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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문적 내용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다니…"

경찰,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검토에 시민단체 반발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가 사법처리 위기에 처했다. 강 교수가 사법처리 위기에 처한 것은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 때문이다. 보수 단체들은 이 글이 사상적 문제점을 근거로 경찰에 고발했고, 당국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 같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1년 8.15 평양축전 기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겨 구속됐던 강 교수가 이번에도 사법처리 위기에 내몰린 것은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던 현 정부 하에서 사실상 사문화 된 것으로 평가받아 온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서슬 퍼런 칼날을 번득이고 있는 셈이다.

***경찰이 출석 요구서를 발송하기까지**

문제가 된 강 교수의 글은 지난달 27일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맥아더는 38선 분단집행의 집달리였다'란 제하의 컬럼이다. 일각에서 '신'으로까지 격상된 '맥아더'의 본질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 이 글은 곧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일부 보수신문들은 강 교수 글에 대해 앞 다투어 비난성 기사를 쏟아냈고, 보수 단체 회원들도 뒤질세라 강 교수를 맹성토하는 데에 뒤지지 않았다. 2005년 중반기에 또다시 이념 논쟁이 촉발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급기야 보수 세력의 반발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자유개척청년단 등 23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 820명이 최근 "강 교수의 글은 북한을 찬양·고무해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고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한 것"이라며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

고발장을 접수한 수사당국이 강 교수의 글 중 관심을 갖는 대목은 "6.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수사 당국이 이 대목을 특별히 주목한 것은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수사 당국인 서울경찰청은 지난 24일 사법처리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조사 초점은 국가보안법 7조(고무·찬양) 위반 여부"라고 밝혔다.

***진중권, "조갑제도 통일전쟁이라 했는데..."**

이런 가운데 보수언론에서도 6.25 전쟁에 대해 강 교수와 똑같은 견해를 밝히고도 이념 논쟁은커녕 사법처리의 문전에도 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중권 교수는 25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중권의 SBS 전망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한 적이 있다"며 "통일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조갑제씨처럼 전쟁을 선동하는 맥락에서 하면 괜찮고, 강정구씨처럼 역사학적 주장으로 제기하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상한 논리"라고 주장한 것.

진 교수가 문제 삼은 대목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월간조선 94년 3월호에 쓴 논평 '대한민국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인가'에서 "김유신과 김일성은 1300년이란 간격에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두 사람은 통일을 위한 전쟁을 결심했던 한국 역사상 유이한 지도자"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이처럼 강정구 교수와 조갑제 전 대표는 맥락은 다르지만 6.25에 대해 똑같이 '통일전쟁'이라고 규정했다는 것이 진 교수의 지적인 셈이다. 그렇다면 강 교수가 사법처리의 반열에 오른다면 조 전 대표 역시 사법처리 됐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1994년 무렵이라면 말이다.

***보수 편향으로 만든 국가보안법**

한편 이번 강 교수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반민주성을 다시금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의견 표명을 한 것 자체가 사법처리할 수 있는 근거를 국가보안법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의 이런 특징 때문에 수많은 '양심수'들이 생겨났고, 시민사회의 건강한 비판적 목소리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가 보수 편향의 가치관에 잠식된 것도 국가보안법의 역할이 컸다.

따라서 강 교수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구속된다면 또 한 명의 '양심수'가 생기는 셈이다.

***시민단체, "학문적 내용이 사법처리 대상인가"**

수사당국이 강 교수에 대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히면서 정당·시민단체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전국교수노조 등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며 수사당국을 규탄하는 한편, 다수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수사 당국이 강 교수에 대해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제일 먼저 성명을 발표한 '전국교수노조'는 "학문적 내용은 학문 영역에서 검토되고 비판할 성격이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이번 사태의 본질을 짚었다.

이들은 나아가 "(강 교수 사법처리는) 가장 반학문적인 접근이자 (학자를) 권력의 하수인으로 삼아 곡학아세를 강요하는 행위일 뿐"이라며 "학술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는 파시즘 사회"라고 질타했다.

특히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올해 하반기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운동에 재돌입할 태세다. 이 단체는 지난해 말 국회 앞에서 수백여 명의 인사들의 단식투쟁을 이끌었다.

국민연대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무덤 속에 묻히지 않는 한 언제고 불쑥 되살아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오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애물단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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