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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한국식 개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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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하준 교수의 '한국식 개입주의'

[신간] '제조업 강국론' 편 <개혁의 덫>

노무현 정권의 ‘주류 개혁론자’들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의 장하준 교수는 최근 발간된 <개혁의 덫>(부키 간)에서 ‘자본가 편인가, 노동자 편인가’ 하는 기준으로 보자면, 현재 흔히 ‘좌파’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주류 개혁론자’들은 “지극히 우파적“이라고 규정한다.

*** “노무현 정권의 ‘주류 개혁론자’들은 ‘지극히 우파적’”**

장 교수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가령 재벌 통제의 문제에 있어서 이들 주류 개혁론자들은 노동자를 비롯한 이해당사자 집단들의 관여에 의한 통제가 아닌, 주주의 재산권 행사에 의한 통제를 주장한다. 또 이들은 소액주주 권한의 강화를 강조하는데, 이는 노동자의 이익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주로 단기적 주가에 관심이 있는 소액 주주 입장에서는 경기가 안 좋을 때에는 노동자를 해고해서라도 이윤율을 유지해 주는 편을 선호하는데, 이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주류 개혁론자들을 시장 원리의 확대를 외치면서 노동 시장 규제 완화를 강화하는데, 복지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것은 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시장인가 정부인가’하는 기준으로 보아도 현재의 주류 개혁론자들은 우파적이다. 우리나라의 기존 경제 체제가 국가 주도 체제였기 때문에 지금은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진보적’ 혹은 ‘좌파적’인 것으로 비춰지는지 몰라도 전통적인 기준을 본다면 현재의 주류 개혁론자들과 같이 개방과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우파적인 논리라는 것이다.

***“시장주의와 민주주의는 엄연히 달라”**

이어 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많은 주류 개혁론자들은 시장 원리의 확대가 경쟁 심화를 통해 기득권을 파괴하므로 ‘민주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시장에서의 평등과 민주주의적 의미에서의 평등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시장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확대는 누진소득세 제도의 도입, 국유화 등 ‘반 시장적’인 제도의 도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면 현대 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인 1인1표제 도입까지 반대한 사실은 시장주의와 민주주의가 엄연히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나라의 ‘주류 개혁론자’들이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기존의 질서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 ‘주류 개혁론자’들이 빠진 ‘개혁의 덫’”**

장 교수는 여기서 노무현 정권의 ‘주류 개혁론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우파인지 좌파인지 이념적 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급진적’으로만 기존의 질서를 바꾸려들어 오히려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개혁의 덫’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이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장 교수는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있는 ‘주주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스탠더드’에 불과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주주 자본주의는 다음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이고 따라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둘째, 주주의 이익이란 주가로 표현되는 기업 가치의 극대화를 말한다. 셋째, 이러한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해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 무능한 경영자를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 가치의 극대화는 곧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이다.

장 교수는 “일견 흠 잡을 데 없는 논리”라면서도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문제가 많다”며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주주 자본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구성**

실제로 영미계 나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주주란 직접 금융의 조달자로서 경영진.노동자.채권자.하청업체.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 당사자 집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주주 대부분은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는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 차액만을 추구하는 만큼 주주의 이익을 따르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기업 가치는 주식 시장이 가장 잘 판단한다는 가정도 문제가 많다. 자본주의 역사 3백여 년은 주식 시장이 기업 가치 판단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지는 최근의 인터넷 거품이 잘 보여준다. 특히 그 속성상 실적이 분기별로 평가되는 ‘단기주의’가 만연하는 주식 시장의 경우 설비 및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해 기업 성장을 도모하는 정통적인 경영 방식의 채택을 어렵게 한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는 주주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국민 경제 전체에 득이 되는지 의문”이라면서 “한국도 주주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이 장기 투자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더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돼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나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면서 “경제가 성숙한 선진국에 진입한 다음에 형성된 것이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입된 게 아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개발도상국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 경로를 선택하려 할 때 그런 식으로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줘서는 안된다”면서 “선진국들이 개발 도상국과 후진국에게 자유 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후진국 또는 개발 도상국이었을 때는 보호 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규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각종 규제난 노사 관계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에 부실 기업을 마구 팔 때 외국인 직접 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금 와서 그 때에 비해 직접 투자가 떨어졌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 옳은가? 또 이런 결과가 경제 정책의 실패 탓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때처럼 기업을 막 팔아치워야 한다는 말인가? 외국 자본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물건을 팔 시장이 얼마나 큰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노동력의 질이 어떤지 등을 따지는 것이지 노사 관계, 규제. 법인세 같은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 인센티브로 끌어들인 외국 자본은 그 매력이 없어지면 언제든 보따리 싸서 떠나 버리게 마련이다. 사실 떠나는 자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고, 나가기 어려운 외국 자본만이 꼭 노사 관계가 어떠니 규제가 어떠니 하고 문제 삼는다,”

