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고대사 왜곡'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고대사 왜곡' 문제가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프레시안>은 중국 현지에서 '티베트학'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인 학자 A씨와 긴급히 연락을 시도, 익명을 전제로 그의 기고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의 실명이 드러날 경우 중국에서의 연구활동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판단, 익명을 요구했다.
A씨는 중국이 티베트 역사를 중국의 소수민족사로 포섭하기 위한 수십년에 걸친 집요하고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면서, '티베트'를 '고구려'와 '한국'으로 바꿔 읽어보라고 제안하고 있다. 티베트 다음은 우리나라 차례라는 의미에서다. 아울러 중국의 '역사 침공'에 대해 수동적 대응으로 일관하지 말고 '역사 북벌(北伐)' 등 공세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A씨의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동북공정과 티베트 : "뒤통수를 쳐라"**
"중국인들은 한번도 그들의 일부인 적이 없었던 티베트인이 과거와 현재 중국 '민족'의 일개 '소수민족'이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현대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중세 제국적 관계를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형식의 중국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려는 기도의 일부다."
이는 네덜란드 국제법 학자 반프라그(Michael C. van Walt van Praag)가 쓴 책 <티베트의 지위(The Status of Tibet: History, Rights, and Prospects in International Law)> 서문에 나온 대목이다. 프란츠 마이클(Franz Michael)이 쓴 이 서문에서 '티베트'를 '한국'으로 바꿔 읽어보기 바란다. 슬기로운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1996년 6월 27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한국은 늘 형제의 나라로 여겨집니다. 진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티베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쌍둥이 형제와 같습니다.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독립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책 속의 사실'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다가올 미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이 정치·종교지도자를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티베트가 독립 국가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 어느 학자도 중국정부의 입장을 벗어나는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공산당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 이미 중국 모든 대학의 인문·사회계열 수업에서 교수들이 자유롭게 공산당을 비판하는 풍조가 만연한 것을 감안한다면 기이한 대목이다.
***"중국이 티베트 인민을 해방시켰다"**
오늘날 일반적인 국제여론은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티베트는 분명 독립국이었다.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티베트는 분명 중국과 다른 문명이요, 다른 국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학자들은 '티베트가 왜 중국인지'를 온갖 학술적 근거를 내세워 증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독립국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관점과 태도는 비학술적이고,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며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이댄다.
"봉건 농노제도가 사망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소수 티베트 상층 반동 집단과 분열주의 분자들은 원한을 품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들은 티베트 인민을 다시 통치하려는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 증오를 선동하고 사회진보를 파괴하며 국가분열을 제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서장 독립'을 외치는 것이다."
티베트에 대대로 농노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학자들은 티베트 농노제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티베트 민중들이 오랫동안 소수 반동집단 억압에 고통 받고 있었고, 중국공산당이 이들을 해방시켰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른바 '종(농노)'은 중국에도 있었고, 한국에도 있었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중국공산당은 티베트를 해방시키면서 왜 남한을 해방시키지 않았는가. 또한 지금 중국에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없다. 만약 미국이 "공산당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국 인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현 중국 정부를 비판한다면, 그 때는 뭐라 변명할 것인가.
한편으로 중국 학자들은 예부터 한족(漢族)과 티베트 민족이 "장인과 사위 관계였다"는 봉건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당태종이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토번왕국 임금 송쩬감포(松贊干布)에게 시집보낸 뒤, 한족과 티베트 민족은 장인과 사위 관계가 되었다."
이는 분명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문성공주는 가짜공주다. 당태종이 토번왕국의 군사위협에 굴복하면서 급조해 시집보낸 가짜공주인 것이다. 설령 문성공주가 진짜공주라 하더라도 과거 봉건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오늘날의 현실을 합리화시키려는 이런 식의 접근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고려는 한 때 원나라의 부마국이었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몽골 또는 중국의 일부라 주장한다면 너무나 황당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송쩬감포와 결혼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브리쿠티라는 네팔공주다. 중국학자 논리대로라면 네팔도 티베트에 대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군색한 논리는 계속 이어진다.
