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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 권영길"…민노당 혼돈 속으로

후보도 전략도 구태의연…예정된 참패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0년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권영길 후보는 19일 실시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위로 내려앉는 참패를 당해, 원내 3당이자 기호 3번의 체면을 구겼다.

민노당은 대외적으론 '300만 표 득표'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당직자들이나 민노당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5, 6%만 나와도 다행이 아니겠냐"는 게 중론이 었기에 '예정된 패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민노당도 본격적인 대혼란기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징후는 일찌감치 부터 포착됐지만 선거 전날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공표되지 않은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2%대에 불과했고 권 후보 본인은 마지막 유세에서 "피 맺힌 심정으로 말한다"면서 "민주노동당을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막판 표심 잡기의 일환이었겠지만 공세적이었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사실 이번 선거는 민노당 입장에선 유리한 구도에서 진행됐다. 고질적인 사표론도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부잣집'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나름대로 돈도 썼다. 선거비용만 따지면 문국현 후보나 이회창 후보가 민노당보다 더 박했다.

공동 선대위원장인 노회찬 의원은 지난 여름 "여권이 지리멸렬할 것이고 한나라당도 대안으로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민노당이 삼자정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조건절은 맞아 떨어졌지만 주절은 틀렸다. 왜일까?

후보의 한계

민노당은 창당 이후 주요 선거를 질적·양적 도약의 계기로 삼아왔다. 2000년 창당 후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울산 동구, 북구 구청장을 배출하며 교두보를 마련했고 연이은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노동당과 권영길'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를 발판삼아 2004년 총선에선 정당 지지율 13.1%, 의석 10석 배출로 인해 단숨에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한때 20% 지지율을 넘나들었던 민노당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권과 함께 지지율 동반하락 현상을 보였다. 이번 대선 패배 역시 전반적인 반노 정서의 '유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궤멸됐을 때도 민노당은 12%의 정당득표를 거뒀을 정도로 저력은 만만찮았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당 지지율는 5~10% 사이를 꾸준히 유지했다. 당 지지율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후보. 일차적인 패인은 권 후보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 지난 1997년 국민승리21 후보로 나섰던 권영길과 2007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 권영길. 10년 전의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직함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오늘의 그는 증권거래소에서 환영을 받을 정도로 '정치적 거물'이 됐다. 지난 10년 간 권영길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민노당 당원들은 '혁신'을 외치는 심상정, 노회찬 대신 '화합과 통합'을 들고 나온 권영길을 선택했다. 당 밖에서 부는 '심상정 바람'을 당심이 뒷받침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경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대선 3수생'의 부담은 경선이 끝난 뒤 권 후보의 발목을 잡은 늪이었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대중들의 반응을 넘어서기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권 후보는 당내 자주파의 지원에 힘입어 경선을 통과하면서 고질적인 정파 대립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경선 이후에도 봉합은커녕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기만 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이인제, 이회창과 함께 '삼수생 트리오'냐는 비아냥에 "DJ는 4수만에 당선됐다"고 받아쳤던 권영길 후보의 노쇠화도 선거전에서 눈에 띄었다. 특유의 안정감은 여전했지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던 재기도 오간 데 없었고 진보정당 고유의 견결성도 바래졌다. 꼼짝 않는 바닥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확인될 때마다 당에선 "아~ 권영길" 하는 애증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한 당직자는 "권 후보가 TV 토론에 나가서 각종 수치와 정책들을 더듬더듬 외우는 모습을 보면 실망감보다 차라리 짠한 마음이 들더라"면서 "내년 총선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경선에 나섰겠지만 권 후보를 이용한 자주파와 일부 평등파 진영이 더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대선 초반, 이명박 고공현상과 여권 후보선정을 둘러싼 지리멸렬이 극에 달했을 때 민노당과 권 후보는 그 틈을 전혀 파고들지 못했다. 지난 9월 후보로 선출된 이후 한 달을 허송세월 한 게 가장 큰 패착으로 기록된다. 선대위조차 꾸리지 못하고 권 후보와 민노당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통적인 민노당 지지층은 문국현 후보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대선 기간임에도 당 게시판에선 당 노조와 사무총국 사이에 날선 대립이 벌어질 정도로 당력은 집중되지 못했다. 물론 선거 막판 '그래도 우리 당을 찍자'는 여론이 당내에서 미미하게나마 확산되기 시작했지만 '권영길에 대한 비난적 지지'라는 신조어는 이 당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삼성특검은 알아도 민노당은 모른다"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당 혁신 요구에 부응치 못했던 게 퇴행의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고질적인 정파 대립구도로 인한 당력 집결 실패, 전략 부재가 고스란히 반복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문성현 대표는 "민노당에 대해서도 국민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 데 대한 질책이 있었는데 겸허히 받아들이고 심기일전 하겠다"고 당 쇄신 의지를 다졌다.

