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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100만원 짜리 회사에 돌아가려느냐 묻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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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100만원 짜리 회사에 돌아가려느냐 묻지만…"

[인터뷰] 채희진 우진지회장이 말하는 '하청노동자의 삶'

강원도에 소재한 라파즈한라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이 두 달을 넘겼다. 라파즈한라시멘트는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가 한라시멘트를 인수해 지난 2000년에 설립된 회사다. 라파즈는 시멘트 업계에서 세계 2위의 업체.

그러나 이 회사는 하청회사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그것을 이유로 하청회사를 폐업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상 해고자 신세가 된 라파즈한라시멘트의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22일 상경해 서울 강남에 있는 코엑스 건물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이곳에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서울사무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나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한 자신들을 라파즈한라시멘트가 외면하고, 나아가 실업자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라파즈한라시멘트 대표를 만나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런 유형의 분쟁에서 원청업체가 해고된 하청노동자를 만나 준 사례는 대단히 드물며, 나아가 원만히 해결된 사례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하청노동자들과 원청업체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해법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은 지난 23일 오후 농성을 이끌고 있는 채희진 노조 위원장을 서울 영등포구 화학섬유연맹 회의실에서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그가 털어놓은 사연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이 무력화되는 전형적인 과정과 영세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노동조건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채희진 우진산업지회 지회장. ⓒ프레시안

- 노조를 설립하고 회사가 폐업되는 시점 사이에 한 달의 시간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노조는 3월 7일 설립됐다. 생산직 노동자 30명 중 21명이 노조에 참여했다. 그러나 근 한 달 사이에 노조원은 10명으로 줄었다. 회사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유와 협박은 '업무조정'이었다. 노조 설립을 하고 나서 회사 사장은 업무조정을 한다고 했다. 공장에는 우리 회사인 '우진산업'과 다른 회사인 '세화산업'이 있는데, 우리 업무 중 일부를 다른 회사에 넘겨준다는 것이 업무조정의 내용이었다."

- 경영상의 이유로 업무를 조정하는 것은 회사의 권리라고 볼 수 있다. 협박과 회유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노조 설립 전에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가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갑자기 업무조정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됐다. 더구나 우리 회사는 라파즈한라시멘트에서 핵심 공정만 아웃소싱돼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영 상태가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협박과 회유라고 판단한 보다 분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는 사직서를 내고 노조를 탈퇴하면 '세화산업'에 입사시켜 준다고 했다. 업무조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사직하고 옆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노조까지 탈퇴하라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회사는 노조 와해를 노렸다."

(우진산업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조가 아니다.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이라는 산별노조에 가입된 조직이다. 이럴 경우 '불가피한 업무조정'으로 인해 개별 조합원이 회사를 옮기더라도 조합원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따라서 노조를 탈퇴할 이유가 없다. 다만 세화사업에는 노조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편집자)

"노조 만들자 하청회사는 폐업돼"

- 회사와 단체협약은 맺었나?
"3월 22일 이후 세 번 교섭 공문을 보냈다. 회사는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첫 교섭이 3월 28일에야 열렸다. 하지만 이 교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교섭장에 앉자마자 사측 교섭대표는 황당한 말을 했다. 3월 31일에 회사가 폐업되니 교섭을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폐업의 이유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했다. 정말 예고대로 회사는 폐업됐고, 그 날로 우리는 실업자가 됐다."

- 회사가 노조 설립에 굉장히 민감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원청회사인 라파즈한라시멘트가 관여했다는 말도 있다.
"노조가 설립될 거라는 말이 현장에 돌자 3월 3일경에 라파즈한라시멘트의 고위 관리자가 본공장 내에 있는 두 개 하청업체와 항만부두에 있는 하청업체 대표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 노조가 생겨 앞으로 파업을 할 경우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말한 '업무조정'은 원청 관리자의 요청으로 하청회사 대표들이 만든 대책 중 하나다. 이 내용은 우리 회사 사장한테 들었다.

