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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일본인이 되는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5> 사자(死子)의 국민화

***사자의 국민화**

그런데 재일 조선인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죽음의 개념과 추도 의례를 통해 '국민'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내 부모는 둘 다 1920년대에 태어난 재일교포 1세이다. 1세라고 해도 어릴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왔으니까 2세에 가까웠고 태어난 고향과의 연관도 희박했다. 아버지는 죽거든 고향에 묻어달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것도 애매한 것으로 구체적인 지시를 남긴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묘를 어떻게 해달라는 바람을 얘기한 기억이 없다. 1980년에 어머니가, 1983년에 아버지가 잇달아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들 유족에게는 추도에 대해 아무런 확실한 마음가짐도 없었다. 더욱이 형들이 아직 옥중에 있었던 당시 아버지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가 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마음 아플 것도 없이 어디서 들었는지 즉시 장의사 사원이 달려 왔다. 그가 처음으로 물은 것은 '종파는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일 조선인의 대다수는 불교도가 아니며, 따라서 종파 같은 걸 물어 와도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계명은 어떻게 할 것이지 묻는다. 그런 건 없다고 대답하니, 계명과 위패가 없는 장례식은 없다는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30만 엔, 50만 엔,100만 엔이 있는데 저렴한 것으로 하나 어떠신지요?'라고 임시의 계명을 권한다.

다음으로 '가문은?', 하길래 '조선인에게는 가문은 없다'고 대답하니 '그럼 이걸로 합시다', 하고 카탈로그와 같은 것을 펼쳤다. 가문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적절한 가문이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일일이 저항하기에는 확고한 방침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유족은 피로와 충격으로 멍한 상태니까, 결국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장의사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다.

'묘지는 어떻게 하실까요?', 라고 묻길래 아무런 준비도 없기에 말문이 막혀 있었더니, 그것도 묘석상과 연락을 해 준비해 주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오히려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해주는 장의사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다.

이 과정을 나는 나중에 돌이켜보고 '죽은 자의 국민화'라고 이름 붙였다. 거의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기는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 이와 같은 과정에 아무런 위화감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장례식이나 묘의 문제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공동체에 의한 추도의 의례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무의식 중에 추도의 의례를 통해 '국민'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들 재일 조선인은 자신이 그 틀로부터 밀려나와 있었다는 것을 죽은 후에 깨닫는 것이다.

부모님의 묘는 교토의 아다지노넨부츠사(化野念仏寺)에 있다. 거기에 있는 첫째 이유는 예부터 무연보살을 묻어온 이 절이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나 불교도가 아닌 사람도 대범하게 묘지에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연보살로 간주되어 그 묘지에 묻힐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재일 조선인의 묘가 있다. 모두 우리집과 엇비슷한 사정이었으리라. 묘비의 형식은 여러 가지다. 많은 경우 묘비의 정면에 고인의 일본식 이름을 새기고, 측면에는 조선의 출신지와 '본관'이 새겨져 있다. 본관이란 일족의 발상의 지를 가리킨다. 죽은 뒤의 묘비명에까지 일본명이라니 서글프지만 그래도 측면에는 자신의 뿌리를 새기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이 애틋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본이라는 이국에서 죽음을 맞은 1세들의 묘는, 일본식과 조선식, 불교식과 유교식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재일식(在日式)이라고밖에 부를 수없는 것이다.

***불사(不死)의 공동체**

'국민'이라는 관념은 사람을 '삶(生)'에 붙잡아두는 한편 '죽음(死)'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 경우 '죽음'이란 현실에서는 죽음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지만 불사(不死)나 영생(永生)에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유행>의 일본어판이 간행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일독한 후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표상의 분석에 '죽음'이라는 시점을 도입하는 뛰어난 착상에 감탄했다.