민노당 내 의견그룹 '전진' 소속의 한 당원은 당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이 왜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대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탄핵 이후 보수정치권에 대한 심판 바람이 우리에게 반사이익을 남긴 반면 노무현 정권 심판 바람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2007년 대선에 대한 평가로 갈음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이는 민노당이 대선 준비기에 해당하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 숙제를 전혀 풀어내지 못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반전의 기회가 없지 않았다. 지방선거 이후 한미 FTA 전선에서 민노당의 활약은 정치권 내에선 독보적이었다. 국회에선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거리에선 평당원들이 맹활약했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당에 합류했다.

한미 FTA에만 국한하자면 '민노당 대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전선이 형성됐다. 40%를 넘나들었던 한미 FTA 반대 여론을 대표할 정당은 민노당밖에 없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내 극히 일부의 FTA 반대론자들이 민노당을 기웃거리는 풍경도 목격됐다.

하지만 당이 주체적으로 조성한 호기가 아닌 탓에 호시절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삼성 비자금 특검 정국도 정치적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권영길 후보와 함께 노회찬-심상정 등 간판스타들이 삼성 특검에 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관계자는 대선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답했다. 대중들은 삼성 특검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민노당의 노력과 역할에 대해선 무심했다는 얘기다.

의미 없는 '분당설'만…총선 먹구름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의 메인 슬로건은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제 민노당은 스스로를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민노당 내에서도 '이번에도 대강 덮고 나가면 미래는 없다'는 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대안은 제각기 다르다. "뼈를 깎는 각오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쪽과 "분당의 각오로 결별해야만 하는 것들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쪽이 나뉜다. 물론 이 같은 입장 차이는 정파 차이와도 맞물리는 것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우리 당은 전통적으로 평가와 책임이 없는 정당이었다"면서 "이번에야말로 책임 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당직자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그대로 내년 비례대표로 올라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민노당 주위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총선 비례대표 라인업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대선 다음 날인 20일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공고가 나간다.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찾기 힘든 기이한 현상이다.

또 다른 당직자는 "대선 끝나고 이명박 특검이다, 삼성 특검이다 해서 평가와 혁신 요구를 뭉개고 넘어갈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고 우려했다. 평등파로 분류되는 서울 지역의 한 당원은 "자주파에게 100%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이제는 그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헤어져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인사는 "말은 다 좋은데 10년 동안 쌓아온 민노당이라는 물적 토대를 버릴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당 내에 있겠냐"면서 "비례대표를 노리는 자주파 인사들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 각각 출마할 노회찬, 심상정 의원도 당 간판을 내놓을 순 없다"고 내다봤다.

이 인사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이 이뤄지긴 하겠지만 봉합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분히 감정적인 분당론 등이 팽배해진 터라 제대로 된 패인 분석과 쇄신의 기틀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조기에 당을 수습하지 못하면 총선 패배가 다음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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