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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산업정책 기능을 버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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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산업정책 기능을 버리려는가

[FTA 대안은 있다(2)] 위험천만한 노무현의 도박

자유무역협정(FTA)은 국가 간의 계약이며 어느 일방에 의해 쉽게 파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협정이 체결된 뒤 그 효과는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느린 경우에는 10여 년에 걸쳐 나타날 수도 있다. 협정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하고도 포괄적인 구조적, 인과적 분석을 하지 않고 협정의 세부적인 내용 하나하나가 가져올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에는 협정 체결 이후에 구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치명적인 부작용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이런 구조적, 인과적 분석은 고사하고 근거도 불분명한 모델을 통해 추정한 경제적 효과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한미 FTA는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 하나만 달랑 내세운 채 한미 FTA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고 한 달 만에 뚝딱 미국 측의 요구를 거의 전부 수용한 협정 초안을 만들어냄으로써 미리부터 백기를 든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제 나라 백성들에게는 협상 내용을 비밀에 붙인 정부가 과연 앞으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현재의 정부는 책임을 질 의지도 능력도 없음이 분명하다.

한미 양국 정부가 1차 협상까지 마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한미 FTA가 초래할 수 있는 단기적, 중기적, 장기적인 산업구조 변화, 그리고 복지 및 분배 구조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살펴본 연구보고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우리의 교역 상대국인 미국과의 교역조건이 한미 FTA로 인해 변화할 경우 그것이 국내 자원배분과 산업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FTA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한미 FTA와 관련해 우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이 질문은 다른 어떤 질문에 비해서도 먼저 답변돼야 한다. "한미 FTA로 인해 초래될 산업구조의 변화가 국내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거나 지속가능한 차세대 경제성장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계속 묵묵부답이다. 아니, 정부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데 필요한 연구조차 돼있지 않다. 5~10년 뒤에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 있는 한미 FTA를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여도 좋은 것인가?

한미 FTA와 관련한 비판에 대해 정부는 흑백의 단순논리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국제화, 개방화의 21세기에 보호무역주의, 경제 쇄국정책을 해야 한다는 거냐고 정부는 반문한다. 또한 외부충격 없이 미래의 전략적 성장산업인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만들어내겠다는 거냐고도 한다. 미국과의 FTA를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 앞서 우리가 먼저 체결하지 않으면 최대 수출시장을 빼앗길 위험이 있다고 위기의식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와 청와대의 이러한 윽박지름 속에서, 그리고 그들이 설정하는 논쟁구도 그 자체 속에서 정부와 청와대의 무능력을 본다. 우리는 그 속에서 미래를 향한 생산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독선과 지배의 논리를 본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가 곧 FTA 일반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쇄국과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화와 시장개방은 19세기부터 꾸준하게 진행되어온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역사발전과 진보의 방향이다.

호혜평등의 국제질서와 다양성에 대해 인정함으로써 그런 것들이 곧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국제 경제공동체의 건설이야말로, 또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각국의 역량과 각국에 주어진 환경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제협력이야말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모든 민중들이 힘을 합쳐 이뤄내야 할 미래의 모습이다.

FTA는 바람직한 국제관계와 국제 경제공동체 건설을 앞당기는 아주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낮은 노동비용과 높은 자본수익만을 쫓는 근시안적 비교우위론이 아니라, 그래서 결국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각국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호혜적 국제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 필요한 국가 간 분업구조를 창출해야 하고, 그것에 조응하는 각국 국내의 산업구조 재편을 이루어내야 한다.

아울러 세계는 공동의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국의 경제력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각국의 문화와 국민적 가치의 다양성이 더욱 활발하게 꽃피울 수 있는 방식으로 FTA를 설계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국이 추구해야 할 현재의 주력산업, 미래의 주력산업, 차세대 성장모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또한 차세대 성장모델에 대한 합의로부터 이행의 전략을 도출해야 하며, 그 이행의 전략을 근거로 해서 FTA의 기본적인 성격과 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경제협력은 에너지, 통신, 물류 등을 포함하는 국제적인 인프라 구축, 관세 및 투자 서비스 부문의 교역구조, 각국 자원배분 동학 변화, 각국의 산업구조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국제 분업체제 구축, 그리고 금융 및 화폐 협력 혹은 통합, 정치-사회-문화적 통합과 공동외교라는 적어도 6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지역수준의 경제통합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건 중 하나는 참여국들 모두에 대한 호혜, 평등, 다양성이 보장되는 국제적인 분업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이며, 참여국 간의 발전단계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즉 참여국들 간의 구조조정이 동반되지 않고는 바람직한 경제통합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역구조 재편은 이러한 국제적 분업구조 재조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 중의 하나이며, 목적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가 구조동학적 분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FTA 일반, 특히 경제통합이라고 불러도 좋을 한미 FTA 체결은 교역구조의 변화에 따라서 심각한 자원배분상의 동태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쉽게 말해 교역구조 변화에 따라 수익성이 높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사이에 불균등한 성장이 일어나게 되고, 자원배분이 일어나게 되는 금융시장이 이윤논리에 민감하면 할수록(아시아 금융허브는 이러한 경향을 필연적으로 강화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질 국내 산업연관 구조변화가 과연 소망스러운 것인지,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이다.

