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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고상할 수 없는 '사서(司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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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고상할 수 없는 '사서(司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외침

[거인들의 발걸음] 양천문화재단 사서 노동자들의 절규

구청 앞 집회 참가자에게 경찰과 구청이 구청 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용변이 너무 다급했던 참가자는 노상방뇨 한다.

이때 경찰과 구청은 참가자에게 어떤 입장을 보일까? 해당 참가자를 연행할까?

물론 참가자가 노상방뇨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천구청과 양천경찰은 양천구청 앞에서 연좌해 집회를 진행하는 참가자들의 구청 내 출입은 물론 구청 내 화장실 사용조차 막았다. 양천구청 둘레는 경찰들이 지켜 섰다. 경찰은 곳곳에 '위험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접근금지 테이프를 둘렀다. 하물며 사적 건물인 주유소조차도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하는데 공공기관인 구청이 집회 참가자의 화장실 사용조차 막는 것은 공공의 안녕보다 개인의, 특정 세력의 안녕을 지키려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15분 VS 48시간

"저는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도서관 사서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사서는 책에 둘러싸여 책을 보다가 이따금 이용자가 문의하면 답해 주면 되는 ‘꿀직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9월 19일에 열린 '양천구청의 노동자 폭력 진압 규탄 집회'에 참여한 노원구 한 사서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천구청의 노동자 폭력 진압 규탄 집회'의 '노동자 폭력 진압'은 지난 9월 13일에 벌어졌다. 이날 양천문화재단에 소속되어 사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양천구청 1층 로비에서 평화롭게 연좌해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었다. 15분이 지나자 양천구청의 요구로 출동한 경찰들이 폭력을 휘두르며 노동자 10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의 노동자가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심지어 한 노동자는 뼈가 살을 찢고 나오는 큰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연행한 노동자들을 48시간 동안 구금했다. 연행 과정에서 부상당한 노동자들이 병원 치료를 요구하자, 경찰은 수갑을 차야만 병원에 갈 수 있다고 겁박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수갑을 찬 채로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연행된 10명 중 1명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지부장이었는데 그는 양청서 정보과와 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주선한 교섭 자리에 참석하다가 연행됐다. 그런가 하면 이기재 양천구청장은 이러한 폭력사태는 묵과한 채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요구를 불법으로 몰며, 근거 없는 주장과 노조혐오를 담은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게재했다.

양천문화재단은 양천구 출연기관으로, 공공도서관과 문화시설 등을 위탁 운영하고 양천구민에게 공공문화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천구는 양천문화재단의 지도감독기관이다. 양천구청장은 재단의 이사장을 임명하고, 양천구는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인사, 보수, 정원 등 노동조건의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19일 집회. ⓒ김경미

'꿀직업'일 수 없었던 사서

다른 자치구의 문화재단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도 열악한 편이지만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하다. 대부분의 구립도서관 사서들은 책 대출과 반납 관련 업무, 책 관련 각종 문화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업무를 기본으로 수행한다. 여기에 이용자들을 응대하는 서비스직 업무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면 업무로 인한 감정노동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악성 민원에도 시달린다. 인력이 부족해 청소 업무까지 맡다 보니 사서들은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손목질환, 허리디스크 등의 질병을 앓는 사람도 생긴다.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다. 임금인상률은 물가인상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몇 년을 일해도 월급은 제자리 수준이다. 노원문화재단 노동자들은 연 120%의 명절수당이라도 받지만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은 그마저도 받지 못한다. 노동조건과 처우가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양천문화재단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만 정원의 30%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퇴사했다.

필리버스터, 쏟아지는 이야기들

'양천구청의 노동자 폭력 진압 규탄 집회'는 1부와 2부로 진행됐다. 1부는 집중집회와 필리버스터로, 2부는 투쟁문화제로 구성되었다.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면서 전체 집회는 예정 시각보다 40여 분 늦게 마무리되었다. 집회에는 양천문화재단 노조 조합원들과 노원문화재단 노조 조합원을 비롯해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 150여 명이 참여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한 노동자는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실제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성별,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처우를 모른 체하고 면담 요청마저 불응하는 기관의 태도를 보며 사명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공공기관을 향한 신뢰, 도서관을 향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사서로 일 해왔다. 구청도, 경찰도 신뢰할 수 있는 기관, 신뢰를 주는 기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노동자도 있었다.

서사원(공공운수노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노동자는 "서사원 노동자들의 처지와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처지가 법적 사장과 현장의 사장이 다르다는 점에서 더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미심쩍은 양천문화재단, 양천구청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과 양천구 체육과 과장, 양천문화재단 본부장과 경영관리팀장과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면담에서 상여금은 25%로 이야기되었고, 장기근속금은 신설 가능성만 이야기되었다.

노동자들은 그나마 양천구청과 양천문화재단 측이 면담에 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구두로만 정리된 내용으로 논의를 더 진정할 수 없으니 문서로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장기근속금을 포함해 노조 측 요구 중 반영 및 실행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그 이유 역시 문서로 정리해 주면 전체적인 내용을 총회에서 논의해 답변을 내놓겠다고 노조는 입장을 정리했다. 사측은 9월 21일까지는 문서를 준비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연행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두 노동자들의 병가 처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이다.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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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글을 쓰고 외국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책을 만들며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대한문 분향소 농성을 계기로 잠시 잊고 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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