"티베트의 역대 임금과 라마는 모두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았고, 대대로 조공을 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안다. 이는 중국학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논리라는 것을. 정말 중국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면 조공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냥 세금을 거두면 될 것 아닌가. 이 논리대로라면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선언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중화민족의 일부다." 그냥 코웃음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지금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한반도 잡아먹기'이기 때문이다.
***"내것은 내것, 네것도 내것"**
"원나라 이래, 티베트는 정식으로 중국 영토 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황당한 사실을 알 수 있다. 13억 인구가, 원나라를 중국왕조라 생각한다. 13억의 착각! 이 집단의식이 무서운 것이다. 한 중국 대학생과 역사토론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 학생은 원나라와 징기스칸·쿠빌라이칸이 자랑스런 중국역사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내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원사(元史)에 이런 얘기가 나와. 쿠빌라이가 대신들을 모아놓고 한 번 물어봤어. '우리, 한족 애들, 그냥 다 죽여버릴까?' 그러자 대신들이 반대했지. '그러면 세금을 거둘 수 없는데요.' 너는 이 사람들이 중국인이라 생각하냐?"
이에 대한 그 학생의 답은 이러했다.
"우리를 지배했기 때문에 우리 조상이다!"
오늘날 중국학자들은 중국 역대왕조가 티베트를 지배했기 때문에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지배했으므로 중국이고, 지배당했으므로 중국이다. '내것은 내것, 네것도 내것'인 셈이다.
정말 답답하다. 원나라가 어째서 중국이란 말인가.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 아닌가.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중국 정부는 왜 이란·이라크·아프가니스탄·러시아·폴란드·체코·헝가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가. 한국인은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인은 1백년간 몽골인의 지배를 받은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아큐산법(阿Q算法)'이라는 것이다.
아큐가 불량배들에게 두들겨 맞은 뒤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사실은 내가 이긴 거야.' 그리고 아큐는 의기양양하게 걸어간다. 1920년대 중국지식인들은 노신이 쓴 이 <아큐정전(阿Q正傳)>을 읽고 '혹시 내 얘기 하는 것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조작하면 된다. 우리를 지배했기 때문에 우리 조상이라 주장한다. 중국이 한반도를 다 먹으면, 중일전쟁도 국내전쟁으로 조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일부다. 대대로 중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일반적인 국제여론은 티베트 독립을 지지한다. 그러나 13억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은 이에 격분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1백년 뒤 한반도를 놓고 벌어지는 현상일 수도 있다. 중국 학문은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정부 이익을 침해하는 이론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매도해야 한다. "비학술적이오!"
***"정부 이익에 철저한 중국 학문"**
참으로 학술적인 태도는 무조건 내 이론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상대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국이든 타국이든 정권의 부조리함을 용기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즉 양심 있는 지식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강력한 독재국가이므로 학문이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언론도 통제받는다. 시민단체? 사실상 없다. 전지전능한 중국 공산당이 "고구려는 중국이야!"라고 명령했으므로, 학자는 이에 순응해야 한다. 바로 앞 문장에 있는 '고구려'라는 낱말을 '티베트'로 바꿔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미국에 거주하는 반체제인사 조장청(曹長靑)은 1996년 대북(臺北)에서 출간한 <중국대륙 지식분자가 논한 티베트(中國大陸智識分子論西藏)>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아주 많은 중국인이 티베트(중국인은 서장이라 부른다) 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 강렬한 민족 정서와 대국 국수주의 의식을 갖는가? 주요 원인은 공산당이 장기간 행한 단일성 주입으로 인해 티베트 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이미 공산당의 선전기구와 같은 방향의 궤도로 향하기 때문이다. 언론자유와 보도자유가 없는 중국 대륙에서 정부는 출판을 통치하여 역사의 해석도 통치한다. 이런 전제사회에서 역사 진실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이 관방의 이데올로기와 부합하는가 여부다.……중공의 티베트 문제 권위자인 아함장(牙含章)조차 그가 쓴 <달라이라마전(達賴喇嘛傳)> 서언에서 직언하기를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투쟁의 수요를 위한 것'이고 '조직상' 안배로 썼다고 말했다.
