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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의 '립서비스'가 더 얄밉다"

[상생이 헛구호가 아니려면(2)] 중소기업인-전문가 대담

오는 24일 정부가 주최하는 '제3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가 열린다. 또 다음달 7일부터 이틀간 '제2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박람회'가 개최된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을 반가워하는 중소기업인은 그리 많지 않다. 하도급 단가의 인하와 불공정 이면계약 등을 강요하는 대기업들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회의는 웬 회의요, 박람회는 무슨 얼어죽을 박람회냐'는 것이다.

반면 대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과 유가 및 원자재가의 급등 등으로 가뜩이나 경영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이런 행사들을 개최해 '대기업에만 양보를 강요한다'고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들에 대한 대기업-중소기업 간 인식차가 큰 상황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19일 '대·중소기업 상생협회'와 공동으로 '대·중소기업 상생 기반을 위한 대담회'를 마련해 정부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점검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 본부의 이선근 본부장, 대·중소기업 상생협회의 조성구 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위대영 변호사, 한진건업의 반성오 회장, 컴네트플러스의 최두일 대표이사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불공정거래'라는 말로 포장된 대기업 범죄부터 막아야"
▲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불공정거래의 근절'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참석자들. ⓒ프레시안

이날 대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기업은 가해자,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공식이 아직 유효한 상황인데도 정부의 인식은 '가해자(대기업)에게 가해의 수준을 좀 낮추라'고 사정한다든가 '피해자(중소기업)가 불쌍하니'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교육을 해주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대담 참여자들은 자금 지원, 기술교육 지원, 박람회 개최 등과 같은 정부의 '시혜성' 정책들이 대기업의 잘못된 불공정거래 관행을 덮을 빌미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과 유가·원자재가의 상승 등을 명분으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가 횡행하는 현실은 기업 내에 별도의 법무인력들을 갖추고 공정거래법을 무력화하는 대기업들, 대기업에만 치우쳐 중소기업들을 위해서는 시혜성 정책밖에 마련하지 못하는 정부, 대기업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맺고 불공정거래 소송에서 대기업 편만 들어주는 감독당국과 사법당국 등의 '합작품'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따라서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들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모두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즉 대기업들이 시장경쟁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들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제3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가 지난 2차례의 회의들처럼 '화려한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이 회의에 대기업 총수들뿐 아니라 불공정거래로 고통 받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대거 초청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담은 이주명 <프레시안> 부국장의 사회로 대·중소기업 상생협회 사무실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의 전문이다.

"자기 배로 낳은 자식 같은 기업에도 악랄하게 구는데…"
▲ 반성오 한진건업 회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먼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경영자들로부터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실태에 대해 들어보자.

반성오(한진건업 회장): 한진건업은 소방설비 등을 시공하는 업체로 약 2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불공정거래들은 매일 다반사로 일어난다. 하지만 요새는 그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가령 대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작성하는 '건설 하도급 표준계약'이란 것이 있다. 대기업은 이 계약서에 하도급자들이 계약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조항들을 삽입해 이를 빌미로 나중에 계약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떠맡긴다. 한진건업의 경우 지난 2004년 1월 삼성엔지니어링과 설비 시공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도면, 시방서는 물론 건축물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도면이 여러 차례 수정되면서 공사 기간이 연장됐고, 시공 방법도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방법으로 변경됐으며, 시공 물량도 2배로 늘었는데 삼성 측은 추가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고 있다.

계약 담당자에게 수십 차례 추가 비용을 정산해달라고 이야기했고 9차례에 걸쳐 공문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삼성 구조조정본부에 감사를 요청하는 문서와 정산을 요청하는 문서를 각각 2차례씩 보냈다. 그러나 구조본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엊그제 전화했더니 '(담당자가) 출장 갔다'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최두일(컴네트플러스 대표이사): 컴네트플러스는 IMF 외환위기 당시 삼성SDS에서 분사 '당한' 회사다. 당시 나와 우리 직원들은 삼성SDS의 분사 조치에 항의했었지만 삼성은 '5년 내 코스닥에 등록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모회사(삼성SDS)가 자본 투자 등 모든 것을 해줄 테니 대신 명예퇴직금은 줄 수 없다', '퇴직금을 모두 (분사된 회사에) 투자하라' 등 갖가지 회유를 하며 분사를 강행했다.
▲ 최두일 컴네트플러스 대표 ⓒ프레시안

3년 후 컴네트플러스가 매출 200억 이상의 규모로 성장해 코스닥 등록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삼성은 컴네트플러스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해 주계약인 네트워크 운영 계약을 1년 단위에서 6개월, 심지어 1개월 단위로 줄였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회사의 핵심 업무와 인력을 빼내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자기 배로 낳은 분사 회사에도 이렇게 한다. 감사 요청, 소송 제기 등 다 해봤지만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모두 100% 삼성이 승소하도록 도왔다. 언론도 대기업 편이었다. 이런 사실을 광고로 호소하려 했지만 이런 광고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광고비를 2배로 준다고 해도 다들 거절했다.