2002년에 라파즈한라시멘트에서 아웃소싱된 우리 회사는 덤프트럭, 지게차 등 장비를 다룬다. 이 장비로 시멘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재료를 운반하고, 기계에 붓는 일을 한다. 사실 라파즈한라시멘트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를 우리가 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파업을 하면 라파즈한라시멘트 공장 전체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원청회사가 기민하게 대응한 것 같다. 물론 우린 당시에 파업과 같은 것은 계획도 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회사 간판뿐"

- 폐업되고 현장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
"딱 두 가지가 바뀌었다. 우리 조합원이 실업자가 됐고, 회사 간판이 바뀌었다. 참, 우리 회사 사장도 공장에서 사라졌다. 노조를 탈퇴했거나 처음부터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다 '세화산업'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여전히 하고 있고, 같은 장비를 다루고 있다. 정말 회사 간판만 바꿔 달렸을 뿐이다. 우리 회사 소장과 과장 등 관리직도 여전히 같은 책상에서 일한다. 사장만 공장을 떠나 어딘가에서 국밥집을 한다고 들었다. 이게 위장폐업이 아니면 뭔가?"
▲ 임금명세표, 우진산업 한 직원의 지난해 5월 임금명세표다. 붉은 테두리 안을 보면 초과근로시간이 모두 208시간에 달한다. ⓒ우진산업지회


- 노조를 만든 배경은 뭔가?
"지난해 7월 회사에 들어온 뒤 정말 밤낮 없이 일했다.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하고 오후 4시가 퇴근이다. 하지만 퇴근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밤 12시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 때로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그 다음날 오후 4시에 퇴근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정말 녹초가 된다. 월 평균 초과노동시간은 150시간을 넘었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다고 임금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 달 실수령액은 130만 원 조금 넘는 정도다. 시급은 3150원이다. 총각들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금액이지만, 아이가 하나라도 있으면 견딜 수가 없다. 임금도 작고, 일하는 시간도 많고…. 버틸 재간이 없다. 그래서 이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힘들면 그만둬라. 공고 내면 이력서 수십 장이 쌓인다"

- 경영진은 이런 노동조건에 대해 별다른 말은 없었나?
"너무 힘들어서 사람 좀 더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임금 좀 더 올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윗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매몰찼다. '회사 설립 이래 항상 이 정도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바꿀 필요가 있느냐', '힘들면 그만둬라. 지금 (채용)공고 내면 이력서 수십 장이 쌓인다'고 말하더라. 정말 할 말을 잃었다."

- 다른 직장을 찾아볼 생각은 안했나?
"굴뚝 같았다. 하지만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새 직장을 찾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아침에 출근해 한 밤중에 퇴근하는데 구직할 시간이 있겠나. 그냥 그만 두고 나서 직장을 구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일자리가 어디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라파즈한라시멘트 공장 전경(위)과 공장 입구에 원직복직을 바라는 조합원들이 붙여놓은 각종 대자보(아래).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원청회사가 답을 내놔야"

- 회사 폐업 이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간 프랑스 대사관이나 라파즈한라시멘트 서울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고용됐던 우진산업이 아니라 라파즈한라시멘트를 겨냥하고 있나?
"우리는 실질적 사용자가 라파즈한라시멘트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한 '업무조정' 과정에서도 깊숙이 개입한 것처럼 사실상 우리의 고용주는 라파즈한라시멘트 원청회사다. 우리는 평소 무전기를 통해 업무지시를 받는데 지시하는 사람이 바로 원청회사 직원이다. 내가 알기로 정상적인 도급관계라고 하면 업무지시는 '우진산업'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02년에 라파즈한라시멘트는 한라시멘트를 인수한 뒤 한라시멘트가 직접 담당하던 공정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진산업은 제일 먼저 아웃소싱으로 만들어진 회사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을 과거에는 한라시멘트 직원이 했다는 말이다. 또 우진산업의 사장은 과거에 한라시멘트에서 안전관리과장을 하던 사람이다. 라파즈가 아웃소싱하면서 한라시멘트 전 관리자들을 '바지 사장'으로 세운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원직복직을 하기 위해서는 원청회사가 직접 나서야 한다. 그들이 답을 내놓지 않으면 방도가 없다. 우진산업은 벌써 폐업처리되지 않았나? 우리는 원청회사 사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

- 싸움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주위에서는 뭐라고들 하나?
"사실 이렇게 싸우는 우리 심정을 가족들도 잘 모른다. 100만 원 정도밖에 안 주는 직장에 돌아가려고 그 고생을 하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너무 힘들게 당했던 것이 너무 억울해서 그냥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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