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언론 보도가 굉장하다. 3개 방송사 아침뉴스의 첫 기사로 나올 뿐 아니라, 인터넷 언론들은 밤새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600일 넘게 주민들의 촛불집회장으로 쓰였던 비닐하우스가 1분 만에 철거되었고,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팔장을 끼고 누웠던 사람들을 경찰이 뜯어내는 모습은 벽돌 한 장 한 장을 해체하고 철거하는 것만 같았다.
학교 건물로 쫓겨 들어간 100여 명의 사람들이 2층에 몰려 있고, 문정현 신부와 다른 여러 신부들이 학교 지붕에 올라가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이곳까지 올라온다면 몸을 던지겠다고 젊은 신부들이 경고하였고, 경찰은 건물을 둘러싸고 매트리스를 넉넉히 깔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를 멍하게 한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와서 사정한다고 해도 못 하겠는데…"
그러다가 점심 때, <부산일보> 손문상 화백의 그림을 보았다. 손 화백도 오늘 만평에 평택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림에 그려진 할머니가 낯이 익다. 바로 조선례 할머니다. 이상하게 손 화백의 그림이 마음을 위로해 온다. 그림은 언뜻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고, 대추리 들을 잊지 못하고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예언 같은 그림이다. 연로한 할머니가 이번 일을 겪고 그만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는 이야기 같다. 경솔하기 짝이 없는 그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작년 12월 대추리에 갔을 때, 미군기지 확장 문제로 마을이 시끄러워지면서 연로한 분들이 서둘러 돌아가셨다고 나는 들었다. 우리는 이번 폭력적인 행정대집행 사태로 며칠에 걸쳐 수많은 불상사를 지켜봐야 하는지 모른다. 민병대 할아버지께 내가 물었었다. "우리하고 터놓고 상의만 했어도 이러지는 않아. 수십 년 동안 고생해서 지어놓은 땅을 엽서 한 장 띄워놓고 내놔라, 엽서 한 장 띄워놓고 돈 얼마 찾아가라, 내가 열 안 받게 생겼어." 하고 민 할아버지가 말했을 때다.
"이제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된 토지수용 과정을 알고 진심으로 주민들한테 사죄하고, 그러나 국가의 일이고, 더욱이 미국하고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제발 좀 도와달라, 한다면, 대통령의 사죄와 부탁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자 민 할아버지가 말했다.
"딴사람은 몰러도, 난 내가 만든 땅은 죽어도 못 내놓을 거 같애. 부모가 물려주려고 제대루다 만든 땅, 여기서 애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낸 땅, 무조건 내놓아야 한다면, 암만 대통령이 와서 사정한다고 해도, 나는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와서 싹싹 빌어도 줄 땅이 아닌데, 종이 한 장 띄워놓고 내놓으라구?" 이 말에 대추리 주민들의 심정이 거의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정부와 국방부가 토지수용을 하면서 마을에 와 어떤 짓을 했는지 제대로 돌아보고 사죄를 해야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릴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 이대로 계속 밀어부치면, 비록 오늘 대추초등학교를 국방부가 접수한다고 해도, 주민들이 마을과 들을 이대로 포기할 것 같으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놈들이 진짜로 와서 밀어부친다면, 쇠스랑을 뒤에다 차고 있다가 한놈 그냥 콱…. 안 그래? 겁날 게 뭐 있어. 내가 살아야 얼마를 더 살겠어. 근데 시시한 놈 쥑이면 뭐혀, 아무것도 아니잖어.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놈 쥑이야 내 한몸 희생이라도 되지. 시시한 놈 죽이면, 돼지새끼 한 마리 쥑인 거나 같지. 근데 나 같은 놈은 높은 놈을 만날 수나 있나, 만나주기나 하겠어."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대추리 노인회장 정태화 할아버지가 내가 해준 말이다. 노인의 무서운 분노는 오늘 더욱 커졌을 것이다. 자해를 하든 다른 이를 골라 공격하든, 불상사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평택이 아닌 부산에 사는 나는, 걱정하고 분노하는 또다른 이들은, 열심히 경고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지, 참 답답하다.
