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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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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기고] '황우석 공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당초 '황우석 신드롬'에서 시작된 황우석 사태가 '황우석 스캔들'을 넘어 졸지에 '황우석 공황'으로까지 급전직하 하고 있다. 숱한 의혹과 공방이 난무하며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켜 왔던 황우석 사태는, 이제 황 교수의 연구 논문 자체가 조작된 거짓이라는 치명적인 증언과 그 증언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속속 제시되면서 파국적인 종말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아직 완벽하고도 최종적인 진실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전개된 일련의 과정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참담하고 당혹스럽다. 섣불리 예단할 일은 아니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과학사에도 엄청난 충격과 경악을 안겨줄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판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물론 일차적이고도 핵심적인 책임 소재는 황 교수 본인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응분의 조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배경에는 황 교수 개인의 잘못을 넘어, 무엇보다 정부와 언론, 과학자를 비롯한 지식인 집단의 책임 또한 매우 크고, 나아가서는 무턱대고 집단적인 열광과 환호에만 빠져 있던 일반 국민들도 반성할 대목이 작지 않다. 이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황 교수 본인을 비롯해 우리 모두 정직한 자세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고 사태의 진실을 밝혀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겪을 깊은 아픔과 상처 또한 두렵고 부끄럽다고 해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정면 돌파해야 한다.

황 교수 본인이 지금이라도 더 이상 거짓말과 책임 전가를 하지 않고 진실의 전모를 고백한다면 제일 좋을 것이며, 이렇게 결자해지 방식으로 사태의 실마리가 풀린다면 불필요한 희생과 피해와 혼란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지금으로서는 황 교수의 진정한 고백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진실 규명의 주체는 불가피하게 지금 현재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는 서울대 조사위원회나,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검찰 등 사법 당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설사 황 교수의 고백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이러한 진실 규명이나 검증은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에게 일단 맡겨 두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대미문의 추악한 스캔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슬프고도 일그러진 현주소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되비쳐주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새삼 되짚어보아야 할 점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작금의 황우석 사태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점검할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황우석 사태라는 거울에 비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은 어떤 모습인가?

***첫 번째는 '결과(혹은 성과) 지상주의'다.**

결과 지상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과정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무시한다는 점과, 바로 그래서 속도와 효율을 우상 숭배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사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이제 겨우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확립한 기초 단계에 불과함에도, 일반적으로는 마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예수의 기적'이 황 교수에 의해 곧 눈앞에서 펼쳐질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황 교수 본인 또한 "대문은 열었고 작은 사립문 몇 개만 남았다"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이런 환상의 조장에 일조하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것은 아직 실제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임상 시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 시점에서 줄기세포 치료법의 실용화가 언제 얼마나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최악의 경우 실용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또한 익히 알듯이, 실험실에서 연구할 때는 질병 치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가 정작 실제 환자 적용 단계에 가서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중한 고려나 사려 깊은 검토 없이 기초 단계의 성과 하나만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미화하여 사람들에게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은, 황 교수의 연구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결과적으로 고통과 농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성할 여지가 작지 않다. 나아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를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관념에 쫓기는 데다 온 세상이 홍수처럼 쏟아 붓는 갈채와 환호에 길들여지다 보니 윤리 의식에 무감각해지고, 그래서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리한 수단·방법도 별 주저 없이 동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논문 조작은 물론 얼마 전에 사실로 밝혀진 난자 채취 과정에서의 비윤리적인 행위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지저분한 거짓말 공방은 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도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황 교수는 일관되게 사실을 부인하거나 상황을 호도함으로써 연구자의 가장 소중한 덕목인 진실성과 정직성에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연구를 하면서, 더군다나 온 국민의 열광적인 성원과 국가 차원의 엄청난 지원(이 또한 국민의 세금이지 않은가)까지 한 몸에 받으면서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는 것은, 사실 매우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허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근본에 과정과 절차는 얼렁뚱땅 건너뛰거나 경시한 채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결과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과도한 욕심과 조급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건대 윤리 의식의 마비와 결핍은 그 당연한 귀결이며, 이는 곧 과학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철학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광기에 가까운 '집단 패거리주의'다.**

