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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퍼주기'가 '주도적 여건조성'인가?

[한미FTA 뜯어보기 12] 은밀히 진행된 사전협상

국민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진 채 '깜짝쇼'로 개시된 한국과 미국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비공개 사전 물밑협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그 전모가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2006년 통상 연차보고'와 이에 앞서 지난달 9일 발표된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보고서 '한미 경제관계: FTA를 위한 협력, 마찰, 전망'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 치달려온 지난 2년 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보고서들에 따르면 2004년 초 한국이 먼저 미국에 한미 FTA 협상을 제안했고, 미국은 2005년 6월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얼마나 잘 부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른바 '4대 통상현안'의 해결을 FTA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에 화답해 2006년 10월부터 약 4개월 간에 걸쳐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가격정책의 도입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의 예외 마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일사천리로 단행했다.

***미국의 '4대 요구조건' 압력**

2004년 초 한미 FTA를 먼저 제안한 것은 우리 정부였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2006년 2월 한미 FTA가 실제로 개시되기까지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미국이었다.

◇2004년 초=한국 외교통상부가 먼저 한미 FTA를 제안했지만, 부시 정부는 그 제안에 별로 솔깃해하지 않았다.

◇2004년 말=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관료들 앞에서 한 한미 FTA 관련 프레젠테이션이 미국의 핵심적인 정책결정자들, 특히 미 무역대표부(USTR)의 당시 대표였던 로버트 졸릭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에 따라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한미 FTA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2005년 1~6월=한미 양국은 6개월 간 3차례에 걸쳐 '한미 FTA 사전 실무점검 협의'를 갖고 FTA의 세부계획, 이점, 위험성 등은 물론 한미 양국이 다른 나라들과 체결한 FTA의 목적과 세부조항 등에 대해 검토했다.

◇2005년 6월='한미 FTA 사전 실무점검 협의'가 마무리돼 가는 시점에서 미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포트먼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자동차와 의약품에 대한 무역장벽 제거, 미국산 쇠고기 금수의 해제, 스크린쿼터의 축소나 폐지 등 한미 양국 간 통상현안들을 해결함으로써 먼저 '국내협상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굴욕 FTA' 개시를 위한 4단계 퍼주기 작전**

그로부터 3개월 간 정부는 비공개적으로 미국의 4대 요구조건들을 들어주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다음 지난해 10월부터 행동 개시에 들어갔다. 먼저 의약품과 자동차 문제는 국민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고 은밀히 처리했으며, 다음으로 쇠고기와 스크린쿼터 문제는 관련 업계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했다.

◇2005년 10월=정부는 '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당분간 새로운 의약품 가격정책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이미 결정된 가격을 재조사하는 독립기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은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을 보다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됐다.

◇2005년 11월 말=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2007년 1월부터 강화되는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허용기준을 연 생산규모 1만 대 미만의 자동차 생산업체에 한해 2009년까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기준 변경으로 미국산 승용차 제조업자들은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다.

◇2006년 1월 초=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생후 30개월 미만인 쇠고기 중 뼈를 제외한 부분에 한해 수입을 재개했다. 우리보다 한 달 앞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던 일본은 우리가 수입재개 조치를 내린지 불과 일주일 만에 미국이 수입재개 조건을 어긴 사실을 발견해 다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렸다.

◇2006년 1월 26일=정부가 한국영화의 의무 상영일수인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야 비로소 국내에서 우리 정부가 한미 FTA 개시를 위해 미국에 '퍼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건조성을 주도했다"고?…노무현 대통령의 거짓말**

◇2006일 2월 3일=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 관리가 미 의회 의사당에서 한미 FTA 협상의 개시를 공동 선언했다. 전날인 2일 '한미 FTA 공청회'가 농민단체 등의 저지로 무산됐는데도 정부는 이 공청회가 개최된 것으로 간주한다면서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을 강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대외경제위원회에서 "한미 FTA는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일로 압력 같은 것은 없었다"며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안 되는 미국의 보고서들만 봐도 이같은 대통령의 말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한미 FTA의 개시를 위해 자존심도 내던지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 협상을 처음 요청한 것은 우리 정부였다고 하지만, 본협상 개시의 여건 조성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다.

이와 관련해 외교통상부는 지난달 23일 내놓은 해명자료에서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는) 한미 FTA의 당위성에 대한 미국 국내적 성명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았을 뿐 사전 물밑협상이 우리에게 '굴욕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에 대한 의미 있는 반박은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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