아함장의 고백은 중공이 정권을 세운 이후 출판한 티베트 문제에 관한 모든 서적의 기본 특징이 역사사실은 정부 선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임을 말한다. 근년 대륙에서 출판한 티베트 서적은 이러한 선전 기도의 연장이다. 1993년 5월 북경 화교출판사(華僑出版社)가 30만자 이상의 <티베트풍운기실(西藏風雲紀實)>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중공이 티베트사람에게 가져다 준 '인간천당'을 극력 칭송했다.……중국인은 이러한 강렬한 선전 기도를 갖춘 단일성 서적 중에서 티베트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 서방 학자와 망명한 티베트인 학자의 티베트 연구는 단지 북경 정부의 관점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출판하는 것이 극히 곤란하다.
유일한 예외로 미국 작가 애버든(John F. Avedon)이 저작한 <설역경외류망기(雪域境外流亡記)>가 1988년 3월 서장인민출판사(西藏人民出版社)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애버든은 미국 <뉴스위크>의 기자로, 4년 동안 미국과 인도에서 1백명 이상의 티베트인을 인터뷰했는데,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역사 사건의 증인과 달라이 라마 본인이 포함되어 30만자의 저술을 완성했다. 이 책은 광범한 호평을 받았다.……그러나 이 책을 출판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국이 강제로 발행을 정지하고 이미 팔려진 판본을 거두었다. 중공 당국은 '긴급통지(緊急通知)'에서 이 책의 공개 발행은 '공작 중의 실수'라 밝혔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이는 미국인 티베트 전문가 세이모어(James D. Seymour)이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현실적 이해를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인이 티베트에 대해 주권을 보유하고 있음을 견지하는 것은 역사와 국제법의 원인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익의 필요에도 기인함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은 티베트를 가져야 할 수많은 이유를 갖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이 땅과 경제자원을 필요로 하고, 국가안전의 고려도 있으니, 1962년 중국·인도전쟁(中印戰爭)을 중국인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따라서 일부 개명한 중국인이 티베트 문제를 생각할 때, 정의와 법률의 각도에서 보다는 경제·정치·군사적 필요의 각도에서 더 많이 생각한다. 이러한 국제측면의 고려 외에도, 중국인은 그들의 특수한 도미노 이론을 갖고 있다. 그들은 만약 티베트 독립을 허락할 경우 신강·내몽골·만주의 독립요구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킬 것이라 걱정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다른 고려에 앞서 이 점을 먼저 고려한다."
내가 제시한 조장청과 세이모어의 발언에서 '티베트'라는 낱말을 빼고, '고구려'와 '한국'이라는 낱말을 적절히 집어넣어 재독하길 바란다.
***"고구려사 왜곡을 위해 조선족 학자들을 적극 활용하라"**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를 이끌고 있는 마대정(馬大正)씨는 중국사회과학출판사(中國社會科學出版社)가 2003년 10월 출판한 <고대중국고구려역사속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 머리말에서 중국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1. 고구려 문제 연구를 흉노·선비 연구처럼 역사화·학술화의 정상연구궤도로 넣어야 한다. 고구려 민족과 그 정권은 중국 역사상 고대 민족이며 지방 정권이다.
2. 고구려 민족의 원류와 고구려 정권의 흥망 연구를 더욱 가열차게 하여 우리나라 학술계의 성숙한 정론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변방사와 민족사 연구에서 족원(族源)과 지방정권연구는 종종 주변국가 변역의 축소 및 민족이동과 변화 관계까지 소급한다. 예를 들어 흉노의 서쪽이동과 헝가리민족 관계, 돌궐의 패멸과 중앙아시아 및 터키 관계, 몽고 유목제목의 해체와 몽골·러시아 관계 등이다. 이런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상이한 관점이 있지만, 우리는 이 방면 연구에서 이미 비교적 성숙한 학술계 공통인식을 만들었다. 고구려 연구도 이런 연구를 거울로 삼을 수 있다.