특히 황 교수 연구의 문제점을 파헤치고자 했던 방송사와 프로그램에 가해진 집단적인 매도와 비난과 공격은 거의 '테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저질러진 비윤리적인 행위와 행태를 누가 두둔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문제의 전모와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총괄적 맥락에 대한 차분하고도 이성적인 접근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사회 전체가 집단적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고 무서운 전염성 열병이 돌고 있는 듯한 이러한 분위기는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의 견해 혹은 입장이 지배적인 주류 위치에 올라섰다고 해서 나머지는 모두 그 기준이 금 그어 놓은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야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수에 의해 자행되는 전체주의적 횡포요 폭력이다. 그 오랜 군사독재의 폭압을 뚫고 형언키 어려운 고난과 시련의 가시밭길을 넘어 그나마 여기 이 자리까지 민주화의 역사를 열어 왔건만, 그렇게 피눈물로 쟁취한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참담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차이와 다양성이 말살되는 곳에서, 소수와 비주류가 억압받는 곳에서, 진지한 비판적 성찰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이런 획일적인 곳에서 어찌 대세를 거스르는 '창조적 용기'가 꽃필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단세포적인 곳에서 어찌 다수 주류에 맞서는 소수 비주류의 '역동적 지혜'가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역동하는 창조성과 생동하는 다양성과 약동하는 자율성이 사라진 사회는 정체와 퇴보를 면치 못할 터, 황우석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는 집단 광기의 현상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시체 냄새 진동하는 국가보안법이 무덤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서 눈을 부릅뜨고 있고, 저 죽어 마땅한 골동품 같은 악법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광분하는 세력들이 판치는 세상이니, 이 마당에 무슨 말을 더하랴. 문제는, 미친 듯이 무뇌아적인 열광과 환호만 보내다가 그것이 한낱 사기극이자 거짓으로 일관된 일장춘몽으로 끝날 경우 빚어질, 전 사회적인 정신적 공황과 허탈감, 그리고 자괴감을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다.

***세 번째는 과도하고도 왜곡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다.**

한번 물어보자. 왜 '국익' 앞에서는 모든 것이 작아져야만 하는가? 국가와 국익이라는 리바이어던만 출현하면 그 외의 다른 모든 가치는 무조건 그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를 올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일사불란한 대오로 똘똘 뭉쳐 잘못도 대충 눈감아주고 아군을 분열시키는 '딴소리'는 일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도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 허나 분명히 확인해 두어야 할 것은, 이는 바로 그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황우석 사태만 보더라도, 진정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대한민국 과학의 참된 실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반칙을 하고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또 정당하게 제기되는 우려와 충고와 비판을 짓밟아서라도, 그저 손에 잡히는 멋들어진 결과만 속성으로 제조해내면 되는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국익과는 거리가 먼, 외눈박이 혹은 절름발이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사실 되짚어보면, 작금의 황우석 사태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황 교수가 '민족의 영웅'으로,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로, '국보급 국민 과학자'로 추앙받게 된 것은, 물론 본인의 업적과 성과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온갖 지원과 특혜 제공과 홍보와 여론 몰아가기에 전력투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황우석 나팔수'와 '황우석 녹음기'로 전락한 언론의 천박한 과학 저널리즘이 맞물려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키면서 '황우석 신드롬'이 들불 번지듯 급속도로 확대 재생산된 것 아닌가. 정부와 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다각적인 검토나 냉정한 문제의식 없이 그야말로 '무식하게' 황우석에 '올인'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면, 과장일 것인가.