'평택 사태'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본질을 생각하다
최근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된 찰머스 존슨 교수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오늘 평택의 상황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 제국'에 대한 어떤 글도 그의 인터뷰만큼 선명하지 않았다. 그의 저서 <블로우 백>도 언젠가 일독하였지만, 인터뷰가 훨씬 실감났다. 세계정세와 미 제국에 대한 분석 속에 그의 감정이 거침없이 표현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터뷰는 요약하기에 너무 아깝다. 군데군데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다시 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말마다 핵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9년이 되면서 베를린장벽의 붕괴 이상으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군산복합체의 존재이유, 즉 펜타곤의 거대한 관료기구와 전세계 바다를 떠다니는 우리 군함들, 그리고 수많은 미군기지들이 계속 있어야 할 모든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즉각, 조건반사적으로 또 다른 적을 찾아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냉전은 끝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 즉 냉전 때와 똑같은 구조, 똑같은 군사케인즈주의, 그리고 무기제조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가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미 제국의 단위는 식민지가 아닙니다. 군사기지이지요. 이것은 제국의 개념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예외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로마제국 시대 중동지역에 있었던 주요 군사기지의 숫자를 쉽사리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그 숫자는 오늘날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기지 숫자와 거의 같습니다. 38개지요. 군사기지의 제국, 이는 미 국방부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세계 도처에 700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미 제국의 논리를 가장 잘 설명해내는 개념입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혀 일관되지 못하며 합리적이지도 못합니다. 물론 국방예산이 우리 산업에 대한 보조금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무기가 그나마 아직도 미국기업이 효율적으로 생산해내는 몇 안 되는 공산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미국의 무기산업은 엄청난 수출산업이죠. 다른 게 있다면 민간기업이 아니라 펜타곤이 외국정부에 대한 대외군사판매라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죠."
"우리는 더 이상 군대 없이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약에 중독되듯이 군대에 중독됐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군대가 없으면 미국경제는 지탱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시무시한 일이죠."
이 모든 그의 말들이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내게 와 닿은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우리 미국인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반제국주의적이라는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해 왔고, 독재적 방법으로 다스리려는 왕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전통은 제 생각으로는 (1898년의) 미-스페인 전쟁까지가 고작이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미국은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미국이 파산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이 나는 대단히 부족하다. 오늘 이 자리는 찰머스 존슨의 진단을 일단 무조건 받아들이고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찰머스 존슨의 인터뷰 이 대목에서 민병대 할아버지가 내게 해준 옛날 이야기 하나가 바로 떠올랐다. 한국에 미국이란 나라는 어떻게 엮어들어 왔고, 그 최초의 존재가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 역사교과서 속의 혈맹우방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초의 생생한 감각에 남은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택 대추리 주민 민병대 할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에 징용간 한국 사람들이 원래 안정리 비행장을 다 닦은 거여. 안정리 마을 사람들 다 쫓겨나고 말야. 해방 땜에 일본놈의 새끼들 다 쫓겨가고 미국놈의 새끼들이 온 거여. 근디 우리가 부대 들어가보니까 일본놈의 새끼들이 호박이고 가지고 안 심어놓은 게 없어. 우리 땅 뺏어가지고 부대 만들어 잘 먹고 있었던 거여. 우린 쌀이란 걸 구경도 못했는데, 이곤이 아버지라고 그 양반이 거기 들어가 큰 창고를 열어가지고 콩이고 쌀이고 보리쌀이고 막 집어던졌어. 우리 모두 이고 오고 지고 오고 난리났어. 그런 다음에 미국놈의 새끼가 들어왔어. 나 그때 아주 쬐끄맸을 적인데, 근데 일본여자가 하나 우리 동네에 살았었는데, 나 보고 '호박하고 가지 따러가자' 그랬어. 그때 미국놈 처음 본겨. 같이 가지밭에 가서 호박하고 따려는데, 키가 구척 같고 눈깔이 퍼랬고 머리가 뇌랜 놈이 총을 들고 떠벅떠벅 걸어와. 간이 콩알만해졌어. 일본여자가 나를 꼭 끌어안는데 말야, 자기도 놀래가지고, 가지밭에서 꼬-옥 안는데, 죽는 줄 알았어. 어떻게 으스러지게 끌어안는지, 자기도 겁이 나니깐! 근데 다행히 미국놈이 싹 지나가는 거야. 우릴 못 봤어. 그때 미국놈 처음 봤어. 너무 무서웠어. 그날은 별일 없었지만, 가지 따러온 여자들 붙들어가지고 강간하고 미국놈들 그때 아주 별 지랄 다했어."
