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결과물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하소연하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며 다그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곳은 게임 커뮤니티였으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는 노동이슈에도 사용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자신의 노동조건을 푸념하는 글을 올리면 '누칼협'이라는 댓글이 달리는 식이다.
푸념 글을 올리는 사람이나, 댓글을 다는 사람이나 모두 후퇴하는 노동조건에 힘든 건 매한가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주69시간' 노동시간 논란부터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 실업급여 논란, 산재카르텔까지 다양한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 정부와 여당발로 발표된 노동안건들로, 대다수가 기존 노동조건에서 후퇴된 안들이었다. '누칼협'이라는 시니컬한 신조어가 노동이슈에도 전파된 배경이다.
'누칼협'으로 요약되는 지금의 세태에서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기대기는 요원하다. 자신이 일하는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식이 되어버렸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프레시안 기획위원)와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첫번째 좌담으로 2023년 한해 노동계에서 이슈가 된 사안들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후퇴되는 노동현실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이것이 노동자 개인의 부담으로 남게 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알아본다.
아래 두 사람의 대담 주요 내용.
"중대재해처벌법은 한계 있는 법, 마법탄환과 같은 해결책 아니다"
프레시안 : 2023년을 되돌아보면, 노동계에서는 '주69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논란', 그리고 최근에는 '산재 카텔' 등 여러 이슈가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오랜 시간 요구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뒤로 되돌리는 후퇴안이라는 점이다. 하나씩 이야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부터 이야기해보자.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2021년 법 제정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까지 적용을 유예한 바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내년 1월 법안 확대 시행을 앞두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기간을 2026년으로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예해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이상윤 :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첫째는 준비가 아직 안 됐다는 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지난 2년으론 부족하다는 논리다. 둘째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중대재해처벌법까지 필요하냐는 논리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도 계속 나왔던 주장이다.
그러나 제정 이후 2년 동안 적극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를 줄이기 위해 형사법 처벌 말고 다른 부분, 즉 노사 간 자정노력 등으로 효과를 봤다면 이런 논리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전수경 : 문제는 민주당에서도 유예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연장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건, 국민여론도 일정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왜 차별하느냐'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론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유예 연장안을 막을 수 있다.
이상윤 : 시민사회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이슈로 다시 문제제기를 하든, 노동자 권리로 이슈화 하든, 지금의 유예 연장안이 문제라는 점을 부각해서 여론을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수경 : 사실 키(key)는 민주당에서 쥐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11월 2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50인 미만 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 연장과 관련해 3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 지난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일처리를 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 사과 △ 유예기간 동안 산업현장 안전을 위한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 앞으로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드시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약속 등이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들은 이것을 합리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이것에 비하면 저희를 비롯하여 시민단체는 충분히 정책적으로 가져가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이상윤 : 시민의 공분을 불러와 여론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의 공분이 지금도 존재했다면 유예는 꺼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공분이 없으니 유예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 왜 그러한 사회적 여론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나.
