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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들의 환대에 가슴 뿌듯했어요"

[현장] FTA 저지 범국본, 제주-서귀포 시에서 선전전

26일 농민 황우정(31, 충남 부여) 씨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이날 오전 제주 서귀포시 동명백화점 일대에서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선전전을 하면서 제주도민들에게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고한다'고 음료수까지 건네준 아주머니, '밥은 챙겨 먹냐'며 돈 만 원을 손에 꼭 쥐어준 어르신도 있었다고 황 씨는 말한다. 그는 "여러 집회 현장에서 선전전을 해봤지만 이번만큼 시민들의 반응이 따뜻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두 시간 동안의 선전전, 제주시민들의 따뜻한 환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이날 오전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선전전은 한미 FTA 협상은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일반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활동이다. 노동자들은 제주시에서, 농민들은 서귀포시에서 선전전을 각각 진행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귀포시에서 가장 번화가라는 동명백화점 앞의 선전전에 참여하기로 한 농민들이 탑승한 차량이 도착했다. 전성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처장이 농민들에게 유인물을 한 뭉치씩 나눠 줬다. 정광훈 범국본 공동대표와 양기환 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등도 이 선전전에 동참했다.

농민들은 둘셋 씩 짝을 지어 선전전을 시작했다. 동명백화점 부근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노안(老眼)에도 불구하고 받아든 유인물을 유심히 읽었다. 기자가 이 노인들에게 다가가 한미 FTA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젊은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지 뭐…"라며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노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느릿느릿 털어놨다.
▲ 전성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처장이 26일 제주 서귀포시 동명백화점 앞에서 한 제주 시민에게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프레시안

"언제 정부가 농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있나요. FTA가 뭔지는 몰라도 다 농민들 괴롭히는 수작이겠지 뭐. 젊은이들이 데모를 한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하겠다는 걸 막을 도리야 없지. 예나 지금이나 흙 파먹는 농민들은 여전히 고생이라니깐. 기자 양반도 다 알면서 뭐 그런 걸 물어."

구두수선집 앞에서 구두를 맡겨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 모(75) 노인의 말이다. 김 노인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가 "그만 해요, 말 하면 뭐 합니까"라고 질책을 하자 하던 말을 멈췄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어디 농민 마음을 알기나 할까?"

동명백화점 부근에 있는 옷가게에서 나온 강 모(68) 노인은 좀 더 자세히 한미 FTA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강 노인은 20년 동안 제주 산내동에서 감귤 농사를 지어 온 농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FTA가 돼 값싼 미국산 오렌지가 들어오면 감귤 농사는 다 망하는 일이야 불 보듯 뻔하지. 사람들이 어디 비싼 감귤을 사 먹겠나. 가격경쟁이 안 돼. 나는 나이가 70세가 다 돼서 농사 안 지어도 그만이지만, 젊은 농사꾼들은 많이 힘들거야. 내 자식들은 육지에서 회사 다녀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야"

강 노인은 정부에도 적지 않은 불신감을 드러냈다.

"감귤을 쌀처럼 보호해준다고 정부는 말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을 안 믿어. 협상이란 그 속성이 서로 주고받는 일인데 정부 마음대로 협상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 미국이 버티면 감귤이고 쌀이고 다 내주는 거지…. 서울에서 나랏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동차 더 팔아먹을까만 궁리하지 농업을 신경 쓰기나 한담."
▲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농민들이 나눠준 유인물을 유심히 읽고 있는 노인들 ⓒ프레시안

한편 동명백화점 옆에 있는 재래시장에서는 채소를 파는 한 아주머니와 선전전에 나선 농민 간에 가벼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인물에 경찰 폭력이 너무 부각된 것에 대해 아주머니가 문제를 삼은 것이다. 유인물에는 최근 시위에서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쓰러진 농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제주가 경찰 폭력의 경연장이 돼 있습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아주머니에게는 전투경찰로 군복무하고 있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데모 하면 어디 시위대들만 다치나요. 우리 아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경찰들도 수없이 다친다고 합디다. 어린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데모 있다는 뉴스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내 심정을 아저씨는 모를 거요.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폭력시위 하면 안 돼요."

농민의 항변이 곧바로 이어졌다.

"아주머니도 시위 현장 한 번 와보셔야 해요. 그저께(24일) 중문단지 앞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우리는 나무막대기 하나 없는데 경찰들이 방패로 사람 머리를 찍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렸단 말이에요. 아주머니 아들은 안 그렇겠지만 폭력경찰 정말 많아요."

금세 시간은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명백화점을 중심으로 사방에 퍼졌던 농민들은 삼삼오오 다시 백화점 앞으로 모여들었다. 농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담배 두어 대 피면서, 선전전을 하는 동안 만난 제주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농민들을 태운 차량은 다시 중문단지로 향했다.
연행자 석방 요구 집회도 열려

이날 오후에는 중문단지 입구 부근에서는 그 전날 차량시위 와중에 연행된 한 농민의 석방을 요구하는 약식 집회가 열렸다.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한미 FTA 저지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연행자는 모두 11명이다.

연행된 이들은 지난 23일 헤엄치면서 해상시위에 참여했던 8명과, 같은 날 협상장인 신라호텔 로비까지 진입해 기습시위를 벌였던 시민단체 활동가 2명, 그리고 25일 차량시위 와중에 연행된 농민 한 명이다. 앞의 10명은 연행된 직후 바로 풀려났지만, 25일 연행된 한 명의 농민은 하루 밤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치장에 있다.
▲ 이날 오후 한미 FTA 범국본 회원들은 제주 중문단지 입구 부근 도로 위에서 전날 차량 시위 과정에서 연행된 한 농민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연행된 농민은 제주 구좌읍에 사는 허준 씨다. 그는 지난 25일 시위 차량을 몰면서 경찰의 봉쇄망을 뚫으려다 자칫 경찰에게 상해를 입힐 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경찰은 허 씨의 차량을 둘러싸고 차문을 방패로 부순 뒤 허 씨를 현장에서 연행했다.

농민들은 함께 싸웠던 허 씨가 빨리 석방되길 바랐다. 어떤 농민은 "그래도 (허 씨가) 제주사람인데 (경찰들이) 빨리 풀어주지 않겠어"라는 낙관론을 폈고, 또다른 농민들은 "경찰들이 앙심 품고 우리 애간장을 태우느라 시간을 더 끌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석방 요구 집회는 오후 4시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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