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닷새 간의 일정으로 한미 FTA 2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지난 2월부터 진행된 한미 FTA의 전개과정과 그 영향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 FTA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 아래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가 몰고 올 파장을 조목조목 분야별로 뜯어보는 보고서들이 하나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산하의 '정책기획연구단'이 발간한 <한미 FTA 국민보고서>(그린비 펴냄)가 그것이다.
이 책에 포함된 보고서의 필자 명단에는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과)를 비롯해 이해영(한신대 국제관계학), 전규찬(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이병천(강원대 경제무역학), 차남호(민주노총 정책실) 등 수십 명에 이르는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이 들어있다.
한국 정부의 '오래된 습관'
왜 국민들은 한미 FTA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까?
현재 정부는 한미 FTA의 협상문 초안을 비롯한 각종 주요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정책을 수행하는 일반 공무원도, 정부를 감시해야 하는 국회의원도, 한미 FTA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한 전국의 수많은 부모들도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협상의 내용을 전해듣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한미 FTA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신중히 임하고 있는지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과연 FTA를 맺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예측에 대해서도 일본과의 FTA 경우는 한 100권의 연구가 있었는데 현재 미국과의 FTA의 준비상태는 공식적인 연구가 3권밖에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발간된 <국민보고서>는 정부가 정작 '공을 들이는 곳'이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부터 우리 정치사에는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어떤 정책에 대해 국민적 항의가 고조될 때면 '홍보 부족'을 탓하고, 국민의 혈세를 빼내 대국민 프로파간다에 나서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는 이 일을 이른바 국정홍보처라는 데에서 맡은 모양이다. 국가 긴급재난에다 지출해야 마땅할 수십억 원의 예비비를 예의 홍보부족이라는 이유로 TV, 라디오, 심지어 출처도 불분명한 자료를 늘어놓은 조잡한 홍보물 따위에 낭비하고 있다. 일방적인 선전은 토론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홍보를 벌이고 있을까? 정부가 공유하자는 한미 FTA에 대한 정보를 압축해서 말하면 아래와 같다.
"한미 FTA가 되면 수출이 늘고, 성장이 촉진되고, 고용이 창출되며, 경쟁력이 강화되고, 신 성장동력이 확보되고, 질 높은 서비스가 공급되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대된다. 이것이 한미 FTA의 추진 이유다."
"'자유무역'은 '강자의 보호주의'와 같은 말"
<국민보고서>는 서문에서 "우리는 바로 정부의 이런 주장을 '객관적 사실과 정론'에 입각해 찬찬히,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한미 FTA 체결이 몰고 올 영향력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그들만이 아는 협상, 그들만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IMF와 같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돈을 갚으면 효력을 잃지만 한미 FTA는 한미동맹처럼 협정을 깨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그만큼 공평하고 개방된 토론을 통해 그 실익을 따져보고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로 "한미 FTA가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하지만 실상 이는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을 단 미국 보호주의와 다름없다"며 "이미 연구자들에게 '자유무역'이란 '강자의 보호주의'일 뿐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이들은 "우리는 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보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FTA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그 중에서도 그들의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FTA를 문제 삼자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총 6부로 이루어진 이 보고서의 1부는 한미 FTA와 한국의 정치·사회와의 관계를 다뤘으며 2부는 한미 FTA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또 3부에서는 한미 FTA의 키워드로 부상한 '서비스산업'에 대해 공공서비스, 금융서비스, 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 조목조목 분석했다. 지적재산권과 전자상거래 부문을 분석한 4부, 노동 및 환경 분야를 다룬 5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분석한 6부도 각각 이번 한미 FTA와 관련된 논쟁에서 눈여겨 볼 사안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미 FTA를 어떻게 봐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미 FTA 국민보고서>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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