3. 고구려 역사 연구에서 우리나라 조선족 역사학자들이 많은 작용을 발휘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 나아가 중국과 한반도 고대 역사 관계 문제에서 중국과 한반도 관계사 연구 대오에 한국어를 알고 북한과 남한 학술계 상황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우리는 조선족 학자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주어 그들이 더 큰 공헌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4. 고구려 연구에 있어 기초자료 건설과 연구정보 수집 및 추적 작업을 더욱 활발히 해야 한다. 중국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며, 북한·남한 및 다른 외국의 연구 성과를 목록색인으로 만들고 정보와 자료창고를 건설해야 한다. 또 대표적인 저술을 번역해 우리가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5. 고구려·발해 등 관련 문물과 유적 보호·개발 및 이용에 힘써야 한다. 동시에 북한·남한 등 출판물을 살펴 지적재산권 침해를 배상받아야 하며, 고구려 문물 도굴과 절취 등 범죄행위를 엄벌해야 한다.
6. 고구려역사 지식의 사회화를 위해, 과학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지금 간행하는 모든 사전류에서 고구려 관련 항목을 고쳐야 하며, 교과서와 역사보급서적에서 모범답안을 확립해야 한다.
7. 한반도 남북 역사문화전통과 민족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한반도 학계의 우리와 다른 관점과 입장을 인정한다. 우리의 태도는 당연히 한반도 남북 학계가 주장하는 '고구려 역사는 중국 고대사의 일부분임을 부정하는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되 우리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학술규범과 국제관례 각도에서 정상적인 학술교류와 논쟁을 해야 한다. 정치화한 논쟁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 과학적인 연구결론을 국제학술계에 제공해야 한다.
***"지금 당장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라"**
중국 정부가 드디어 노골적으로 고구려사 왜곡 등 '역사 침공' 행위를 중단하라는 우리 정부 요구를 거부했다. 중국은 도리어 우리 정부에 대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과도한 보도를 자제토록 유도해 달라"는 언론통제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대응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너무나 힘이 없다. 중국에 대한 투자축소 방안도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이나 탈북자 문제, 교역 등 얽혀있는 변수들이 많아 선택이 쉽지 않다. 나는 현 상황에서 한국정부에게 이렇게 건의한다.
1. 지금 당장 기습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라.
이것이 가장 확실한 단기성 경고다. 중국정부가 날뛸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일본도 자유롭게 가는데, 왜 한국을 못 간단 말인가? 달라이 라마가 분명히 말했다. "한국정부가 허락만 하면 모든 일정 다 포기하고 곧바로 한국에 가겠다"고. 중국은 오랫동안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불허하는 한국정부의 배려에 고마움을 전해왔다. 그러나 이제 따귀 한 대 때려야 한다. 우리가 10대 맞으면 최소한 5대는 때리는 단단한 꼬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2. 재외동포법을 개정하라.
중국도 화교를 우대하는 각종 배려가 있다. 우리는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래서 조선족이 언제든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정부가 더 날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마저 안 한다면, 한국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이런 존재 이유도 없는 정권이라면,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해도 아깝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3. '북방아시아프로젝트'를 시작하라.
