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했다.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었다. 종국에는, 거짓말이 한 인간의 외연에 얼마나 추악한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지 절감하며 진저리를 쳐야 했다. 솟아나는 욕지기를 달래가며 황우석 교수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필자가 감내해야 했던 감정들의 순번이다.
***진정한 '원천 기술'은 황우석의 '변명 기술'**
애초 진솔한 사과를 기대한 것 자체가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당해 놓고도, 아직 황 교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구나'하는 자괴감에 너털웃음만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잘못은 했지만 정작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변명 기술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재연됐다. '대한민국'을 강조하며 듣는 이의 누선과 애절함에 호소하는 읍소 기술은 더 예리해졌다. 한 가지 새로 선보인 기술이 있다면,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는 조작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동일 기자회견 내 시간차 공격 기술' 정도라고나 할까?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것이 진짜 휘발유다. 그러나 가짜 휘발유는 진짜 휘발유의 양이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가짜 휘발유일 뿐이다. 연구 부정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예외 없이 황 교수는 무균돼지니 특수동물 복제니 하면서 논문으로 검증되지 않은 연구 성과를 언론에 먼저 발표하는 기민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성과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저질러진 논문 조작을 덮지 못한다.
더욱이 엄연한 조작마저도 온갖 교언(巧言)과 이리저리 둘러대기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쁜 황 교수의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어떤 논쟁도 부질없는 것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새로운 사실이 발각될 때마다 다른 변명을 늘어놓으며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정신과 전문의들의 지적처럼 황 교수가 이미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정신병리에 고착됐다는 점이 거의 분명했기 때문이다(〈시사저널〉 2006년 1월 10일자).
***제자를 '사지'로 모는 참담한 모습**
뭐니 뭐니 해도 이번 기자회견의 백미는 황 교수 주위에 도열한 젋은 연구원들의 결연한 모습이었다. 과연 이들은 '(황우석) 선생님이 가시는 길이 지옥이라면 그 곳까지도 마지막 같이 하겠다'고 자랑스레 진술한 황 교수의 장담이 결코 근거 없는 주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한 때나마 스승으로 모시던 분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예우하기 위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사전 기획에 따라 고도의 언론 플레이에 소품으로 등장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물론, 황 교수의 애원처럼 이들이 '아무리 싸게 값을 매겨도 외국에 가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의 소유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를 경악시킨 과학사 희대의 논문 조작 추문에서 한 칸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황 교수의 염려처럼 '이 사회, 더 나아가 과학계에서 함께 매도'될 운명에 처해 버렸다는 이 비극적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교수의 회유나 협박, 또는 강압적 연구실 분위기 때문에 조작 사실을 알고도 이를 용기 있게 드러내지 못했다면 적어도 정상 참작의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드러난 연구 부정행위 앞에서도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를 일삼는 황 교수의 대국민 기만 퍼포먼스에 어떤 이유로든 일조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과학적 범죄 행위다. 무엇보다 출발부터 정직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이들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분별없는 거짓 방조 또는 관용 행위 때문에 앞으로 과학계에서 어떤 징벌 또는 경력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는 어쩌자고 이들을 기자회견장에 내 보내셨는가? 아무리 자신의 상황이 다급하더라도 명색이 스승연(然)하는 분이 제자들을 사지로 모는 이 엄청난 모순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사람이 정녕 필자 혼자만은 아닐 터이다.
***진실은 여론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번 기자회견은 과학적 진실마저도 수적 우위로 결정될 수 있다는 믿음을 황 교수가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드러냈다. 젊은 연구원들을 병풍처럼 도열시킨 황 교수의 위세는 조직 폭력배의 보스가 소위 어깨들을 대동하고 상대방에게 힘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 기세 때문이었을까? 난다 긴다 하는 언론사의 기자들이 맥없는 질문으로 일관하고, 누구는 박수까지 쳤다니 말이다.
황 교수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져 각종 언론사의 설문 조사에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보다 황 교수의 말을 더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설문 조사의 대표성이나 타당성 등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황 교수의 기대대로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이 여론으로 결정된 예가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거짓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허장성세일 뿐이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수의 많고 적음이 결코 아니다. 더 나아가 학자적 양심을 갖추지 못하고, 제자마저도 언제든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로 전용할 수 있는 사람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첨단에 자리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그렇지 않아도 피멍과 편 가름의 상처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황 교수의 애매한 언행은 이제 멈추어져야 한다.
황 교수 지지자들이 또 촛불 집회를 한다고 한다. 민주 국가에서 집회의 자유는 분명히 보장돼 있으니 이들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제발 외신 기자들에게 사진 찍히고 전 세계에 얼굴이 전송돼 거짓을 옹호하는 부끄러운 모습의 기록으로 평생 남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줄 것을 부탁할 뿐이다. 얼굴이 다 가려지는 마스크 꼭 착용하고, 모자 챙겨서 나오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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