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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만 바라보는 농촌은 지탱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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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보조금'만 바라보는 농촌은 지탱 불가능하다"

'초록 대안' 농업<7> 지역 자급과 농촌의 대안(下)

***언제까지 중앙의 '보조금'에 의존할 것인가**

세 번째 자급 대상은 돈 그 자체와 추상적인 자본, 지자체 재정 등과 같은 자본 영역이다. 이는 흔히 경제자립, 재정자립으로 표현되는 자급 유형이다. 지역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지역의 돈'이 풍부하고 잘 돌아야 한다. 한국 경제사가 공산품 수출 위주의 성장거점 전략과 불균등 발전 전략으로 관철돼온 탓에 농촌의 피폐와 농업의 파탄이 필연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은 일본의 농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농촌 지자체는 돈이 없고 재정자립도가 낮다. 농촌의 경제적, 재정적 자립은 쉽지 않은 일이고, 농촌의 부족한 재정 중 일정 부분은 국가에서 보전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농업과 농촌을 희생시켜온 경제성장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히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재정 자립도가 낮은 농촌 지자체에 대해 보조금을 미끼로 삼아 정책적 종속을 강요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 보조금에는 항상 끈이 달려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중앙 정부에서 특정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이른바 '정책유도'를 위해)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제시한다. 현재 20%를 밑돌 정도로 낮은 농촌 지자체(군 기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국가에서 농촌에 각종 정책적 주문을 할 때 채찍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당근과 채찍'은 의욕이 없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도입될 수 있겠지만, 차별성 있는 농촌정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에게는 제도적 한계로 작용된다.

농촌 지자체들이 취약한 재정구조로 인해 늘 부족한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중앙에 '줄 대기' 또는 '줄 서기'를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가로부터 예산배정을 많이 받아온 단체장이 주민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국가의 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는 도농관계의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도시 측에서 당연히 부담해야 할 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치재원이 지나치게 열악하게 되면 지자체가 소신 있는 행정을 펼 수 없고, 특색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어진다. 주민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이런저런 참신한 주장을 해도 관련된 법과 제도의 한계에 부닥치게 되면 그런 주장을 결코 실현시킬 수 없다.

지자체의 재정적 자립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돼 지방세 수입이 늘어나면 자치재원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 자체가 쇠퇴하고 지방 농정이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지자체가 재정적 자립을 이루는 데는 오랜 세월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 경우에는 지역사회가 합의를 통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추진해야만 재정자립을 이룰 수 있다. 아주 잘 사는 듯이 보이는 일본 농촌도 결국은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기반시설 정비에 체계적으로 투자한 결과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정부가 농가에 직접 보조금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래서 농민들 자체가 정부의 정책에 그다지 종속적이지 않다. 하지만 20% 내외의 낮은 재정자립도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지자체는 국가의 정책적 주문에 역행할 수도 없고, 독자적인 지역정책도 전개하기 어렵다.

***지역의 특성에 기반을 둔 지역자급 지향해야**

지역자급의 관점을 강조한다 해서 모든 것을 100% 자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오히려 자연계의 법칙(에너지 법칙이나 엔트로피 법칙 등)에도 어긋난다. 과거의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도 모든 것을 100% 지역 안에서 자급한 것은 아니었다. 생태학적 측면에서나 경제학적 측면에서나 농촌도 지역마다 다르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 독특한 자연환경에 기초한 독특한 먹을거리와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역사적으로 독특한 자급체계가 형성돼왔고,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방식도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돼온 것이다. 국가와 시장은 이런 지역적 시스템을 뒤흔들려는 시도를 해왔다.

한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자급수준은 지역의 유형, 생산자재와 생활자재, 지역의 범위 등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농경지가 부족한 산간 마을에서 쌀을 완전히 자급하기란 쉽지 않으며 해산물의 자급은 아예 불가능하다. 또 산간 마을에서는 짚이 부족하다보니 너와지붕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질이 낮은 인력으로만 공무원을 100% 자급한다면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한 마을, 한 지자체의 자급수준을 무리하게 100%에 맞출 필요는 없다. 모자라는 부분을 억지로 채우려고 하면 무리가 생긴다. 지역의 생태적 조건과 환경의 용량을 고려하여 자급수준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현재의 자급수준과 가능성, 조건 등을 다방면으로 진단하여 무엇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된다. 지역자급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실천의 과정 속에서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지역자급**

자급의 지역적 범위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자급의 지역적 범위는 자급의 대상과 자급의 수준을 고려하여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급을 실천하는 각각의 농가가 기초단위가 돼야 한다. 농가 단위의 개별적이고 튼튼한 자급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의 자급 문제를 정책적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형식적인 제도와 시스템만 만들어지고 애초에 지역이 지녔던 활력은 사라지고 만다. 농가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자립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공산품의 자급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자립적이고 개성적인 농가가 지역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만 지역자급 시스템이 잘 작동될 수 있다.

