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이론천문학자)가 우주에 제5원소가 있어야 한다는 논문을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랐다. 제5원소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거나, 대중문화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1997년)의 모티브로 소비되어 왔을 뿐, 한국의 대표적인 천문학자가 할 얘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박 교수의 제5원소론이 국제천문학계의 최상위 학술지인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출판되었다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은 2023년 8월 8일자에 실렸다. 한국 당대 최고의 이론천문학자가 도대체 무엇을 알아낸 것인가를 본인에게 묻기 위해 지난 8월 14일 서울 고등과학원으로 찾아갔다.
"현재의 우주론은 틀렸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론의 표준 모형이 틀리다는 걸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증명'이란 단어를 사용하다니, 엄청난 말이다. 현대 우주론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기원과 현재, 미래를 연구하여 구축한 이론이다. 현대우주론의 표준모형은 현재 ΛCDM다. Λ(람다)는 우주상수를, CDM은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우주론 표준모형은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의 대부분이, '우주상수'와 '차가운 암흑물질'이라는 거다. 우주공간은 가속적인 팽창을 하고 있고, 현대 우주론은 그걸 설명하기 위해 미지 에너지인 암흑에너지를 도입한 바 있다. 그리고 여러 가능한 암흑에너지 중의 하나가 우주상수, 즉 진공 에너지라고 보고 있다. 또 '차가운 암흑물질'은 암흑물질이라는 아직 정체를 모르는 물질이 있는데, 그 물질 성질은 차갑다, 즉 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다는 거다. 이 암흑물질이 갖는 중력 특징은 인력, 즉 잡아당기는 힘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우주를 가속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우주상수가 아니라 제5원소이라는 주장을 이번 논문에서 한 것이다. 차가운 암흑물질과 우주상수가 우주 물질-에너지의 대부분을 이룬다는 현재의 우주 표준모형이 틀렸다는 논문이고, 그렇기에 박 교수 주장은 예사 얘기가 아니다.
박 교수는 미국 뉴멕시코 주 선스팟에 있는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의 SDSS망원경이 관측한 적색이동 자료를 갖고 연구했다. SDSS(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는 은하들의 적색이동 탐사 데이터를 측정했다. 적색이동(redshift) 값을 보면 천체가 지구로부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값이 클수록 멀리 있는 천체다. 즉 멀리 있다는 건 초기 우주에 있었던 천체라는 게 된다. 은하들의 적색이동탐사 데이터를 박 교수는 분석했고, 그러면 은하들이 우주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우주가 어떻게 팽창해 왔느냐를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우주 팽창의 역사를 측정한 방법은 알콕-파친스키 테스트(Alcock–Paczyński Test)다. 이 측정법으로 측정한 우주팽창 역사에 따르면 암흑에너지의 상태방정식 값이 –1이 아닌 것으로 나왔다. 우리가 얻은 값은 -0.903이다. 두 값이 비슷한 거 아니냐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1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의 오차 한계 멀리에 있는 값이다. –1이라고 상정하는 현재의 우주론 표준모델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파친스키 교수로부터 논문을 한 부 건네 받다
박 교수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을 접한 건 이 논문을 1979년에 내놓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파친스키 교수로부터다. 보단 파친스키 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천문학자였다. 박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과정 유학 때에 그의 강의를 한 학기 들은 바 있다. 박 교수는 학위를 하고 미국 서부로 가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LA 인근 패서디나에 있던 중, 1990년 11월 어느 날 동부의 모교인 프린스턴을 잠시 찾았다. 파친스키 교수가 점심을 먹자고 하더니 논문을 하나 갖고 왔다. 파친스키 교수는 논문 아이디어가 좋은데, 나오고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방법을 갖고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박창범 박사가 연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파친스키 교수는 이때 자신의 집으로 저녁 때에도 초대를 해서 식사 대접을 했다. 박 교수는 "나는 굉장히 고마웠다. 따님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극진한 대접을 해줘서 황송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박창범 박사는 연구를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한국으로 서울 대학교 천문학과 교수가 되어 돌아왔다. 1990년대는 한국에서 천문학 연구를 제대로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고등과학원에 와서 천문학 연구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을 이용한 연구는 시작하지 못했다. 고등과학원에서 일하던 2000년 대 후반 프린스턴을 다시 찾아 보단 파친스키 교수를 만났다. 파친스키는 뇌졸중이 와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는 몇 달 후인 2007년 초 사망했다. 그의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네 명의 젊은 천문학자와의 연구
박 교수는 2007년에 드디어 우주공간팽창 역사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우주가 진화해도 은하들이 공간에 분포하는 모양은 크게 보았을 때 통계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서 우주공간의 팽창역사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마침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막 학위를 한 김영래 박사가 연구원으로 합류해 이 연구를 함께 했다. 그 뒤로도 세 단계에 걸쳐 세 사람과 연구를 이어갔다.
