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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 매장하고 봉분에 잔디 까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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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 사람 매장하고 봉분에 잔디 까는 기분이야"

[새만금 끝막이 한 달] 깨지는 환상, 성난 주민, 침묵의 갯벌

2006년 4월 21일, 새만금 방조제 끝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 뒤 한 달여가 지났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바닷물은 이제 폭 540m의 수문을 빼놓고서는 완전히 가로막혔다. 불과 한 달 동안 무슨 큰일이야 있을까 싶었지만 들리는 소문은 흉흉하기만 하다. 갯벌이 사막처럼 변했다, 모래 바람이 날린다는 등….

끝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 후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전북 김제시 거전 갯벌을 26일 찾았다. 갯벌에 들어가려던 무렵 마침 주민 두 명이 망태기를 메고 갯벌에서 나오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거전 갯벌의 백합에 생계를 의존한 지 12년째 되는 서영일(59) 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침 6시 30분에 나와 꼬박 6시간을 일했는데 고작 2만5000원 손에 쥐었어. 그나마 이것도 한 시간 여 걸어 나가서 아직도 물이 들어오는 갯골에 가서 캔 거야. 이제 장마철 되면 갯골에서도 생합(백합)을 캐기가 어렵게 된다고 하던데, 아직 여위어야(결혼시켜야) 할 애도 둘이나 있는데….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서 씨의 걱정대로 곧 시작될 장마는 갯벌 생태계를 파괴할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동행한 전주환경연대 이정현 정책실장은 "유입되는 바닷물이 적어지면서 장마 때 민물의 양이 갑작스럽게 많아지면 염분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그나마 갯벌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갯골의 경우에도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거전 포구. 거전 갯벌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프레시안

"더위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갯벌 전체에 시취가 진동할 텐데…."

이틀간 내린 비로 물을 머금긴 했지만 거전 갯벌은 이미 낯익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5년 전부터 트랙터를 이용해 갯벌 관광을 해 온 거전 토박이 서만섭(47) 씨는 "이틀 동안 비가 내려서 그렇지 평소에는 하얀 소금기로 덮여 있어서 사막과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비가 오면 더 큰일이에요. 아직 바닷물을 머금고 있는 갯벌 밑에서 숨 쉬던 것들이 비만 내리면 바닷물이 들어온 줄 알고 땅 위로 올라와요. 그렇게 올라와서 고스란히 다 죽는 거지. 이렇게 비가 한 번씩 오고나면 입을 반쯤 벌리고 숨진 꼬막(동죽), 백합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작년에도 장마 때 호우가 지난 후에 꼬막, 백합이 지천으로 죽은 적이 있었는데…."
▲ 거전 갯벌 관광을 진행해 온 서만섭 씨. 그는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시안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한국농촌공사는 며칠에 걸쳐 어민들에게 일당 5만8000원을 주고 이렇게 숨진 것들을 거둬내는 정화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열흘 동안 매일 20㎏ 망태기 150개 정도의 분량이 수거됐다. "이제 장마가 한 번 오고 나면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거야.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갯벌 전체에 시취가 진동할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서 씨는 진저리를 쳤다.

비가 온 뒤 갯벌 곳곳에 생긴 민물 웅덩이에는 깔따구가 지천이다. 이제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모기가 서식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이 역시 인근 주민들에게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불과 한 달도 안 돼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아무도 몰랐어. 다들 후회해. 방법은 딱 하나야. 바닷물이 들락거릴 수 있도록 해 갯벌의 숨통을 터줘야 해. 여름이 지나면 한국농촌공사 사람들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놓았는지 알게 될 거야." 서 씨의 경고가 섬뜩하다.
▲ 거전 갯벌 곳곳에 죽음을 맞은 동죽, 백합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속살은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새들 몫이다. ⓒ프레시안

백합 잡던 갯벌에서 염생 식물 파종하는 주민들…"억장이 무너진다"

서 씨는 보여줄 데가 한 곳 더 있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이번엔 갯벌을 누비는 트랙터도 필요 없다. 승용차를 타고 갯벌로 들어섰다. 서 씨는 연신 한탄이다. "나 원 참, 내가 거전 갯벌을 차를 타고 누빌 줄 꿈에나 생각했겠어. 기가 막혀."
▲ 승용차가 다녀 평지와 다름없는 거전 갯벌. ⓒ프레시안

승용차를 타고 20분 쯤 들어간 곳에는 주민 100여 명이 길게 늘어서 뭔가를 갯벌에 뿌리고 있었다. 트랙터 5대는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갯벌의 흙을 뒤엎고 있었다. 한국농촌공사에서 일당 4만 원을 받고 나문재, 칠면초와 같은 염생 식물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전주환경연합 이정현 실장은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식물이 말라죽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근 농민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농촌공사에서 그것을 우려해서 염생 식물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문재, 칠면초가 갯벌에 안착하면 허허벌판보다는 모래 바람과 같은 피해가 조금은 덜할 것이다.
▲ 거전 갯벌 곳곳에 바람이 불면 날릴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가 쌓여 있다. ⓒ프레시안