그리고 농촌마을 공동체의 공동사업이 활성화되어 마을 내 자급 시스템이 재구축돼야 한다. 농촌마을은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모든 생산자재 및 생활자재가 자급되는 사회였다. 또 계절적으로 부족한 노동력과 긴급히 요구되는 서비스를 상호부조로 확보하는 '향약'이나 '두레'라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농촌마을이 불과 3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초 지자체의 규모(인구나 면적)가 일본이나 서구에 비해 아주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을 단위의 자급 시스템이 지닌 중요성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뿌리가 튼튼한 지역사회일수록 열매도 풍성한 법이다.

교통 및 통신의 발달을 고려하고 행정의 최소 자치단위를 감안할 때 시와 군 단위로 자급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정책과 운동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경제의 세계화 추세와 더불어 지역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참여정부는 지역간 경쟁을 더욱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간 경쟁의 격화가 폐해를 불러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초 지자체 단위에서 지역자립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점에서는 지역간 경쟁이 지역자립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런 가능성을 얼마나 현실화하느냐에 따라 지역자립을 촉진할 수도 있고, 지역간 불균형 발전을 가속시킬 수도 있다. 지역자급이라는 관점에서 농촌사회를 복원하고 대안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시와 군 단위의 기초 지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자급의 범위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 하천을 끼고 상류 지역과 하류 지역 사이에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온 역사적 관행을 고려한다면, 유역권으로 자급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형상 산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산을 넘어 오고가는 물적, 인적 교류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급의 범위를 좀 넓게 검토할 수 있다. 도시와 인근 농촌 사이에 교류(인분과 농산물 교환 등)가 이루어졌던 과거의 역사나 지금의 현실적인 종속-피종속 관계를 고려한다면, 도농 통합형으로 자급범위를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또 행정구역의 분할이나 통폐합과 관련된 역사적 측면에서도 적절한 자급범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자급의 범위는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가치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자급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자원의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효율성을 떨어지고 에너지 낭비는 심해진다. 서비스의 재생산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기 쉽다. 인간은 지역적인 근거를 갖고 살아야 안정된 지역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 현재의 기초 지자체 범위를 지나치게 넘어서는 자급범위를 설정한다면 결국은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을 독립된 폐쇄공간으로 규정하고 자급 대상의 공간적 범위를 제한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지역자급이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지역 내 자급 시스템을 확보해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중심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상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 또 자급의 지역적 범위는 다양할 수 있지만 정책적으로나 지역운동적으로나 기초 지자체 단위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자각된 농민의 유연한 연대를**

지역자급의 관점은 농업과 농촌의 희생 위에 성립된 현대사회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세계화 경제가 초래하는 지역경제 파괴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구상된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간 생활의 근원적 공간인 농촌을 지키자는 목적에서 제안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은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다. 앞으로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자급이란 개념과 방향성은 이제 과거회귀나 현실도피가 아니라 명확한 역사성을 갖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이는 풀뿌리 지방자치의 강화를 요구하는 주장에서부터 주민 주체의 마을 만들기 운동이나 학교 급식조례 제정 운동, 지역통화 도입 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농촌마을의 농산물 가공업이 활기를 띠면서 지역특산물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데서 확인된다. 이웃 일본에서도 지역자급이란 용어와 더불어 '지산지소(地産地消)'나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용어가 농업 및 농촌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과 운동은 그 출발의 동기나 활동방식, 지향, 명칭 등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지역 내부의 순환 시스템을 회복하고 이 순환 시스템과 지역 내부-외부 간 유통 시스템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외부사회에 대한 지역의 경제적 자립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점은 대체로 공통된 측면이다. 이런 움직임들을 필자는 '지역자급'이란 개념으로 통합해서 본다.

출발점은 지역 주민의 자각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런 자각은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역의 문제점도 대안도 보이는 법이다. 같이 고민하고 문제를 풀 동지도 나타난다. 모든 것을 개인의 자각이란 도덕적인 부분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정책이나 운동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 주민의 학습과 교육활동이 항상 중시돼야 한다. 자신의 생활과 지역에 자부심을 가진 주민들이 서로 뭉칠 때 실타래처럼 엉킨 지역문제도 한 매듭씩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자각된 개인의 유연한 연대. 이것이 지역자급이란 관점의 핵심이고 농업 및 농촌 살리기의 운동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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