이상윤 : 코로나 이후 경제 상태가 안 좋아진 게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중소기업 대다수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면 망한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이전과 달라진 국민 정서 속에서 '노동자를 죽이는 건 살인이다. 살인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는 당위에 대한 동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전수경 : 경제단체들이 50인(억)미만 기업을 구실로 삼아 많은 준비와 로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경제단체들은 이 기회를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할 기회로 만들고 싶기에 여론전도 체계적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이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윤 : 노동자가 더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다들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가 있느냐는 체감이 다르리라 생각한다. 시행 이후 회의감이 든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재계나 현 정부는 이런 점을 잘 파고든다고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마법탄환과 같은 해결책이 아니다.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법과 더불어 어떤 수단이 함께 가야 하느냐는 것은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재계와 정부의 마타도어 속에서 그러한 방법과 수단을 토론하고 찾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자를 통제하려 한다"
프레시안 :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면서 현장의 변화도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사업주가 구속되지 않도록 여러 장치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전수경 : 노동현장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부정적인 문제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 개인에게 스스로 안전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조나 노동자가 관련해서 문제의식을 느껴도 대응하기에는 꽤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 상당히 문제가 되리라 본다. 사업주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상윤 : 중대재해처벌법이 열어놓은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노동자의 행동과 관련된 요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조사해보면 안전모를 쓰지 않았거나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거나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이 사고의 근본원인이냐고 묻는다면 또 다른 이야기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이라는 명목 하에 이처럼 노동자의 행동과 복장 등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노동자의 자율성과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양면성을 잘 인식하면서, 작업장 내 미시적 권력 관계를 이동시킬 수 있는 후속 작업을 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 :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이상윤 : 현장에서 사업주와 노동자의 권력 구조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라고 하면, 경영자 입맛대로 지키는 방식이 도입된다. 그것은 노동자를 억압하고 규율하는 식이 된다. 그런 방식으로 되지 않으려면 미시적 권력이 변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가 꼼짝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전수경 : 기업에서 인적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 직원이 준수해야 할 작업 수칙을 만들어놓고 '세이프티 골든 룰(Safety Golden Rules)'이라고 조어(造語)를 한 대기업을 봤다.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은 변한 게 없는데 안전을 이유로 상당히 체계적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식이다.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부터 안전에 투자를 하긴 하지만, 노동자를 통제하고 책임을 비껴가는 것에 더 신경 쓴다. 사회가 환경과 생명, 안전 등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움직임은 더 가속화하는 듯하다. 기업으로는 나쁘지 않는 상황이다.
이상윤 : 제도라는 게 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라서 시행된다 해도, 이것이 현실에서 유리하게 작동되도록 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시행됐다고 끝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서 집행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논의하고 싸워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 사망을 줄이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이상윤 : 그렇지는 않다.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줄기는 할 것이다. 다만, 이 법이 산재사망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는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안전을 이유로 노동자를 억압하는 장치로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시간 통제, 기업이 직접 하지 않지만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통제하는 식"
프레시안 : 이야기를 돌려보자. 11월 13일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주 최대 69시간제'를 철회하고 주 52시간제 근무제를 유지하되 특정 업종과 직종에 한해 제한적으로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주69시간제'를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상윤 : 모든 직종이나 산업에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유연성이 필요한 산업이나 직종 중심으로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한국 사회도 장시간 노동으로 산업,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방증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장시간 노동이 사라지는 식이 아니라 전체 분야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인한 셈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같은 8시간을 하더라도 야간 8시간 노동이라든가, 유연성을 강화하는 노동시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갉아먹는 비표준적 노동시간 등 노동시간의 양이 아닌 질에 방점을 두는 식으로 논의 방향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전수경 : 코로나 이전에는 노동자의 직무교육 같은 경우, 업무 시간에 진행됐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콜센터의 경우를 보니 노동자에게 자료만 주고는 스스로 습득하라는 식이다. 코로나 시기에 노동자 집합교육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알아서 습득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윤 : 코로나를 거치면서 노동자에 대한 시간 통제는 기업이 직접 하지 않게 됐다. 대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통제하는 식이 됐다. 이제는 노동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퇴근 이후에도 일을 싸들고 오든가, 아니면 직무연수를 위해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이런 시간은 노동시간에 들어가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카톡 등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형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과거엔 출퇴근 도장 찍는 게 노동시간으로 책정됐지만, 이제 이런 시간은 점차 줄어들면서 대신 비표준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전수경 : 가장 심각한 게 프리랜서다. 그런데 이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자유롭다고 위장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주변부에 존재한다. 이들은 휴식도 없고, 노동시간의 경계도 의미 없는 노동자들이다.