즉 '학문 북벌(北伐)'을 해야 한다. 동북공정에 맞서는 확실한 프로젝트다. 정말 학술적으로 대결해야 한다면, 우리는 정면전과 더불어 게릴라전까지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적의 배후를 쳐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쉽게 말하자면 뒤통수를 치란 말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은 고구려사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설립한 연구기관으로, 3월1일 출범식을 거쳐 10일 현판식을 가졌다. 현재 연구직 17명, 행정직 10명이다. 올해 예산은 50억원. 이것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3조원을 50억원으로 대항하면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1조원 예산으로 북방아시아프로젝트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국공산당정부가 중국이라 주장하는 티베트·신강성·내몽골·동북삼성이 왜 중국이 아닌지 학술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이 일을 하려면 대한민국 모든 사학 인력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것이다. 따라서 몽골·베트남·인도·네팔·러시아의 우수한 인력과도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모든 연구성과를 철저하게 영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프랑스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서 출판해야 한다. 물론 중국당국은 이 책들을 모두 금서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중국은 복제천국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출판물도 정본과 다를 바 없는 우수한 복제물이 판을 쳐 중국당국이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다. 이 복제물을 이용해 중국정부를 공격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이 정도 일도 하지 못한다면, 국가정보원을 당장 해체해야 한다.
4. 중·일·미·러 전문연구기관을 설립하라.
지금 한국에 중국전문가가 의외로 없다. 겉으로는 많아 보인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중국을 한 나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이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건대, 이들의 특징은 통일과 분열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이 막강한 중앙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분열한다. 중국을 각 지역별로 집요하게 연구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국·일본·미국·러시아 이 네 나라를 영원히 집요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멍에다.
5. 대만과 적극 친교하라.
중국 어느 인민에게 물어도 한반도의 통일을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이른바 지식인을 만나 이야기하면 고작 듣는 이야기가 "우리는 한반도의 안정을 바란다"는 것이다. 입장 바꿔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도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만과 정식 수교를 할 수 없더라도, 사실상 수교와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친교할 수는 있다. 중국이 북한과 남한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다. 다른 열강도 마찬가지다. 이는 돈으로 계산조차 불가능한 피해를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우리도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 중국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말이다. 한 마디로 원교근공(遠交近攻)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장학네트(中國藏學網 www.tibetology.ac.cn/)'에 있는 중국 티베트학의 개황을 소개하겠다. 이 글을 천천히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티베트'를 '한국'으로 바꿔 한 번 더 읽기 바란다. 중국 대륙인들의 티베트연구 동향과 견해를 살피기 위해 직역했다.
***中國藏學槪況**
當代의 中國藏學은 신 중국 성립 후에 건립되어 번영하기 시작했다. 신 중국 성립 초기에, 당 중앙·중앙정부와 모택동 주석이 서장을 평화적으로 해방한다는 방침에 따라 일부 장학연구자들도 서장진군 시에 합류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입장과 관점에서 서장문제를 조사·연구하여 일부 조사보고와 학술전문서적을 저술하여 대단히 유익한 정책건의를 제출하여 서장의 평화적인 해방에 공헌을 했다.
1951년 5월 서장을 평화적으로 해방하자 정무원문화교육위원회는 중국과학원 및 일부 高等院校의 과학연구자들과 "西藏工作隊"를 조직했다. 먼저 서장에서 2여 년 동안 있으면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여러 학문분야를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했다.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에는 全國人大민족위원회와 국무원민족사무위원회, 중국과학원철학사회과학부가 선후로 조직되어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사회역사 조사를 실시하여 서장과 각 藏區의 사회현상, 역사연혁, 어언문자 등 기본정황을 광범위하게 조사 연구하여 서장의 민주개혁, 사회주의 신시대에 맞는 역사관과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동시에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사상의 지도 하에 엄격한 과학적 시스템을 도입하여 당대 중국장학이 형성, 확립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이 1977년 결속된 후에 등소평 동지는《藏漢大辭典》의 편찬과 출판을 비준하였는데, 이 같은 의지의 표현으로 장학연구의 봄날이 도래한다. 1978년, 중국공산당 11屆 三中全會를 개최하여 전국은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개혁개방의 신 시기를 맞이하였는데, 중국 장학연구도 더욱 생기발랄하게 번영하기 시작했다. 중국 장학 50 여 년의 발전역정을 회고하면, 특별히 개혁개방 20여 년 동안 거대한 성취를 얻었는데, 다음의 몇 가지 방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연구기구의 건립과 전문연구인력의 형성과정과 규모**
개혁개방 이전의 장학은 역사, 어언, 민족 등 유관 과학연구 단위로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초보적인 기초를 다졌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당과 국가가 藏學사업을 고도로 중시하여, 선후로 현대적인 연구기구가 건립되어 지금은 50여 所에 달한다.
