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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삼성 구하기'에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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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대통령, '삼성 구하기'에 나섰나?

<긴급분석> "그동안 盧는 지역주의 극복 위해 뭐 했나"

충격적인 국정원 도청테이프의 내용에 열을 받아 오랜만에 과음을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숙취에서 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에 대한 논평을 부탁하는 언론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내가 술이 덜 깬 모양'이라고 생각해 술을 깨기 위해 고개를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노대통령의 연정 제의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을 위해 한나라당에 실질적인 권력을 내주겠다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말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타이밍이다. 정치란 언제 어떤 문제를 제기하느냐가 중요한, 타이밍의 예술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아니 어느 정치인보다 잘 알고 이용해 온 노대통령이 온 나라가 국정원 도청테이프문제로 난리가 나 있는 상황에서. 왜 하필 이 때 뜬금없이 핵태풍급 카드를 내밀고 나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무현정부 들어 삼성그룹이 잘 나가면서 일부에서 노정부와 삼성이 밀월간이라느니, 우리나라가 삼성공화국이 됐다느니 하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이 비판처럼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등공신인 삼성을 아끼는 노 대통령의 마음이 깊어 삼성에 쏠린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유도해 삼성을 구해주기 위해 생뚱맞다는 비판을 각오하고 대연정이라는 빅카드를 내민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도청테이프 게이트로 정계와 재계, 그리고 일부 주류언론간의 삼각유착관계에 철퇴를 가할 절호의 기회가 온 상황에서, 노대통령이 엉뚱한 카드로 김빼기를 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

내용도 문제이긴 매 한가지다. 흔히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같은 권력을 '적'에게 내주는 살인성인을 통해서라도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깨야겠다는 노대통령의 우국충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니 이해가 가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원 배지를 집어 던지고 적지인 부산에 가서 옥쇄를 서슴치 않던 '바보 노무현'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별별 추악한 짓을 서슴치 않던 지도자들은 무수히 봐 왔다. 그러나 나라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내놓겠다고 나서는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물론 지역주의는 너무도 심각한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다. 그러나 중대선거제 등 단순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해 지역주의가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나아가 지역주의 극복 등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선거제도는 독일형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그리고 김원기 국회의장이 정치개혁을 위해 구성한 범국민협의체인 정치개혁국민협의회는 바로 두 달 전 독일식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던 노 대통령이 왜 갑자기 선거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며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나서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선거제도까지 갈 필요도 없다. 정말 지역주의의 극복이 노대통령이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라면,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기에 앞서 스스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지지해준 호남을 헌신짝처럼 버린 분당, 가뜩이나 소외의식을 갖고 있는 호남의 민심을 자극한 영남출신 낙선자 챙기기 같은 지역주의 자극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노대통령의 대연정 제의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정책의 문제다. 연정은 두 정당 간의 정책적 노선의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채 단순히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대연정을 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연정을 해 통일부장관을 한나라당에 주면 북핵 등 대북정책을 한나라당 노선에 맡기겠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간의 공통점이 크냐, 아니면 차이점이 더 크냐는 문제로서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보느냐, 아니면 반이나 있다고 보느냐는 관점의 문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한나라당과 노선차이가 별로 없다는 주장은, 대연정 제의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이번 서한에서 가장 정확한 지적이자 노대통령다운 솔직하고 용기있는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이 탄핵 등 난리를 치뤘지만 이라크 파병으로부터 집시법 개악,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등 주요정책에서 공조해 왔다. 다시 말해, 정책적으로 보자면,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과 상당부분 정책연합, 즉 사실상 낮은 수준의 대연정을 해온 것에 다름없다.

문제는 이처럼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노선에 차이가 별로 없다면 왜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심심하면 한나라당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시비를 걸고 논쟁거리를 만들어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켜 왔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심심하면 한나라당을 수구정당으로 공격하며 시비를 걸어 오다가 이제 와서 두 정당 간에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연정이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확히 노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놓고 벌였던 대국민 사기극을 반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대통령은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갑자기 한 방송프로에 나와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언술로 수구세력을 공격하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그 결과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탄력을 받았고 수백명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목숨을 건 수십 일간의 단식농성투쟁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노대통령은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겠냐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국보법 폐지는 물건너 가고 말았다.

대연정 제의로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과 실제노선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주장은 한나라당이 개혁노선으로 변신해 노무현 정부와 차이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정체성이 후퇴해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어졌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쉽게 말해, 노무현정부의 개혁은 실패했고, 노무현 정부가 존재해야 할 존재가치가 사라졌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와 한나라당간의 차이가 별로 없다면 2002년 대선에서, 그리고 탄핵국면에서 노무현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던 수많은 국민들은 모두 뭐였단 말인가? 참으로 국민들이여 불쌍하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것은 이번 연정제의 뒤에 숨겨져 있는 변형된 형태의 제왕적 대통령관이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대통령의 권력을 자신의 원하면 한나라당에 양도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자신의 권력이 국민에 의해 특정한 조건 하에서 자신에게 위임된 국민의 권력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한 제왕적 발상이다. 이 같은 수준의 권력이양은 국민의 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노대통령의 대연정 제의가 진심이 아니라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고생하는 국민들에게 더위를 잊게 해주기 위한 썰렁개그인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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