이상윤 : 다른 관점에서 소비자로서 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늘어났다. 서비스노동자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라진 이들 노동자로 인해 소비자들은 무언가 하나를 사려 해도 노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점에 가서는 무인 판매기에서 일정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앱으로만 접수받는 제품들은 일일이 앱을 깔고 자신의 정보를 기입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냈다는 건 긍정적이지만, 변화된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도 진척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주변부로 밀려나고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끈을 놓지 말라"
프레시안 : 최근 논란이 되는 '산재 카르텔'을 이야기해보자. 지난 10월 26일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산재 카르텔' 주장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각종 견제 장치가 사라져 '나이롱' 산재 환자가 급증하면서 공단과 직영 병원은 과잉진료로 잇속을 챙겼지만, 산재보험기금은 누수가 발생했다는 게 이 의원 주장이다. 이에 발맞춰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기금 재정 부실화 특정감사'에 착수했다. 실제 이러한 '산재 카르텔'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전수경 : '산재 카르텔'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적 약자, 취약 계층을 옥죄는 수순이라고 생각된다. 윤석열식 자유라고 할까.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이상윤 : 새로운 건 아니다.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이, 경제가 어렵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가 많은 시기에 대표적으로 취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희생양을 만들고 이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해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어 다수가 혐오하게 하는 식이다. 그렇게 정치권력은 자신이 받는 혐오를 대신 받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면서 자기에게 제기된 비난과 분노에서 벗어난다.
프레시안 : 산재 관련해서 '나이롱' 환자가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산재 보험기금도 매우 많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윤 : 산재보험이 전체 보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다. 줄일 수 있는 돈을 넘어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재 카르텔'이라며 부정 수급을 이슈화하는 것은 종국에는 산재 신청 자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일하다 다쳤는데 병가를 내는 것이 일탈적인 행동 내지는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식이다.
산재 신청 내지는 병가를 내지 않는 게 당연한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 '산재 카르텔'이다. 이는 현장에서 경영 측 권한이 잘 작동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수적 효과는 윤석열 정권에서 일관되게 노동자에 대한 공격, 즉 노동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화물연대부터 건설노동자, 그리고 이번엔 산업재해자다. 노동자가 가진 자긍심을 허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대중으로부터의 비난도 있지만, 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비난의 굴레 속에서 위축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실업급여 논란도 그렇다. 사회보장 재정을 '세이브'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정치적 목적이 있다.
전수경 : 그동안은 노동과 산재를 연결해서 '너는 생산성이 다 떨어진 기계야. 너는 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해' 이런 식의 공격이 주기적으로 진행돼 왔다. 지금은 스케일이 커졌다. 전반 사회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약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실업급여 논란은 고용시장에서도 취약한 위치에 있는 청년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이상윤 : 실업급여 논란에 대한 대응 방식은 ‘부정수급자가 있다 없다’ 식의 사실 관계를 놓고 싸우는 방식은 아닌 듯하다. 방어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롱' 환자로 공격하는 산재보험의 경우, '나이롱' 환자가 있다 없다의 논리가 아니라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또한 정부에서 기업에 산재보험료를 깎아주는 행태가 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정부의 기업 봐주기 등이 심각하지만 그런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재보험의 개혁 과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전수경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듯싶다.
이상윤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그리고 '주69시간' 노동시간 논란 등에서도 드러났는데, 더는 노동자가 사망사고로 죽는, 한국경제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살인적 노동시간은 대기업에서조차도 요구하지 않는 식이다.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좀더 지능적인 방식으로 통제와 관리를 바꿔가는 중이라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현재 윤석열 정부의 노동 배제, 노동혐오,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정치적 스탠스가 공공연해지면서 사회운동 진영이 위축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실정이 많은데, 그것이 지금까지 누적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다시 다잡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수경 : 실업급여 논란에서 눈여겨 본 대목은 집단화 돼 있지 않는 특정 청년 여성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조직이 없었다.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결국, 그들에게는 낙인만 남았고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지금 정권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개별노동자를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파편화하고 개별존재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방어하지 못하고 상처받는 그들에게 서로 연결돼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부로 밀려나고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끈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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