조성구(대·중소기업 상생협회 회장): 말이 좋아 '불공정거래'지 사실은 사기, 절도, 강탈, 영업방해 등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불공정거래는 이런 죄질이 나쁜 행위들을 포장하는 단어다.

"노무현 정부의 '상생협력' 립서비스가 더 얄밉다"

조성구: 이렇게 불공정거래가 만연하는 이유는 대기업들이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탓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돼 온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 하에서 불공정거래는 '관행'으로 굳어져왔다.

프레시안: 역대 정권들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시행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강조하며 다양한 중소기업 정책들을 펴고 있다. 이런 정부의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선근(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본부 본부장):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따라서 정부는 각 기업 규모에 맞는 2개의 이원화된 시장을 구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의 정권들은 대기업 시장과 중소기업 시장이 서로 격차가 나는 만큼 각자가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시하면서 대·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2개의 시장을 키워나가는 정책을 펴지 못했다. 그 결과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성장해갈 몫까지 다 흡수해 과도하게 성장했고, 이제 소수의 대기업들이 한국경제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인지해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자금지원, 기술교육 등 '립서비스'만 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요구하는 것, 즉 대기업들이 강도짓을 못하게 하는 기준을 가장 먼저 세워야 하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지 그렇게 못하고 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란 단어를 만들어 뭔가 할 것처럼 굴더니 립서비스만 하니까 (정부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현 정부의 상생협력 정책…강도에게 '강도짓 살살하라'고 비는 꼴

프레시안: 그래도 노무현 정부가 '대·중소기업 생상협력'을 강조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 않겠나.

이선근: 분명 정부가 열의를 보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이 보기에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에는 자신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반추가 전혀 없다. 상생협력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하지 않고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들에게 '좀 봐주십시오'나 '제발 살려주십시오'라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비굴하게 나와 대기업들은 횡포를 부리기 더 쉬워졌다. 올해 초 현대차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것을 빌미로 하도급 업체들에 부품가를 15%나 인하하라고 강요했다. 예전에는 하도급가의 인하를 요구해도 통상 5% 정도였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거의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실태보다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관련된 법률, 협력재단 기금의 마련, 산자부 내 담당자의 배치 등에 정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조성구: 그런 정책들은 모두 알맹이가 없는 '속빈 강정'이다. 지난해 5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가 열렸지만 그 결과로 나아진 게 뭐가 있나. 대기업들의 반칙은 계속 지속되고 있다. 불공정거래는 분명 '범죄' 행위인데 강도에게 '강도짓 하지 말라'고 사정하는 정부의 접근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위대영(민변 소속 변호사): 맞다. 정부에서 지금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 데 그 기본 취지는 '대기업을 달래서 중소기업을 위한 활동을 하도록 몰고 가겠다'는 것이다. 전제부터 잘못돼 있다.

'경제적 약자' 중소기업…법정에서도 약자

프레시안: 그래도 기본적인 법질서라는 게 있지 않나. 그런데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현행법으로 제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위대영 민변 소속 변호사 ⓒ프레시안

위대영: 대기업-중소기업 간 민사·형사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대기업에 기울어지는 판결이 나오는 것은 현행법이 '증거 재판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증거 재판주의란 유리한 증거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 소송에서 승리하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 때문에 유리한 자료들을 훨씬 많이 확보하는 대기업들이 증거 수집에 있어 열위에 있는 중소기업들에 승소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그런 '힘의 차이'가 있다면 중소기업들에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 아닌가.

위대영: 사법부도 중소기업들이 증거 수집 면에서 열위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재판관들은 '이 중소기업의 주장이 믿을 만한데 증빙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될 때 소송 당사자들을 조정의 자리로 불러낸다. 통상 이 조정의 자리에서는 중소기업이 자신이 원하는 보상이나 배상의 10~20%, 많게는 40%까지 얻을 수 있다. 재판부는 이것이 '증거 재판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 현행법 체계 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 원칙이 있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이다. 가령 발주자들의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설계의 변경, 추가비용의 발생 등과 같은 사항들이 계약서 안에 포섭되도록 하는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하법의 세계'에서 신음하는 중소기업들

반성오: 중소기업들이 불공정거래와 관련된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하는 것은 꼭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다. (한진건업의 경우) 삼성엔지니어링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충분한 증거자료들을 준비했는데도 공정위는 삼성을 무혐의 처리했다. 범죄를 저지른 분명한 증거가 있어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삼성의 힘이다.

최두일: 맞다. 판결문 자체가 대기업 측 변호사의 의견서에 도장만 찍어놓은 형국이다. 공정한 게임은 없다.
▲ 이선근 민주노농당 경제민주화본부 본부장 ⓒ프레시안

조성구: 내가 얼라이언스시스템이란 기업을 운영했을 당시 삼성SDS를 제조위탁과 관련된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위에 제소했다. 공정위는 삼성의 불공정거래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삼성은 이 '시정명령'에도 불복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또 나는 삼성SDS를 사기죄로 검찰에 고소해 삼성이 사기를 저질렀다는 완벽한 증거 자료들을 제시했는데도 검찰을 '증거 불충분'이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이런 사실을 KBS, SBS 등 방송사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프레시안: 증거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아는 놈 봐주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인가.

