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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심장'을 교환한 독일 '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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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심장'을 교환한 독일 '대연정'"

[기고] '대연정' 이후 독일 정치의 미래

9.18 독일 조기 총선의 결론은 애당초 대연정의 가능성을 가장 유력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선거 결과 각각 35% 가량의 득표율을 보인 사민당과 기민/기사련 두 국민정당들은 연정 협상이 시작된 뒤 3주 만인 10월 10일 대연정의 구상을 현실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독일 정치 역사상 연방정부 수준에서 두 번째로 탄생한, 두 거대 정당들 간의 대연정으로, 약 70%의 지지자를 등에 업은 강력한 정치 세력이 독일의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대연정의 정치적 교환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향후 대연정 하에서의 독일 정치의 미래에 대해 간단하게 조망해보자.

***기민/기사련은 '얼굴'을, 사민당은 '심장'을 얻었다**

두 당이 발표한 연정의 기본 구도는 연정에 참가하는 두 정치세력 간의 정치적인 교환과 타협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한 마디로 '얼굴과 심장 간의 교환'이다.

기민/기사련은 앙엘라 메르켈이 총리 직을 맡으면서 '얼굴'을 확보했고, 향후 4년간 그녀의 지붕 아래에서 독일 정치가 꾸려지게 됐다. 사민당은 비록 얼굴은 내주었지만, 주요 부처들을 포함하는 8개 부처의 장관직을 확답 받아 자신들이 지난 2003년부터 2년 반 동안 강하게 추진해 온 사회경제 시스템 개혁을 위한 핵심적인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비록 남의 지붕 밑일지언정 정당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을 보장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는 개혁의 성공 정도에 따라 차기 선거에서 얼굴까지 탈환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점에서 연정 국면 초기의 정치적 거래는 사민당에게 그리 불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슈뢰더, 명분과 실리 모두 얻고 정치역정 마감**

애당초 사민당에는 이번 선거와 더불어 화려한 정계은퇴를 모색했던 슈뢰더 총리를 대체할 인물이 없었다. 이러한 당내 정황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듯, 사민당은 연정의 거래 과정에서 초반부터 인물을 고집하기 보다 정책을 유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연정의 협상이 쉽지 않은 것임에도 인물과 정책 간의 교환의 큰 틀이 어렵지 않게 짜여지면서 상대적으로 협상이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교환으로 슈뢰더는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정치적인 위신에 큰 타격 없이, 게다가 얼굴의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까지 베푸는 모습을 보이며 정치가로서의 긴 역정을 마감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더해 자신이 시작한 개혁 프로그램의 지속까지 보장 받게 되어, 이번 거래를 통해 명분과 실리 모두를 거머쥐게 되었다. 승부사로서 그가 선택한 조기 총선의 카드는 결과론적으로 그 자신과 당에 매우 적절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사민당의 우경화'로 양당의 결합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사실 두 당간의 정치적 결합은 이미 사민당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마련한 우경화된 개혁 프로그램인 '아젠다 2010'을 강행하면서 노동조합과의 전통적인 유대의 끈을 약화시키는 과감한 정치적 선택을 하면서부터 이미 암묵적으로 진행중인 것이었다. 다만 권력의 형식에 있어서 두 당은 여야로 나뉜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대립해 왔고, 특히 선거전에서는 두 당 모두 유권자들을 잡기 위한 보다 선명한 대결 양상을 벌였지만 이미 사민당의 '우회전' 이후 내용적으로 둘은 많은 부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의 기민당은 애당초 영국의 보수당이나 미국의 공화당에 비해 훨씬 사회 친화적, 노동 친화적인 성격을 지니며 넓게 보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당이다. 두 당은 독일의 정치 풍토에서 계속해서 양대 대립 축을 이루어 왔으나, 물과 기름과 같은 성격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기민당 내에도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지지자들이 꽤 존재하며, 사민당 내에도 하르츠와 같은 노동을 배제하지 않는 사용자 그룹도 존재한다.

***'강력한 의회', 시민사회와 갈등 없을까?**

이번 대연정의 성립으로 19세기 말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출발한 거대한 복지제도를 과감하게 축소하는 것을 지향한 사민당의 개혁 프로그램은 기민당의 비호 하에 지속되게 되었다. 두 당간의 거대한 '좌우동거'는 일단 두 당이 선거전을 마치자마자 모두 강조했던 독일의 경제사회 개혁의 지속을 위한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는 집권당이 이익단체와 손을 잡고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의 정치를 주변화시켰던 2003년의 정치적 선택이 보다 진일보하여 실현된 것이라고 하겠다. 대연정은 강력한 의회를 의미하며, 이는 소위 시민사회(이익단체)에 대한 정치사회(정당과 의회)의 정치적 우위의 실현을 나타낸다.

강력한 의회는 어쩌면 개혁의 진행 속도를 보다 빠르게 촉진시킬 수 있겠으나, 자칫하면 그 역작용을 드러낼 수도 있다. 강력한 의회주의에 도전하는 시민사회의 결속이 보다 강화되면서 향후 정국이 새로운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젠다 2010'의 실행이 곧장 월요시위와 사민당의 내분을 가져왔던 근래의 경험은 향후 의회가 독주하는 정치권의 행보에 시민사회가 새로운 도전을 가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미 제2야당으로 떠오른 '좌파정당'은 사회복지단체 및 노동조합들과의 연대를 통해 '흑적 대연정'에 대한 투쟁을 장내와 장외 모두에서 강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대연정이 개혁의 속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하며, 대시민 사회 전략을 어떻게 펴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인 퍼포먼스는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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