일본인에게도, 또 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도 '미국'은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인천항에서 미군을 환영하려 나온 인파를 향해 총을 쏘고 사상자를 낸 것이 바로 미군이 아니었나. 지금도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 한국전쟁도, 북의 러시아파 세력과 남의 이승만 세력, 그리고 러, 중, 미 군부세력 간의 전쟁이었지 결코 남북 민중 간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물론 인간의 몸을 가지고 다투다 보면, 전투경찰과 주민 사이에 극악한 감정이 생기듯, 한국전쟁에서도 서로 간에 피를 흘릴수록 이성이 마비된 군인과 민간인 모두의 증오와 광기의 전쟁이 되어갔을 것이다.
찰머스 존슨의 진단은, 향후 세계 전체를 향한 미국의 경제적 야망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더욱 확고해진 군산 시스템에서 호응하는 부분이 있어 한국전쟁이 확전이 되고 장기화되었다고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전쟁산업, 무기산업에서 그때도 지금도 최대 선진국이 미국이었다는 말이다. 지금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보다 명확한 진단과 향후 전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찰머스 존슨은 이 세계적 골칫거리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 소망과 얽어서 표명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퇴역군인 관련 예산입니다. 특히 중증 부상자, 베트남전쟁 시기만 해도 전사자로 처리됐을 이들 중증 부상 군인들의 생명 유지 및 건강관리에 들어갈 비용이 엄청날 거라는 얘깁니다. 베트남전쟁 때라면 이들은 대부분 전사자로 처리됐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부시 행정부에게도 너무도 당혹스러운 것이라 정부는 이들을 한밤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본국으로 송환시킵니다. 존 머사라는 하원의원이 있죠. 퇴역 장교이기도 한 이 사람은 펜타곤이 한다고 하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무기개발이라도 무엇이든지 밀어주는 바람에 방위산업 역사상 가장 우호적인 정치인이라는 평판까지 들었던 의원인데, 최근 퇴역군인들을 위한 병원을 드나들더니 정신을 조금 차렸습니다. 공개적으로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거죠. 저로서는 놀랍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파산하는 겁니다. 2001년의 아르헨티나가 그랬던 것처럼.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가장 가난한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붕괴한 것이죠. 돈을 빌릴 능력도 상실했고, 사태를 통제할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의 파산이란) 사태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미국은 외부의 적선에 기대게 되겠지요. 미국의 무역적자는 이미 연간 725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재정적자도 미국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죠. GDP의 6%가 넘습니다. 말도 안 되는 국방예산은 로켓처럼 치솟고 있고, 게다가 이미 이라크전쟁에만 5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 돈 하나하나가 중국에서, 일본에서 온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미국시장에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그 돈을 빌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더 이상 미국에 돈을 빌려주지 말자'라고 결정하는 순간, 미국의 금리는 치솟을 것이고 주가는 폭락할 겁니다."