80년대 중기에 중국 장학연구중심과 서장사회과학원이 연이어 건립되고, 그 다음에 북경, 서장과 사천, 청해, 감숙, 운남성 등의 장족 거주지에서 또 선후로 일부 전문적인 연구기관이 건립되었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연구팀이 비교적 전문적이고 숙련되었고, 연구활동이 모두 대단히 강한 地域性과 응용성을 지니고 있는데, 주요하게 현지의 지리조건과 학술자원을 활용한 것이 장점이다. 또한 현지의 사회, 경제발전과 문화, 역사, 종교 등의 문제 등을 연구하여 지역연구 방면에서 유리한 장점을 지니고 있어 현지의 黨政부문의 정책결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연구기관과 학과는 하나의 전문적인 방면을 연구하여 특색이 선명할 뿐만이 아니라 한 분야의 연구영역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연구작업은 중국 藏學사업의 중요한 기초가 될 뿐만이 아니라 藏學연구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한편, 藏學 연구기관 중에는 전문적으로 장학관련 서적과 학술간행물을 출판하기도 한다. 예컨대 中國藏學出版社, 西藏藏文古籍出版社 및 각급 民族出版社 등; 정기학술간행물로는《中國藏學》《中國西藏》 《西藏硏究》《西藏大學學報》《西藏民族學院學報》《西藏藝術硏究》《藏語文工作》《西藏敎育》《西藏科技》《西藏地質》등등이 있다.
이밖에 중국의 각 성과 區에는 다양한 학술단체가 있다. 예컨대 中國科學靑藏高原硏究會, 西藏自治區藏學學會, 四川省藏學書院, 甘肅省藏學硏究會, 云南省民族學會藏學硏究會 및 각 유관 省 區 내의 藏語文硏究會, 《格薩爾》硏究會, 藏醫硏究會, 民族語文飜譯協會 등이 있다.
이상이 중국 장학연구의 주체이다.
50여 년 동안 중국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고도로 전문적인 연구인력을 배양해왔는데, 현재 장학연구에 종사하는 인원은 1천여 명 이상이며, 그 중에 藏族 학자가 과반수에 이르며, 고급 기술전문가로 종사하는 인원은 약 삼분이일에 달한다. 또한 중앙민족학원등과 각성의 民族院校에 藏學 전공학과를 개설하여 대량으로 본과생을 교육했고, 80년대 중 후반기부터는 석사, 박사과정을 개설하였다. 1987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전국에서 배양한 석사는 200명에 달하고, 박사도 수십여 명을 배출시켰다. 장학연구인원도 점차 광범위해져서 노년부터 중년, 청년에 이르고, 藏族은 물론 漢族과 각급 민족학자들까지 단결하여 협조하여 藏學연구는 신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생기발랄해지고 있다.
***2. 학술연구 성과와 연구영역**
《中國藏學書目》과《中國藏學書目續編》의 통계에 근거하면 1949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에서 藏學관련도서가 2200여종이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 간에 출판된 도서는 700여종에 달하며 다른 통계에 따르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 간에 출판된 도서는 1000여종이 넘었다고 한다.
1950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에 각종 신문과 간행물에 발표된 연구논문과 글은 약 2만4천여 편에 이르고, 그 가운데 1950년부터 1979년까지는 3천7백여 편으로 매해 평균 120여 편이었다. 1980년부터 1990까지는 1만3백여 편으로 매해 평균 940여 편이고, 1991년부터 1998년까지 1만1여 편으로 매해 평균 1천2백6십여 편에 달했다. 이러한 통계로 미루어 중국 장학연구는 부단히 발전하고 진보하는 추세이다.