반성오: 그렇다. 공정위에 있었던 사람이 삼성 법무팀으로 들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선근: 이런 점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8000억원의 사회발전기금을 내놓으면서 삼성 구조본의 법무팀을 축소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 동안 삼성 법무팀은 사법계를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해 왔는데 삼성이 바로 이런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프레시안: 이렇게 법질서가 통하지 않는다면 대·중소기업들은 '지하법의 세계'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사실을 관련 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나?

조성구: 최근 5.24 대·중소 상생협력 회의를 담당하고 있는 산업자원부의 정책담당관을 만났다. 그는 '(이번 대·중소 상생협력 회의는 대기업 총수들을 달래는 자리다. 여기에 '불공정거래'라는 칼을 들이밀 수는 없다. 상생협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말하더라. 한마디로 공무원들의 마음가짐 자체가 잘못됐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피해자 지원이 아니라 가해자 처벌부터!

프레시안: 오는 6월에 발효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정(안)'은 어떻게 봐야 하나.

조성구: 이 법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 이 법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다. 대기업의 반칙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령 이 법에 의해 설립된 '대·중소기업 협력재단'은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사업계획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재단의 이사장과 이사들은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 임원들이고, 실무자들도 대부분 중소기업청 출신으로 오랜 공무원 생활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정책에 물들어 있다.

이선근: 이 법안에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계약을 체결할 당시 작성한 계약서와 나중에 계약 조건을 중소기업 측에 불리하게 바꿔 새로 만든 계약서 중 후자를 무효화하는 조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반성오: 이렇게 대기업들이 계약서를 '바꿔치기' 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 '표준계약서'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이 계약서의 이면에 계약 당시에 예측할 수 없는 조항들을 집어넣어 나중에 얼마든지 불공정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대·중소 상생협력법에는 이런 이면 계약을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이 거의 없다.

이선근: 게다가 이 법안에 들어 있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벌칙조항은 한심하기까지 하다. '1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두려워할 대기업이 있겠는가.

'어음'이 악용되는 근본원인은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의 미비

프레시안: 그 밖에 정부가 꼭 고쳐야 할 제도나 법이 있다면?

반성오: 어음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 힘들다. 대기업 어음을 많이 받아주고 로비도 잘하는 기업들이 하도급을 잘 딴다. 그런데 어음을 많이 끊으면 부채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져 중소기업들은 또 불공정 하도급도 받아들여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난 1998년 국회에서 어음제도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단번에 어음제도를 없애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니까 5년에 나눠서 단계적으로 없애면 좋겠다. 사실 전세계에서 어음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프레시안: 어음제도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어음제도가 폐지될 경우 중소기업의 자금융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을 위한 자금융통이 활발해지는 방향으로 문제가 풀려야 할 것 같다. 이는 결국 자금중개 기능을 담당하는 은행들의 문제다.

이선근: 어음제도는 자본이 거의 없는 경제에서나 사용하는 제도다. 자본과잉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는 있을 수 없는 제도다. 자기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보장해주는 제도란 있을 수 없다. 사업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증권시장에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력업체 착취 말자'고 노사간에 합의한 대우조선해양
▲ 조성구 대·중소기업 상생협회 회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현실적으로 불공정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최두일: 다시금 강조하지만 자금 지원, 기술 교육, 재단 설립 등과 같은 정부의 시혜성 정책들은 오히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덮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을 시행할 돈과 인력이 있다면 이를 불공정거래를 막는 데 쓰면 좋겠다.

공정위나 법원이 불공정거래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 사이에 중소기업들은 다 죽어 나간다. 보다 신속하게 절차가 이뤄졌으면 한다.

반성오: 국회 차원에서 공정위의 감사 기능을 강화했으면 한다.

위대영: 공정위도 불공정 하도급 거래, 이면 계약, 기술 빼가기 등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이와 관련된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대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조항이나 시정조치들이 너무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형벌이 불공정거래를 예방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고, 또 그런 형벌이 실제로 현실에 적용된 사례가 나와야 한다. 또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는 대기업들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하면 좋겠다.

조성구: 대우조선해양의 고무적인 사례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작년 초 이 기업의 노사는 '협력업체를 착취하지 말자'는 조항을 노사간 합의문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5.24 상생협력회의에 피해입은 중소기업인들 초청해야

프레시안: 5.24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에 바라는 점은.

이선근: 대·중소기업이 상생하자면서 정작 고통을 받는 당사자들인 중소기업인들은 빼고 가해자들인 대기업 총수들만 데리고 회의를 여는 것은 오히려 상생협력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부터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이해당사자들도 모두 불렀으면 한다.

특히 현대차그룹 앞에서 현대차의 불공정거래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70세의 여성 경영인을 꼭 청와대에 초청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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