300여만 평으로 확장 신설되는 평택 미군기지는, 미국이 해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새로운 무기 수요창출을 해야 하기에, 즉 세계적인 미군 재편계획 자체가 무기와 군 시설 수요를 발생시켜야만 하는, 군사대국 특유의 SOC 사업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중국경계론, 이런 것도 반의 진실도 안 되는 것 같다. 천문학적인 우리 국민의 세금을 들여 그 사업을 돕고 완성시켜야 하는 처지인데, 그런데 또 그 사업의 혜택은 300여만 평 안에서 미국인들이 본다. 대개 주장하듯이, 골프장과 숙소, 온갖 부대시설로 널찍한 군사도시 하나를 짓는 일인 것이다. 미국경제의 파산만이, 아니 미국이란 나라가 오십 내지 백 개의 소국으로 갈라질 때만이 이 미친 짓거리가 끝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란 나라가 파산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2006년 대추리의 저항이 평화를 앞당길 것입니다"
평택역 앞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만나 잠깐 물어보았다. "오랜 세월 주한미군 문제로 고민하셨고 여러 현장에 계셨는데, 이번 평택 땅 지키기 싸움과 그 전의 싸움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그 동안의 싸움은 얻고자 하는 것이었지. 소파 개정, 기름 유출 방지, 소음 방지, 다 얻고자 한 거였지. 근데 평택은 안 빼앗길라고 하는 거야. 하늘과 땅 차이지. 안 빼앗길려고 하니까 근데 이게 훨씬 더 힘드네? 너무 억울해서 그렇나. 아니 그 앞의 것들은 밑져봤자 본전 아냐. 그런데 이것은 밑져봤자 본전이란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동안 모든 문제에서 사실 제대로 얻은 것두 없어. 그래도 굳이 하나 있다면, 국민들 의식이 달라진 거지."
빼앗긴 것을 되찾는 싸움, 또 이번처럼 안 빼앗기려고 하는 싸움, 이 모든 것의 귀결은 '국민의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 라르작이 생각난다. 자료에서 읽은 것이지만, (그곳은 미군부대 확장 문제는 아니었지만) 1970년 라르작 고지대 땅 4234만 평에 프랑스 정부가 군사기지를 늘려 짓겠다고 했을 때, 농민들은 파리까지 800km가 넘는 거리를 트랙터를 몰아갔고, 에펠탑에 양떼 60마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의 모든 저항세력들이 앞 다퉈 라르작으로 몰려들었고, 첫 집회는 10만 명, 다음 집회는 30만 명이 모였다. 결국 라르작 농민들이 이겼다. 프랑스의 국민의식은 라르작 이전에도 살아 있었고, 라르작과 함께 더욱 폭발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은 있지만 뒤틀려 있고, 그 올바른 '변화'는 아직 요원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진정한 변화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그 계기가 오늘의 평택 현장일 것이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인터넷 신문 보도를 훑어본다. 문정현 신부와 여러 분들이 학교 지붕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이다. 경찰이 자진철수하면 우리도 내려가겠다는 뜻을 밝혔다는데, 즉 사다리차로 요인경호 전문 특수 기동대가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국방부에서 오늘 정말 작정을 하였구나, 싶다.
<부산일보> 손문상 화백의 오전 그림은, 일종의 미래 암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조선례 할머니로 대표되는, 그곳 땅을 일군 농민들의 넋이 오늘자로 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문 신부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바란 한국인들의 국민의식은 지금 이 순간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오늘 사태를 몸소 겪고 또 지켜본 현지 주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새로운 결심을 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리 땅에 철조망을 맘껏 쳐라! 촛불집회를 해야 하는 대추초등학교에 군인을 배치하라! 그러나 대추리 주민들은 저마다 집이 있다. 문 신부는 말했다. "마을 사람들 일일이 집에서 끌어내고 마을을 때려 부수고 할 거라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철거민 경우하고는 달라. 그냥 한 마을이 당하는 일이 아니고, 전국에서 문제의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미군기지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말야." 내가 직접 주민들한테 듣기에도 "다른 데 가서 안 죽고 이 마을에서 죽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할 만큼 다 했다. 그렇지만 내일도 계속 무엇인가를 하려 들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아, 언제까지나 한국 국민이 응답할 때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응답을 해야 할 기회를 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어쩌면 너무도 고마운 분들인지 모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오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번 천번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1980년 광주시민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면, 2006년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저항은 겨레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 고마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 고마운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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