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인수위는 토론회에 앞서 토론자들과 '사전미팅'까지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토론회의 취지가 의심을 사고 있다. 찬성 여론 조성용 토론회가 각본에 짜여진 듯 진행될 게 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는 영어교육 강화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인수위의 행보에 대한 비난이 급격하게 확산되자 '여론 달래기' 차원에서 마련된 것. 그러나 "찬성론자들만 데리고 무슨 토론회를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명박 '개인교사'부터 '영어 전도사'까지…
이날 토론회에는 고려대 홍후조 교수, 아시아영어교육학회 이효웅 학회장, 장윤금 숙대 교수, 박준언 숭실대 교수, 윤유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최병갑 구로중 교장, 임동원 청운중 교장, 김점옥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이경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김인정 교사 등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이 자리에는 이경숙 인수위원장도 참석하며,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인 이주호 의원은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다. 충남대학교 천세영 교수가 발제를 할 예정이다.
발제자인 천세영 교수는 인수위 사회교육분과에서 상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내부 인사'다. 토론자 중 홍후조 교수 역시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교육정책 분야 자문교수를 맡았던 인물이다. 홍 교수는 이 당선인의 '개인교사'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밀착도가 높다는 자타의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숭실대 박준언 교수는 '한국영어교육학회'를 통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본떠야 할 '영어 몰입교육'의 모델로 말레이시아를 꼽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2002년 영어, 수학, 과학과목에 대한 영어 몰입교육을 도입한 이래 2007년에는 이를 전학년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그 동안 인수위 내에선 말레이시아의 영어교육 모델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교육개발원 윤유진 연구원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의 경우 전체 초중고교의 5∼6%가 전 과목 몰입교육을 실시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윤 교수는 "대만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몰입교육을 해도 일반교과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지 않고 문화적 정체성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을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김점옥 서울시 교육청 장학관 역시 '이명박 코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최근 인수위의 '영어 올인 행보'에 부응해 일선 학교의 영어 수업시간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운영위원은 '이명박식 교육정책'에 대한 찬성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나섰다. 이 사무국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대학에 전폭적인 자율권을 주는 등 당선인과 인수위가 밝힌 교육정책의 큰 방향에 동의하는 게 우리 단체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인수위가 공식적으로 철회한 '영어 몰입화 교육'에 대해서도 이 운영위원은 "본질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영어 외의 다른 과목까지 영어로 수업하기에는 교사진 등 준비가 부족하므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시아영어교육학회 이효웅 학회장 역시 '영어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학회는 지난 2006년부터 '영어캠프'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장윤금 교수의 경우엔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총장으로 있는 숙명여대에 재직하고 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에서 섭외된 일선 학교의 교장, 교사의 경우에도 인수위가 교육부와 관련단체에 추천을 의뢰하는 과정을 통해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토론회이니만큼 이를 더욱 세부화, 구체화할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찬성론 일변도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영어교육 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발제문은 '비밀'-토론자는 '사전미팅'…"군사독재 사전검열이냐"
토론자 개개인의 면면을 떠나 이번 토론회가 '밀실'에서 추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회 발제문에 대한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인수위는 토론회 하루 전인 29일 오후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참여하는 '사전미팅'까지 열었다. 인수위의 관계자도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라고 이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토론내용 자체를 '기획'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전교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군사 독재시절 기획된 정부 정책 홍보를 방불케 하고 있다"면서 "편파적 토론자 구성과 토론내용 사전 조작 등 여론 홍보용 '밀실 공청회'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교조 한만중 정책실장은 "토론자와 발제자가 미리 만나 회의를 갖는다면 그 자체가 토론의 사전 검열"이라면서 "이는 군사독재 때나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냐"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인수위 관계자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을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발제문 유출의 위험이 있어 토론자 분들을 모시고 발제문을 정독하는 자리를 가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말 맞추기'가 아니라는 항변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전교조 한 정책실장은 "발제문이 미리 배포되면 공청회 전부터 논란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배포하지 않은 게 아니냐"면서 "지금 인수위는 토론회가 아니라 사업설명회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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