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다음주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을 것이다. 내 몸을 빠져나온 아기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설레고 긴장되면서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어도 사회가 개인의 행복한 상상을 자극하고, 그 상상이 현실에 투영될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보통 엄마'들은 그런가. 마음 한 구석에 어두워지는 게 있다. 아기와 처음 눈을 마주치자마자 맞닥뜨려야 할 '보육'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강북구청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꿀꿀이죽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으로 죽을 끓여 먹여 온 일이 해당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그 사건 말이다. 필자가 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1년이 넘도록 이 문제로 힘겹게 싸워 왔다. 근본적인 제도적 변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6월19일 가까스로 구의회에 상정된 보육조례개정안이 열흘만인 6월30일 구의원 임기 만료와 동시에 모든 계류안건이 자동으로 폐기되는 바람에 허사가 됐다. 황량함 속에서 시작한 1년 전 같기야 할까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구의원으로서의 책임감과 더불어.
세간에는 "그런 사건이 있었지" 쯤으로 작아진 '꿀꿀이죽 사건' 이후의 1년을 되돌아본다.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는 '어느 동네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보육 시스템의 허술함이 곳곳에서 드러난 '모든 동네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비양심적인 원장, 사립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온 강북구청에 대한 강북구 주민들의 분노가 우리의 시작이었다. 대책위를 꾸려 연일 구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고 거리행진을 이어나갔지만, 강북구청과 강북구청장은 책임회피에만 급급했을 뿐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언론의 보도 등으로 꿀꿀이죽 사태가 확산되자 그때서야 비로소 구청에서는 해당 어린이집 폐쇄, 임시 어린이집 마련, 해당 어린이집 매입을 통한 구립 어린이집 건립 등의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꿀꿀이죽 사건'은 부실한 강북구 영유아보육조례가 함께 빚어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북구 영유아보육조례개정 서명운동본부를 꾸려 서명운동을 벌였고, 지난 1월 주민발의로 강북구 보육조례개정안을 냈다.
주요내용은 모든 보육시설에 연 2회 구청의 정기점검 실시, 동별 1개소 이상의 구립 보육시설 확충, 보육정보센터 설치 및 보육정책위원회 공개모집, 20인 이상 보육시설 별 운영위원회 설치 의무화로 학부모 참여보장, 보육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강북구 중장기 보육발전 종합계획 수립 등이었다.
사실상 기존의 조례를 전부 뜯어고친 것으로, 꿀꿀이죽 사태 해결의 종착역임과 동시에 주민발의라는 제도를 통해 강북구 지방자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주민자치운동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우린 순진했다. 5.31 지방선거 이전에 개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강북구청에 계속해서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지만, 강북구청은 서명자들의 본인확인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개정안은 구의회에 상정도 되지 않은 채 5.3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동본부의 상황실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구의원 후보 예비등록일이 다가오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임신한 몸인 탓에 뱃속의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거니와 다른 후보들에 비해 활동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뱃속 아이는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여서 보육조례개정운동을 책임 있게 결론짓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지역의 보육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준 주민들 덕분에 결국 당선도 됐다.
당선은 됐으되 기쁘지만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보육조례개정안이 구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운동본부는 '근조 지방자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고 구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직후 구청 측과 가진 면담에서 제5대 구의회가 개원하면 곧바로 다시 제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구청 측에서 첨부한 의견서를 살펴보면 성의 있게 주민들의 뜻을 받들겠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수십 장의 의견서 내용 대부분이 보육조례가 왜 개정될 필요가 없는지에 대해서만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의원으로서의 필자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주민들의 직접서명으로 만들어낸 보육조례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단한 대의명분을 내세울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음주면 태어날 우리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쯤이면 보육조례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돼 안심하고 보낼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만으로도 족하다. 세상 모든 '보통 엄마'들의 소박한 희망을 담아서….
필자인 최선(34세) 의원은 96년 서경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그동안 강북구에서 보육조례개정 활동 등을 이끌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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