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미증유의 집권당 참패로 끝난 5·31 지방선거에도 불구하고 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현 집권세력이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가? 그것은 만약 현 집권세력이 공중분해되어 2007년 12월 대선까지 1년 반 가까이 국정이 표류하게 되면 한국이 입게 될 정치·경제·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을 담지할 정치세력의 선출이었지 국가통치 권력을 책임지는 정치세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철저한 참패로 끝난 5·31 지방선거는 정권 차원의 대규모 부정·부패가 없는 상태에서 치러진 것으로서 현 집권세력의 전반적으로 무능한 국정운영과 주요 정책 집행에 대한 국민의 총체적 불신임으로 나타났다. 즉 현 집권세력은 다양한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반대세력의 결집을 초래하였고, 또 미온적으로 추진된 미완의 개혁정책은 지지세력의 이탈과 이완을 낳고 말았다.
현재 집권세력은 엄청난 선거참패로 자체 구심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외부에 고건이라는 유력 대선후보, 민주당과 민노당이라는 지역과 이념적 기반을 대체할 정당의 존재라는 강한 원심력으로 인해 절대절명의 당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더군다나 2007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는 시간적 제약과 노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레임덕)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향후 정국운영에 상당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정국대처 방안을 논할 때 현 집권세력 전체가 해결해야 할 사항과 노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이 개별적으로 대처할 것을 구별하여야 한다.
그러나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궁극적 목표에 대한 의견차이로 인해 효과적인 공동 대응방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즉 노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의 정치적 목표는 노 대통령에 대한 후세의 긍정적인 역사적 평가이고, 열린우리당의 궁극적 목표는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권력재창출이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집권세력은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 무엇보다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집권 핵심세력은 민노당을 제외한 다른 정체세력은 부패하고 수구적이며 지역구도에 안주한다고 멸시하면서 자신들은 민주화 투쟁 및 남북화해와 통일을 추구하는 진정한 우국 정치세력이라는 도덕적 우월감과 정치적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현 정치지형의 특색은 이념대결과 영·호남 지역대립 구도가 중첩·분화되는 가운데 이를 대표하는 다른 정치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열린우리당은 권력자인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급조된 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긴하지만, 중도개혁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새로운 현실인식으로 특히 야당인 한나라당의 변화를 인정하여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자신을 민주·평화·개혁 세력이라고 공허하게 일컬으며 한나라당을 유신체제와 민자당을 이어받은 수구·냉전·반개혁 세력이라고 계속 매도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더 이상 구태의연한 군부세력의 잔재 정당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현 한나라당은 김영삼의 집권 이후 몇 차례의 선거과정에서 빈번한 인적 수혈을 통해 국민에게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계속 변신을 추구하였다. 더구나 국내정치는 더 이상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작동하지 않는다.
더하여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정운영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당·청분리 원칙을 강조하면서 열린우리당을 방기하여 당에 안정적인 지도력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였다. 선거 결과 다시 확인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 약화와 당·청분리 원칙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 간의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이 어렵겠지만,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최소한 청와대와 당이 정책수립에 한해서라도 상호 협조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레임덕에 직면한 노 대통령에게 가능한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변수 중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탈당 여부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탈당은 정당책임 정치의 실종, 노 대통령의 정치기반 와해와 식물대통령화, 그리고 노 대통령의 탈당 후 열린우리당의 분해 가능성 등으로 인해 집권세력에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또 탈당 후 노 대통령에 의한 정계개편 시도는 약화된 노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으로 성공가능성이 미약하다.
탈당을 배제한 다른 방안으로는 노 대통령이 인적 쇄신과 정책으로써 국민의 신뢰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잔여임기가 약 20개월 남은 상태에서 정권에 새로이 참여할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비서실장과 청와대수석, 그리고 정부 핵심부서의 책임자를 포함한 인적 교체로 국정운영에 새로운 관점의 도입을 시도할 수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 변화와도 연결되는데, 인적 쇄신을 통해 정책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정책운영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인적 구성의 변화를 통한 정국운영의 쇄신은 현실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추구할 수 있는 정책적인 면을 보면, 현재 노 대통령이 새로운 국내정책을 추진하고 그 성과에 의해 지지율 회복을 꾀할 시간은 불충분하다. 그보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고 노 대통령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양극화 해결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노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도출을 모색하여 더 이상 국내정치를 대결 상태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국내정책에서 노대통령의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면, 남북문제를 포함한 대외정책은 어떠한가? 남북관계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몽골발언을 통해 적극적 대북정책 의사를 표현하였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노 대통령의 이런 신호에 응할 지를 생각해보면 부정적이다. 더구나 북한의 빈번한 대남 약속의 파기는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에 대한 남쪽의 신뢰 상실로 이어져 정상적인 남북관계 수립에 장애가 되고 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그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내년 봄으로 협상 완료시한을 정해 놓고 추진하여 강한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대외정책의 추진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추진의 폭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면 열린우리당 차원의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현재 처한 정치적 곤경은 노 대통령보다 열린우리당이 더 심각하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중지란의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2007년 12월 대선 승리를 겨냥한 정계개편의 유혹은 상당히 강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한나라당까지 흔들 수 있는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 개헌 시도이다. 물론 유력한 한나라당 내 유력 대권주자들의 부정적 의사 표현으로 내년 대선 전 개헌의 가능성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기존의 정치판을 흔들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개헌은 열린우리당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무리한 개헌 추진은 한나라당과 국민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열린우리당이 당장 채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내년 대선까지 남은 1년 반은 열린우리당에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과 협의하여 국민적 공감대가 확실한 몇몇 정책을 선택·실천하여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받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열린우리당은 대선 국면을 최대한 늦추고 성공적인 국정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열린우리당은 고건과 같은 당 외부인사에게 한눈을 팔 것이 아니라 당을 대표할 수 있는 안정적인 리더십을 창출하고 그것을 활용하여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평균 4개월마다 교체된 취약한 당의 리더십으로 인해 다양한 당내세력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또 열린우리당은 이번 지방선거 기간 중에도 선거참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원숙하고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즉흥적이고 유약하며 미래 비전을 상실한 갈팡질팡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위에 논의된 것처럼 현재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채택할 수 있는 정국대응 방안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쉽지도 않다. 이미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향후 정국대응에서 각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노 대통령은 현실적 대응전략을 추구하기보다 "선거에서 한두 번 지는 것은 역사의 바른 흐름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이미 '역사와의 대화'에 몰두하고 있다. 또 열린우리당은 당의 정체성 결핍과 효율적인 당 리더십의 부재로 외부의 원심력에 더욱 노출되어 당 해체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진퇴양면의 상황 하에서 장기적 국정표류를 막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위에 언급한 대응방안을 상호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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