무연전사의 묘와 비, 그것만큼 근대문화로서의 내셔널리즘을 완벽하게 표상하는 것은 없다. (중략) 이들의 묘에는, 누구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사체나 불사의 혼은 없다고 해도 역시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국민적 상상력이 가득 차 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은 '국민'을 한 사람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한다. 프로이센의 농민 아무개, 작센의 장인 아무개, 바이에른의 공증인 아무개를 일괄해 '독일인'으로 상상한다. 그러기에 라인강변의 누구누구가 '프랑스인'에게서 상처를 입으면, 프로이센에서도 작센에서도,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분개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추도의 의례는 그 '소름끼치는 국민적 상상력'과 깊이 연결돼 있다.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친 자들의 묘. 그것은 이미 개별적인 죽은 자의 묘가 아니라, '우리'라는 관념, '국민'이라는 관념의 묘인 것이다.

앤더슨은 '마르크스주의도 자유주의도, 죽음과 불사에 그리 관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그에 반해 '내셔널리즘의 상상력'은 '죽음과 불사에 관여 한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해 아마도 모든 진화론적ㆍ진보주의적 사고 양식의 큰 약점은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해 조바심 나는 침묵으로 답하지 않는 데에 있다. 동시에, 종교사상은 온갖 방식으로 일반적으로는 연명성을 연속성(업, 원죄)으로 전화하는 것으로, 불사까지도 애매하게 암시한다. 이와 같은 종교 사상은, 죽은 자와 앞으로 태어날 자의 연쇄, 즉 재생의 신비와 관계된다.

인간에게 숙명의 궁극은 죽음이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러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죽음에의 두려움과 불사에의 욕망이 있다. 근대의 계몽주의, 합리주의는 그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을 후퇴시켰지만, 죽음과 불사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인간은 또한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귀족과 노예, 지주와 소작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구조로서 인류사회학을 이해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해방을 지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거기에서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노예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의 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 검은 피부로 태어났는가? 왜 여자로? 왜 재일 조선인으로? '생의 우연성'과 연관되는 이런 물음에의 답을 근대 이후의 합리주의적 사상은 갖고 있지 않다. '거기서 요청되는 것은 연명성을 연속성으로, 우연을 의미 있는 것으로, 세속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 '변환 장치'야말로 내셔널리즘이라고 앤더슨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복수의 개인은 운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다.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 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의 숙명성을 견디어 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탈리아를 위해 죽는 자는 죽지 않는다.' 1937년 크리스마스, 밀라노 대성당 정면에 내걸린 거대한 깃발에는 이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스페인 시민 전쟁 중 프랑코의 반란군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에 파병된 이탈리아군 전몰자를 추도하는 문구였다. (칸트로비치, <조국을 위해 죽는 것(祖国のために死ぬこと)>, みすず書房)

1936년, 조선반도에서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장인 시오바라겐자부로(塩原源三郎)가 조선 사람들을 향해 '천황 폐하를 위해 신명을 바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소아(小我)를 버리고 크나큰 존엄에 살아 국민으로서의 참 생명을 발양하기 위함이다'라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은 참으로 사는 것이니, 참으로 살고 싶으면 죽으라는 것이다.

'나'는 유한하지만, '국가'나 '국민'은 무한하다. 그렇다면 '국가'나 '국민'을 위해 죽으면, 그 [나]는 불사가(죽지 않게) 된다.

근대 내셔널리즘이 만들어 낸 '국민'이라는 관념, 국토나 혈연의 연속성, 언어나 문화의 고유성과 같은 환상에 의해 구성되는 이 만만치 않은 관념은, 인간이 갖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사의 욕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자신의 재산, 혈통, 문화를 영구히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내셔널리즘의 토대가 된다. 이 관념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의 숙명성과 생의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는 것이다, 혼자서 살고, 혼자서 죽는다, 죽은 뒤는 무(無)다. 이와 같은 생각에 이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내셔널리즘에서 오는 현기증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있어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분명히 마르크스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 형성의 배경에 유대 기독교적인 종말 사상의 영향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계급투쟁으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를 거쳐 계급의 폐절(廃絶)에 이르러 그 시점에서 인류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구상은, 일종의 종말론적 유토피아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불사에의 바람을 이것이 가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당이 민족주의 정당이나 원리주의 집단으로 자연스럽게 변신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것이다. 그들의 스스로의 죽음과 불사를 둘러싼 상상을 가탁하는 대상을, 저것에서 이것으로 바꾸었을 뿐인 것이다. (계속)

번역 : 김혜신 가쿠슈인대학 강사(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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