***“동북아 금융허브? 꿈깨”**

그는 “자본에 색깔과 꼬리표가 있는 건 아니다”는 자본 유치론에 대해서도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 자본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하다”고 반론을 편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지만, 자본의 핵심 경영진은 철저하게 국적을 따른다는 것이다.

나아가 장 교수는 주주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인 나머지 ‘금융강국’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열겠다는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해 “헛고생마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세계 금융의 중심이 암스테르담,런던.뉴욕으로 이동한 것은 그 나라의 제조업 발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앞으로 1백년간의 손실을 보전해 준다는 약속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약속 없이 오랫동안 홍콩, 싱가포르에 뿌리박고 영업해 온 국제금융센터들이 한국으로 옮겨 올 리 만무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좋은 말로 헛고생이고, 자칫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빨리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강력한 제조업 없이 금융중심지로 성장해 잘 살게 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제조업 강국만이 금융강국으로 발전 가능”**

제조업 강국인 부국에서 금융이 발전하는 것이지, 금융의 발전을 통해 부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관광업,금융업 등 서비스업에 의존해 부자가 된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는 사실 최고의 공업국이라는 것이다. 스위스의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액은 98년 기준을 8천달러가 넘어 세계1위다. 당시 미국 5천3백달러, 영국 4천1백달러, 우리나라 2천1백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단지 제조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낮아질 뿐이라는 것이다.

금융허브론자들이 모범 사례로 거론하는 싱가포르나 홍콩도 금융강국이기 이전에 제조업 강국이다. 싱가포르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액은 98년 기준으로 6천1백달러였으며, 홍콩도 중국과 통합되기 전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가 85년 기준으로 1천3백달러로 당시 우리나라의 6백68 달러의 2배가 넘는 공업국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형성된 재벌체제를 발전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재벌은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나 국민 경제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대성공, 그리고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재벌 체제라는 같은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재벌 체제는 자금 동원력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계열 기업 간 상호보조를 통해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도 크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타율이다. 재벌 체제 개혁은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3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 4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재벌 체제 살리되, 재벌 총수.주주 권리는 사회적 통제돼야”**

이같은 주장은 자칫 ‘친재벌적 학자’의 주장으로 매도할 수 있다. 여기서 장 교수는 “물론 재벌 총수 가족의 지배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재벌 총수 일가 자신들부터 ‘주주 자본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는 구태를 버리고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지금까지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부의 보조와 보호 아래 성장한 것인 만큼 재벌 기업들은 총수 일가의 것도 아니지만 주주들만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재벌 총수를 통제한다면 그것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주주들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재벌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꼭 기존 총수 가족의 지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가족 소유가 없이도 주거래 은행제도, 관련사 간 상호주식 소유 등을 통해 재벌 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정 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수 가족에 의한 통제를 단시간내에 없애려 하면 재벌 구조 자체가 붕괴되고 국민 경제가 외국 자본에 의해 교란당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국민들은 재벌들이 안정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도와주는 정치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그는 재벌들의 안정 지분 확보를 위해서는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고, 지주 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해주는 동시에, 은행의 기업 주식 소유를 용인하며, 재벌들 사이의 상호 출자를 시도하고, 국민연기금의 사용으로 ‘국민 지분’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사회적 통제기법으로 그는 종업워, 거래 은행, 하청업체 등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해 당사자들에 의한 내부 감시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민주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정부의 산업 정책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부의 개입이 권력 남용이나 정경유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국식’ 개입주의 정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노르웨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부패도 적은 선진국들이 지난 50여 년간 은행의 국가소유, 선별적 산업정책, 주요 산업의 국유화, 외국인 투자의 엄격한 제한 등 ‘한국식’ 개입주의적 정책을 추구해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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