신 중국 성립이래, 특별히 개혁개방 20여 년 동안에 장학연구자들이 공개적으로 권위가 있는 학술물을 출판했는데, 장학연구의 각 분야에서 최신 연구 수준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예컨대《西藏佛敎發展史略》《達賴喇嘛傳》《班禪額爾德尼傳》《歷輩達賴喇嘛與班禪額爾尼年譜》《西藏封建奴隸制社會形態》《論西藏政敎合一制度》《中國藏族部落》《西藏通史》《藏族簡史》《藏族歷史年鑑》《西藏歷史地位辨》《西藏地方與中央政府關係史》《西藏經濟簡史》《靑藏高原環境與發展》등의 叢書들은 前人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모두 새롭고 독자적인 견해가 실려있어 국내외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漢文 문헌의 발굴과 정리, 출판도 장학연구 중 중요한 부문이었다. 예컨대《元以來西藏地方與中央政府關係檔案史料匯編》《西藏歷史檔案薈萃》《西藏地方是中國不可分割的一部分史料選輯》등 중요한 문헌의 성과도 약 2백여 종에 달하는데, 이 중에는 희귀본도 적지 않다. 또한 中國藏學硏究中心은 수 차례에 걸쳐 中國第一歷史檔案館, 第二歷史檔案館 및 감숙, 사천, 청해, 운남성의 檔案館이 지니고 있는 西藏과 藏史檔案史料目錄를 공동으로 편집하여 계속 출판하여 정확한 檔案文獻 소식을 제공하고 있다.
藏文 古籍의 발굴과 정리, 출판도 藏學연구 중 중요한 성취가 있었다. 西藏藏文古籍出版社는 이미 藏文古籍珍本 200여부를 출판했고, 일부 희귀본 藏文古籍도 연속하여 출판할 예정이다. 西藏人民出版社도 일부 藏文 고전 名著와 歷史檔案叢書를 2백여 종, 1백여 만冊을 출판하였는데, 그 중에는 手抄本, 木版本, 埋設되었던 각종 藏文 典籍을 각종 정교한 인쇄본으로 출시하였다. 예컨대 《西藏王統記》《西藏王臣記》《漢藏史集》《靑史》《紅史》《賢者喜宴》《薩迦世系譜》《多仁班智達傳》《頗羅鼐傳》《噶倫傳》《喜饒嘉措文集》《薩班全集》《根敦群培著作》《布頓佛敎史》등의 藏文古籍 출판하여 국내외 藏學界에 강렬한 反響을 일으켰다. 더욱이 주목한 일은 藏文版《中華大藏經》을 대조, 정리 작업이 순조로워 현재 이미 55部나 출판하여 발행하였다.
국내외의 藏學界의 학술 교류도 빈번하여 번역 출판한 서적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예컨대 《現代西藏的誕生》《喇嘛王國的覆滅》《西藏中世紀史》《十八世紀前期的中原與西藏》《敦煌吐蕃歷史文書考釋》등 일부 국외 藏學著書는 중국학자들에게 해외 장학연구가의 연구 성과와 추세, 방법들을 가름하여 상호 발전적 학술교류를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藏族의 민간문화예술 유산도 대규모적으로 조사하고 발굴하여 수집, 정리함은 물론 출판하였는데, 《中國戱曲·西藏卷》《中國歌謠集成·西藏卷》등 장족 민간예술과 종교예술 방면등 총 십대 부문의 文藝 集成志가 연속해서 출판되고 있다. 문학방면에선 《格薩爾王傳》이 국가 중점사회과학 연구과제로 선정되어 5여 년 동안의 계획으로 전문적인 연구기구가 설립되어 민간의 문자와 說唱자료를 수집하여 무려 4만여 자의 문자자료를 정리했다. 이에 관련해 출판한 저서만 30여부에 달하고, 발표한 논문만도 1천여 편에 이른다. 이러한 성과는 장학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민간에 유포된 口頭문학의 시리즈를 완벽하게 문학의 거작으로 만들어 놓은 노력의 산물이다.