일개 과학자의 논문 한 편을 가지고 온 사회와 온 국민이 이처럼 세상이 뒤집어질 듯 난리법석을 피우는 나라는 없다. 정상적인 사고와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좀체 납득하기 힘든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바탕에 바로 '국가'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의 과잉이 가로놓여 있고,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황우석 파동은 바로 이러한 국가와 과학의 비뚤어진 결합이 낳은 불행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황 교수의 논문에 대한 조작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던 와중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난자 기증 운동이라는 희한한 캠페인이 벌어졌고, 가당찮게도 이것이 지난 IMF 경제위기 때 벌어졌던 범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에 비유되기도 했다. 이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난자 기증 운동을 소개하면서 독일의 어느 언론이 '조국을 위한 난자들'이라는 기사 제목을 붙였다거나, 황 교수의 인터넷 팬 카페에 무궁화와 태극기가 난무하고 있는 것은 이런 우리의 일그러진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네 번째는 '경제 지상주의'다.**

황우석 교수가 영웅이자 메시아로 떠오른 그간의 상황 전개 속에서 경제 지상주의가 중요한 지렛대 구실을 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지적돼 온 바다. 정부가 황 교수를 대대적으로 키우고 띄워주는 근본 이유가, 황 교수의 연구가 향후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를 제공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정부가 차세대 성장 동력의 우선순위를 생명공학에 두는 것도 이의 반영이 아닌가? 이는 새로운 이윤 창출을 위해 의료의 산업화·시장화·기업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기업의 이해관계와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서, 마치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구르듯 거침없이 휘몰아치던 '황우석 드라이브'의 실제 동력이 '돈'에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이른바 '국익'을 그토록 맹목적으로 외쳐대는 것도 결국 황 교수의 연구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설사 황 교수는 퇴출되더라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 진척되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성공해 실제 치료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연 그것이 모든 난치병 환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이자 '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가의 치료비 문제에 대한 대책과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특단의 의료복지 정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줄기세포 치료법이 실용화된다 하더라도 돈 없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과학이 참된 인간과 생명을 위해 복무하지 않고 냉혹한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종속된다면, 그 과학은 돈 많은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의 과학'일 뿐이다.

이번 황우석 사태가 잘 보여주었듯이, 지금처럼 돈과 이윤의 논리를 바탕으로 위태롭게 앞으로만 직진하고 있는 탐욕적 물질주의의 활주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국가와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인간과 생명을 위한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첨단 과학 연구도 변질과 타락의 유혹에 끊임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과학이 화폐로 재단되고 측정되는 파괴적인 경제 논리의 포로가 될 때 그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가공할 재앙이 초래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 아닌가.

한마디로 '황우석'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작금의 황우석 사태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그간 우리가 살아 온 파행과 굴절의 역사를 압축적이고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속도와 효율에 매몰된 결과(성과) 지상주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고 비판적 성찰과 이성적인 의사소통을 질식시키는 광란의 집단 패거리주의, 국가와 민족의 거창한 깃발만 휘날리면 사족을 못 쓰고 다른 모든 것은 그 깃발 아래서 숨을 죽여야 하는 천박한 국가주의(애국주의), 끝도 없이 돈과 물질의 바벨탑만을 쌓아올리는 데 여념이 없는 파괴적이고도 야만적인 경제 지상주의―황우석 사태의 본질적 배경을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급속한 산업화·근대화와 폭압적인 개발 독재를 겪어 온 우리 현대사 속에서 괴물처럼 자라난 독버섯들이 아닌가. 그리고 이 독버섯들이 정부·언론·지식인 집단 등의 무책임과 무지와 무감각과 무능 속에서 사회와 국민 전체로 들불 번지듯 퍼져 나간 것 아닌가.

이제 황우석 사태는 사태 그 자체로서 엄밀한 진상 규명과 함께 현명하고도 단호하게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을 투명하게 직시하고 깊이 성찰하는 것, 나아가 이 땅에 만연한 허구적인 사이비 논리와 조작된 거짓 신화를 혁파하고 진실과 양심의 북소리를 드높이 울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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