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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FTA 특보, 국무총리 지명자로 영전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왕 수석' 문재인 컴백

예상대로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대통령 한미FTA특보가 총리후보로 지명됐고 대통령비서실장에는 문재인 정무특보가 내정됐다. 또한 대통령 경호실장에는 염상국 현 경호실 차장이 내정됐고 이병완 비서실장은 정무특보를 맡게 됐다.

박남춘 인사수석은 9일 오후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한 지명자는 그동안 축적해 온 탁월한 경륜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임기 마지막 해의 경제운영과 주요 국정과제의 마무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며 "문 내정자는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국정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회정의에 대한 남다른 소신 및 신념을 갖춘 분"이라고 발탁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경호실 공채 출신의 염 내정자에 대해 박 수석은 "경험과 전문성이 탁월하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부터 비롯된 군 출신의 경호실장 임명 관행을 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서 돌발적 사태가 터지지 않는 이상 노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함께 할 내각과 비서실의 진용이 완성됐다. 이같은 임기말 진용은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를 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당도 없는 상황에다가 한명숙 전 총리와 달리 한 지명자에게는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터라 노 대통령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 통상전문가의 '빛'과 '그늘'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진의종 전 총리 이후 최초의 경제관료 출신 총리라는 기록의 목전에 와 있는 한덕수 총리지명자에 대해선 "주어진 업무를 해결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하다"는 평가와 "관료로 승승장구한 사람답게 전형적인 '예스맨'"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능력 자체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는 편.

야인으로 지내다 현 정부 들어 산업연구원장으로 발탁된 한 지명자는 분권형 국정운영 도입 이후 대폭 강화된 국무조정실의 첫 실장을 지내며 매끄러운 업무처리 능력을 발휘, 노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신임은 경제부총리 임명, 총리 지명으로까지 이어졌다.

행정고시 8회로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시작해 1982년 상공부 통상진흥국 미주통상과장으로 옮긴 한 지명자는 통상무역실장, 통상산업부 차관, 통상교섭본부장, OECD 대표부 대사를 거친 통상전문가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성장과 함께한 한 지명자의 통상전문가 경력에는 '그늘'도 적지 않다. 지난 2001년에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된 데 이어 2002년 경제수석을 맡으며 한중 통상마찰 해결을 진두지휘하면서 이른바 '마늘 파동'을 일으킨 것.

'휴대폰 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마늘시장 수입안전 장치를 맞바꾼 빅딜'이 밝혀지자 당시 농림부와 청와대는 "우리는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경질된 한 지명자는 한동안 야인생활을 해야 했으나 그 기간 중에도 최근 '김 &정(政)이냐 김&장이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법무법인 '김&장'의 고문을 지냈다.

한 지명자는 지난 해 7월 경제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통상전문가' 답게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직과 대통령 FTA특보 직을 겸임하며 한미FTA 도우미 역할에 여념이 없었다.

한 지명자의 총리 발탁에는 "한미FTA를 타결하고야 말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도 한 몫 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한 지명자는 관료로서는 드물게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재산이나 사생활 문제에 큰 흠결은 없고 정치색이 옅은 터라 인사청문회 통과가 어렵진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한미FTA 협상에 비판적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결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문재인 : '왕수석'으로 두번 나갔다 세번째는 '실장'으로 컴백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된 문재인 정무특보는 1982년 부산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부산 지역의 한 인사는 "'돈 잘 버는 변호사' 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던 노 대통령이 문변(문 특보)을 만나 정치적으로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문재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오늘날의 노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전 수석은 지난 2003년 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와 민정수석, 사회수석을 지내다 지난 2004년 2월 청와대를 떠났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네팔 여행 중에 급거 귀국해 탄핵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으며 노 대통령을 지켰다.

그 이후 노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자 함께 시민사회수석으로 복귀했고 지난 해 5월 민정수석 직을 그만둘 때까지 노 대통령을 보좌했다.

청와대 재직기간 중에는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 인사검증, 여론동향 파악까지 1인 다역을 소화했다. 특히 화물연대 파업, 천성산 터널 문제 등 시민사회와 갈등을 빚은 굵직한 사안들의 해결사로 나서서 부산지역 노동사회단체들로부터는 "문 수석이 데모도, 파업도 다 깬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한미FTA 반대 여론을 '진화'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파의 대부' '왕수석' '실세 중의 실세' 등의 별칭을 지닌 문 특보지만 외유내강형의 성품과 겸손한 풍모 등으로 인해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그의 인품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는 편이다.

청와대 내에서 부산인맥은 물론이고 다른 비서진들도 문 특보의 비서실장 임명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문 전 수석은 때로는 노 대통령에게 'No'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2005년 말의 황우석 사태 때 노 대통령도 황우석 씨를 싸고 돌 때 청와대 안에서 몇 안되는 반대론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고와 경희대를 졸업한 문 특보는 데모하다 잡혀간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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