의 비판자들이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그저 나프타 하나만으로 멕시코의 모든 부정적인 현상을 설명하려 든다며 비난한다.

이런 비난 중 백미는 "멕시코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나프타 때문이 아니라 1995년에 발발한 멕시코의 페소화 위기 때문"이라는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의 주장이다. '데킬라 위기'라고도 불리는 페소화 위기란 1995년 멕시코 경제가 겪은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액의 급감, 이로 말미암은 페소화 가치의 폭락을 의미한다. 당시 페소화의 가치는 단 6개월 만에 50%가량 급락했고, 이에 따라 달러로 표시된 정부부채 부담이 급증해 멕시코는 심각한 경기침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주장을 두고 좋게 말해 '무식해서 용감'하다고밖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학계에서 페소화의 위기, 나프타, 그리고 양극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의 연구 결과들이 이 세 가지 요소의 필연적인 상관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페소화 위기, 나프타, 양극화 이 세 가지를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은 나프타 옹호자들은 페소화 가치의 하락과 그에 따른 멕시코 경제의 침체는 멕시코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과 환율 정책이 실패한 데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당시 멕시코는 달러화에 대한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환율정책을 통해 '페소화 위기'를 피하거나 최소한 그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살리나스에게 환율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최근 많은 학자들은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페소화의 가치는 나프타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폭락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멕시코 정부가 나프타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출지향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인하는 것이었다. 외자는 198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멕시코 경제를 건져올릴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됐다. 그런데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달러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된 페소화였다. 페소화의 가치가 높은 탓에 1990년대 초반 멕시코의 대미수출은 감소했고 대미수입은 급증했다. 반면 멕시코의 노동비용은 상승했다. 나프타를 체결해 해외투자자를 유인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페소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시기였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은 페소화 평가절하의 시기를 '고의로' 늦췄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페소화의 가치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국내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해 1994년에 있었던 멕시코 대선에서 살리나스의 후계자인 어네스토 세딜로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고평가된 페소화가 1991~1994년에 미국에 한시적인 대(對)멕시코 무역흑자를 선사해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나프타에 찬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열' 증세 보이는 정부

멕시코 논쟁에서 드러난 정부의 '빈약한 논리'는 결국 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하는 근거로 삼는 논리의 '위험성'으로 귀결된다.

18일 <국정브리핑>은 <PD 수첩>이 방영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PD 수첩>에게: 카메라가 균형을 잃었을 때'라는 글을 게재해 나프타가 발효한 후 멕시코에 들어온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하지 않은 채 가계대출과 수수료 인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과점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늘리고 임금을 올려주지 않고 가격을 올려 이익을 챙기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수익 중시 경영" 때문이지 FTA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브리핑>은 "(<PD 수첩>은 멕시코에 대해) 농업 등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쇠락하고, 양극화 심화로 도시 거리에는 노점상과 저임금 근로자가 늘어나고, 사회보장제는 후퇴"하는 등 "세계화, 정보화,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선진사회 어디에나 있는 오랜 '그늘'을 세밀한 카메라로 들췄을 뿐"이라며 "사실 한미 FTA 협상은 성장의 한계점에서 나타나는 이런 상황들을 풀기 위해 내놓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고심에 찬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정부는 나프타가 발효된 후 멕시코에서 기업대출의 감소,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 농업의 쇠퇴, 양극화의 심화, 사회보장 제도의 후퇴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났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나프타의 결과가 아니라 멕시코에 들어온 초국적 기업들이 이윤추구 활동을 한 결과, 즉 세계화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서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논리 속에서 정부가 그토록 염원하는 '한미 FTA'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더 높은 수준의 경제 세계화인가, 아니면 세계화가 아닌 그 무엇인가? '좌파 신자유주의'도 이 정도면 '논리의 빈약'을 넘어 '정신분열증' 수준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다 멕시코가 못나서…우린 멕시코와 다르다'?

방송과의 전쟁을 겪다보니 이제 '멕시코 논쟁'에 있어 정부의 논리는 자못 선명해졌다. 한마디로 멕시코 경제 중 잘된 것은 다 나프타 덕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멕시코 본인이 못나서라는 것이다. 즉 국내총생산(GDP)과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증가는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이고 노동여건의 악화, 투기자본의 득세, 사회·경제적 양극화 등은 멕시코 내부의 개혁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정부는 "2006년 한국경제와 1992년 멕시코경제의 본질적 차이점"으로 "경제발전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과 "개방의 역사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장개방 전략을 선택해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와 있는 한국을 개방의 역사도 짧고 국제경쟁력도 낮은 멕시코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멕시코가 못난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정부의 실패'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국정홍보처,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등 핵심 관련부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국책연구원이 '멕시코 논쟁'에서 자가당착의 태도를 보이며 국민들을 '한미 FTA'라는 도박장으로 밀어넣고 있는 모습을 보면 슬프게도 그 위에 '멕시코보다 더 못난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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