또한 국내 산업연관 구조가 변화할 경우 그것이 지역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역내 분업구조 재편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의 여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역내 분업구조상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보완관계보다는 경쟁관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자원배분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폭은 심각하게 제약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활로가 미국경제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물론 교역구조의 변화 그 자체만으로 국내 자원배분, 국가 간 분업구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실 자원배분의 동학이 진행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규정력은 교역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각국의 성장모델과 관련된 국가적 전략이다. 따라서 교역구조의 변화가 자원배분의 흐름을 변화시켜 국내 및 국가 간 분업구조 변화를 가져올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주요 교역상대국의 중장기 재정정책 및 산업정책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정책과 법적, 경제적 제도와 관련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한 무능력의 표출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이러한 필요를 간단하게 외면해 버렸다. 단기적인 무역수지 증가 효과, 개방은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근거 없는 신념 앞에서,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적인 자원배분,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교역구조 결정에 관한 경제주권을 포기했다. 아마도 이러한 포기 결정의 배후에는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고백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인식과도 논리적 연속성을 가진다.

권력이 시장에게 완전히 넘어간 현실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정부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시장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보다 더 생산적,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정보는 그동안 국가의 산업정책 및 과학기술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특히 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1970년대의 직접적인 개입과 규제 외에,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감시를 피해 암암리에 이루어진 선별적 기업 지원책 외에는 대안적 산업정책, 21세기 산업정책의 전형을 창출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복지 및 환경정책 외에는 거의 없다. 정부정책의 무력성과 관련된 현실인식은 관련 정부부처의 정책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현실인식은 이러한 상황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정부의 역할과 능력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시대적인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그 대신 고령화 시대의 도래에 따른 복지와 환경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좌파적 가치를 유지하자는 게 대통령의 진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판단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시대적 불가피성, 대안의 불가능성을 핑계로 삼아 노무현 정부가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시대인식의 철학적 관점 부재로 인한 것이다. 권력은 단 한 번도 시장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시장에 이양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은 자유경쟁이 일어나는 장소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말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기업, 특히 대기업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권력이 넘어간 것이 아니라 정부의 경쟁력이 기업에 비해 현격한 차이로 뒤떨어진 것이다.

국가 혹은 정부는 여전히 사회 전체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조직이다. 연간 가용자원 규모로 볼 경우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그룹조차 2003년 기준 순수익이 6조 원에 불과한 반면 정부의 2006년도 예산은 222조 원에 달한다. 게다가 정부의 역량을 결정하는 힘의 원천은 가용자원의 규모가 아니라 국민적 동의와 지지에 의해 작동되는 정치적 지도력과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 혹은 정책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도력은 제 아무리 큰 가용자원을 가진 사기업이라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권능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시장권력론'을 운운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국가적 산업정책이 존재할 수 없다'는 언급은 무지에 근거한 주장일 뿐이다.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실시하는 과학기술정책, 경쟁정책, 금융정책, 환경정책, 교육정책 등이 모두 21세기형 산업정책의 한 표현 형태이며, 미국의 경쟁, 혁신, 과학기술, 지식기반 정책들도 21세기 산업정책의 구체적인 전형이다. 혁신적 기업가의 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력 공급 체계를 국가적 차원에서 설계하는 것, 산업 및 기술상의 국제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간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혁신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개편함으로써 자본비용을 대폭 줄이고 접근성을 확장하는 것 모두가 21세기 산업정책의 핵심요소들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산업정책의 중요성은 남북한 통합, 아시아 지역 경제공동체를 고려할 경우 더욱 중요해지며, 더욱 필수 불가결해진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현재의 무능력을 시대적 불가피성으로 덮어 버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를 포착하고 그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내고 역량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와대와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FTA 강행 추진을 매개로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를 완성하게 될 것이고, 국민의 권력은 몇몇 대기업에게 조건 없이 양도될 것이며, 아시아 지역 경제공동체의 꿈은 스러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미 FTA를 강행 추진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려고 하는 길이다. 지지율 20% 이하를 기록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OECD 가입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이 엄청난 도박에 올인할 자격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가 정말 한미 FTA의 장기적이고 구조적 효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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