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건설교통부가 정부의 '공식 땅값'이라고 할 수 있는 공시지가 표준지 가격을 발표한 뒤 '엉터리 산정'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공시지가는 재산세 등 각종 토지 관련 세금과 보상평가의 기준이 되는 민감한 통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공시지가가 실제 땅값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이다.
공시지가 표준지 가격은 시군구별로 정하는 지역별 땅값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건교부에 따르면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7.81%에 달했다. 이같은 상승률은 지난해 전국 땅값 상승률 4.98%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공시지가, 현실화율 100% 초과?**
공시지가 상승률이 땅값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이유에 대해 박상우 건교부 토지기획관은 "공시지가는 땅값 상승률뿐 아니라 주변시세,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감정평가사들이 평가한다"면서 "공시지가와 실제 땅값과의 격차를 좁힌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건교부 관계자는 "올해 표준지 가격 산정은 국내 2200여 명의 감정평가사 중 절반이 넘는 1200여 명이 동원돼 전국 48만1000필지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4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면서 표준지 가격 산정이 엄밀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지가가 현실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정해져 왔다는 의혹이 그 어느 때보다 확산되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들의 말대로 조사가 정확하다면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을 적용할 경우 그동안 건교부가 자랑해온 '현실화율'이 100%를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지난해는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이 90%가 넘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공개했으나, 올해는 '현실화율 비공개'라는 어쩡정한 방식으로 논란을 피해가려는 태도를 취했다.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100%가 넘게 된 이유에 대해 의문이 계속 제기되자 박상우 기획관도 마지 못해 "지난해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율이 91%라는 것은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계속 실패를 면하지 못한 원인이 엉터리 가격 통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2월 건교부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발표하면서 "2005년도 표준지가가 시세의 90.9%까지 육박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은 2003년 67.0%,2004년 76.3%에 비해 크게 높아져 시장가격과 거의 비슷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말 "건교부가 발표한 공시지가는 부동산시장의 시가 추정치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등 전국 8개 지역 132개 필지의 공시지가와 시가를 비교한 결과 현실화율은 4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극단적인 일부 사례를 가지고 전국을 상대로 한 정부의 통계를 문제삼는 것은 무책임한 공세"라고 일축했다.
당시 건교부 관계자는 '적정가격'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현실화율 91%'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시지가는 일종의 정책적인 가격이며, 정부가 인정하는 시장가격도 부동산 시장의 시세와는 다른 '적정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적정가격은 '개발 기대이익 등 미실현 이득을 배제한 거래가능한 가격'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때문에 적정가격이나 이에 기초한 공시지가가 부동산 시장 시가와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는 논란 자체는 의미가 없다"면서 "정부는 광범위한 표준지 조사를 통해 적정가격 대비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을 최대한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건교부 "감정평가사들이 정부 눈치 보느라 왜곡"**
그러나 토지평가 업무를 맡고 있는 건교부 관계자들도 올해부터는 '현실화율'을 언급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들이 정해 정부에 보고하면 그대로 발표가 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적정가격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감정평가사가 비공식적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공시지가 상승률이 전국 땅값 상승률의 3배나 높아진 원인에 대해 "공시지가 산정에 동원되는 감정평가사들이 해마다 많이 바뀌는데, 국민들의 피부로 느끼는 땅값과 차이가 너무 난다는 지적을 어느 정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면 예전의 감정평가사들은 왜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을 공시지가로 산정했느냐"는 질문에 "공시지가를 급격히 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정부의 눈치를 알아서 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로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을 높이려는 의지를 보인 현 정부에서 공시지가는 2004년 19.34%, 2005년 15.09% 등 3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내 3년간 누적 상승폭은 61.8%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부동산 시세와 정부의 공시지가는 아직도 괴리가 크다. 이 때문에 지난해 8.31 대책 등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투기심리를 잠재우는 데 역부족인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건교부는 실효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려는 고민보다는 세금부담이 늘어나게 생겼다는 비난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건교부 관계자는 "공시지가를 많이 올려 세금부담이 크게 늘게 생겼다고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현실과 보다 가깝게 공시지가를 조정했는데 건교부가 욕을 먹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공시지가는 과세의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세금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문제라면, 적절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과세당국의 몫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부처나 산하기관에 책임을 돌리는 관료들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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