서장의 考古學와 文物연구의 진보는 藏學연구를 더욱 심화시켰다. 현재 발굴된 60여 곳의 석기시대 유적과, 20여 곳의 고대 암각화, 240여 곳의 古墓葬, 昌都의 卡若遺址, 拉薩의 曲貢遺址, 古格故城 등은 학술적 가치와 과학적 연구에 중요한 실물자료로 문헌자료의 부족에서 오는 역사적인 사실을 傍證해 준다. 그리하여 《古格故城》《昌都卡若》《拉薩曲貢》《西藏布達拉宮》등의 관련 학술서적들이 출판되었고, 이들 자료는 藏學연구의 영역을 보다 광범하게 만들었다.
근래에 와서 藏醫藥 분야도 매력적인 연구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부 藏醫學院과 藏醫연구소가 계속하여 건립되어 古藏醫 문헌자료를 정리 출판하고 있다. 또한 유명한 藏醫전문가의 소중한 경험을 정리, 연구, 출판되고 있다. 예컨대 《四部醫典》과《醫學百科辭典·藏醫分卷》《藏醫生理學》《病理學》《藥理學》《飮食學》《新編藏醫學》등 수십 종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국제 藏學界가 주목하는 학문의 하나가 되었다.
***3. 학술교류**
근래에 와서 각 장학연구기구들은 적극적인 학술교류를 전개하고 있다. 서장의 역사, 어언, 종교, 민족, 철학, 문학, 예술, 교육, 천문역산, 藏醫藏藥 등의 분야에 학술토론회가 60여 차례가 개최되었고 300여 가지의 연구과제가 완성되었다. 지역별 혹은 전국적인 장학토론회와 홍콩, 대만지역과의 학술교류, 학술계와 黨政부문의 교류 등 각종 형식의 학술교류가 藏學연구를 발전시키고 있다.
국제적 학술교류도 날로 증가 추세이다. 중국에서 주최하는 국제적 藏學硏討會로는 《格薩爾》國際硏討會, 北京藏學硏討會, 拉薩藏醫藏藥國際硏討會 등이 있고, 중국 藏學학자들이 제 6,7,8회 國際藏學硏討會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최근 더욱 가치가 있는 사실은 근래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각 藏學연구기관이 홈페이지 등을 구축하여 상호간 활발한 학술 정보교류를 하고 있다.
***4. 중국 藏學연구의 지침과 방향**
1) 藏學연구는 반드시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에 기반으로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등 3대 대표의 이론과 방침에 따라 그 연구 지침을 세워야 한다. 개혁개방이후 중앙당에서는 3차례나 "西藏工作座談會"를 개최하여 방침과 정책원칙을 정해 주었는데, 그 결과 서장의 개방과 경제건설 등 각 사업들이 거대한 진보와 성취를 이루었다.
2) 藏學연구는 한결같이 애국적 기치를 가지고 국가통일과 민족단합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달라이라마 망명정부와 제국주의자들의 국가분열 책동에서 기인한 "西藏獨立論","西藏不人權" 등의 이론을 학문적으로 공박하여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과 전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어야 한다.
3) 藏學연구는 서장과 기타 藏區의 문명건설에 이바지하고 西部대개발 정책에 부응해야 한다.
4) 藏傳佛敎는 藏族사회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서장의 종교문제 연구는 장학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임무이다. 달라이라마 망명정부는 종교를 이용하여 허황된 사실을 주장하여 세계여론을 현혹시키고 있다. 따라서 종교의 현실과제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執行黨의 종교정책을 관철시키고, 법에 따라 종교사무의 관리를 강화시키며, 종교신앙의 자유를 존중하되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사회에 적응시키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서장사회를 안정시키고 국내외 적대세력의 분열활동을 폭로하여 세인들에게 서장의 진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5) 藏族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시키고, 어떻게 하여야 우수한 전통문화를 현대화시킬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임무이다.
6) 藏學연구 인력의 자질을 提高시키는 데 노력하여 藏學연구의 신국면을 개척해야한다. 이것은 전국 藏學연구자의 공동된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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