하지만 정작 씨를 뿌리는 주민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신 모(57) 씨도 그런 주민 중 한 사람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생합을 캐던 땅에다 나무재 씨를 뿌리려고 하니 뭐 하는 짓인 줄 모르겠어. 꼭 산 사람 생매장해놓고 그 봉분에다 잔디 까는 기분이야. 아직도 내 손을 기다리던 생합이 지천일 텐데…. 신 씨는 결국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옆에서 묵묵히 씨를 뿌리던 김 모(56) 씨도 거들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나와서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이 짓을 해도 버는 건 고작 4만 원이야. 예전에는 4~5시간만 일해도 10만 원은 거뜬했는데. 여기 말로 '뻘짓(허튼짓)' 하는 거야." 김 씨는 말을 계속했다. "그 때 환경단체가 반대할 때 우리도 같이 나섰어야 했어. 보상금 몇 백만 원에 이 보물 같은 갯벌을 넘겨줬으니. 우리가 정신이 나갔었지."
▲ 길게 늘어서 거전 갯벌에 염생 식물 식재를 하는 주민들. 하루 9시간 30분 일하고 일당 4만 원을 받는다. ⓒ프레시안

▲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백합을 잡던 갯벌에서 염생 식물 식재를 하는 주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프레시안

"지역경제에 도움 된다더니"…염생식물 식재사업은 울산 기업에 낙찰

이곳 거전 주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만섭 씨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거전 주민들을 더 화나게 하는 건 나무재, 칠면초 등을 식재하는 작업을 경상도 소재 기업에서 맡았다는 거야. 새만금 간척 사업 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될 거라고 선전하던 건 다 어디 갔나?"

익명을 요구한 현장의 다른 주민이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한다. "한국농촌공사에서 공개 입찰을 해서 울산 기업이 낙찰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 과정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민 정서를 염두에 두면 지역 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했다."

실제로 주민들의 반감은 컸다. 씨 뿌리는 작업을 하던 주민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게 허울뿐이라는 걸 증명하는 단적인 예"라며 한 목소리로 한국농촌공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도대체 한국농촌공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지역 주민들로부터 반감을 살 일을 한 것일까?

한국농촌공사 새만금 사업단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라고 지역 기업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느냐. 지역 기업 2곳 중에서 1곳이 최종 심사까지 가긴 했지만 가격을 높게 써내 결국 경상도 쪽 기업이 낙찰을 받았다. 정당한 절차가 있는데 전라북도 배려한다고 그런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 보상 받을 거 다 받은 주민들이 사사건건 이렇게 훼방을 놓으니 우리도 힘들다." 담당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썩어가는 백합 주워 도매상에 넘기고…'탐욕의 기운' 가득한 새만금

새만금 간척사업은 단순히 인근 주민들의 경제를 파탄시키는 것뿐이 아니었다. 넉넉한 품으로 늘 주민을 안아주곤 했던 '생명의 갯벌'이 죽은 지금 새만금에는 탐욕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거전 갯벌 입구에서 선대부터 10년 넘게 칼국수 집을 해 온 안기성(35) 씨는 "새만금 갯벌이 죽으니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며 답답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비만 오면 갯벌에 동죽, 백합이 지천으로 널린다. 입을 반쯤 벌리고 죽을락 말락 하는 거다. 그걸 수거해서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저번에도 한 사람이 단 2~3시간 동안 60㎏을 수거해서 도매상에 넘겼는데 불과 하루도 안 돼 다 썩었다고 하더라. 이게 다 새만금 갯벌이 죽으면서 사람들 마음에 '마'가 끼어서 그런 거다"

안 씨의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거전 갯벌 오는 길에 잠시 들른 만경강 하구 군산 경창 근처의 염습지가 생각난다. 바로 한 달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염습지 곳곳에 트랙터로 개간한 흔적이 있어서 확인해 보니 나중에 경작권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인근 주민들의 작품이었다.

이정현 실장은 "일단 개간하고 뭐가 됐든지 1년만 경작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경작권을 얻은 걸로 간주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끝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바닷물이 안 들어오자 이렇게 한국농촌공사 몰래 트랙터로 땅을 뒤엎는 일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트랙터로 뒤엎은 염습지 바닥에는 농게 한 마리가 자기 구멍을 잃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 만경강 하구 군산 경창 근처 염습지.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경작권을 노린 사람들이 트랙터 등을 끌고 들어와 땅을 뒤엎었다. ⓒ프레시안

▲ 트랙터로 뒤엎은 염습지 바닥에서 농게 한 마리가 자기 구멍을 잃고 발버둥치고 있다. ⓒ프레시안

국토연구원 용역 결과 발표 임박…"새만금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마치 황야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거전 갯벌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한 번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애초에 정치인들의 탐욕 때문에 시작된 이 사업은 이제 평생 갯벌과 생명줄을 엮어놓은 인근 주민들부터 가파른 절벽으로 내몰고 있었다.

이제 6월 국토연구원이 새만금 토지 활용 계획 연구 용역 결과를 발표하면 간척지 용도를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는 복합 개발을 제안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 애초 내세웠던 '농지 목적'이 허구였다는 사실이 대법원 판결 후 불과 석 달도 못 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실장은 "환경단체가 주장해 온대로 새만금 간척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그 때는 지금 죽어가는 갯벌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고 있는 새만금 주민들의 분노가 가장 큰 반대 운동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새만금을 둘러싼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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