첫 번째 연구자는 2013년 중국에서 온 박사후연구원 리샤오동 박사다. 그 연구원에게 앞서 개발한 은하분포 진화 이용법과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을 서로 결합하고, 이를 관측 자료에 적용하게 하였다. 박 교수는 그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논문을 여러 편 썼다. 박 교수는 "이때 연구는 은하 공간 분포에 담겨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걸 받아 연구를 또 확장한 사람은 박창범 교수 아들인 천문학자 박현배 박사(1987년생)다. 박현배 박사는 미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한국천문연구원, 일본 IPMU(우주수리물리연구소)를 거쳐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우주론 연구자다. 결혼을 위해 한국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 박 교수는 연구를 시켰다. 박현배 박사가 주어진 SDSS 자료에 있는 정보를 다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최종적으로 개발했다. 2019년에 논문이 나왔다. 박현배 박사의 연구를 이어받기 위해 2020년 중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이 또 왔다. 동푸유 박사(현 중국 윈난대학교)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으로 마지막 연구를 해냈다. 네 사람과 수행한 연구는 2010년 논문, 2016년 논문, 2019년 논문, 그리고 2023년 논문으로 네 단계에 걸쳐 나갔다.
박 교수는 이들의 연구를 이렇게 설명했다.
"리샤오동 박사와 박현배 박사는 알콕과 파친스키가 낸 아이디어와 나의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상술하여 구체화한 뒤, 시뮬레이션 데이터에 적용해서 이 방법의 효용을 검증했다. 마지막 연구자인 동푸유 박사는 그 모든 걸 관측 데이터에 적용해서 분석했다. 그래서 우주배경복사 관측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은하들의 공간분포 데이터만을 가지고도 우주 모형을 검증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우주 파라미터 측정을 이번에 해냈다."
암흑에너지가 또 문제
박 교수는 우주모형 검증을 위해 표준우주모형 보다 약간 일반화된 우주모형 집단을 채택했다. 우주는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 평탄하고 암흑물질은 차가운 성질은 갖는 점은 표준우주모형과 같다. 그러나 암흑에너지를 우주상수로 확정하지 않고 다른 물질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암흑에너지의 압력과 밀도의 비를 상태방정식 계수 w라고 하는데, 이 계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말해 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암흑에너지의 압력을 밀도로 나누어준 값 w가 –1/3보다 크면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고, 이 보다 작으면 가속팽창을 한다. w가 정확히 –1인 경우가 암흑에너지 정체는 진공 에너지다. 우리 연구진이 암흑에너지의 상대방정식 계수를 이번에 새롭게 정밀 측정을 했다. 측정 해봤더니 표준 우주론에서는 w가 –1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0.903이 나왔다. 과거 같으면 오차가 너무 컸기에 –0.9라고 해도 –1인 표준모형과 부합한다라는 결론을 우리도 내렸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오차가 작게 정교한 측정을 했다. 우리의 측정값은 -1에서 표준편차의 4.2배(4.2시그마) 만큼 떨어져 있다. 보통 3시그마를 넘어가면 두 값이 서로 부합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다. 4.2시그마가 나왔으니 두 개가 맞을 확률이 거의 없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거듭 재확인 되어야 하겠지만, 우주상수를 채택한 현재의 우주 표준 모델은 일단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KISTI 슈퍼컴퓨터로 연구
박 교수의 연구는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행했다. 고등과학원을 가다보니, 바로 앞에 KISTI가 있다. 그래서 "바로 앞에 있는 슈퍼컴퓨터를 갖고 연구를 했느냐?"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KISTI에는 'I'(정보)가 들어가 있지 않느냐. 정보 관련 데이터베이스, 책과 같은 게 서울 분원에 있고, 과학기술(ST)는 대전에 시설이 있다"라며 "KISTI의 도전과제에 지원해 선정됐고, 그 비싼 슈퍼컴퓨터 이용 시간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줘서 이번에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제5원소론
박창범 교수가 KISTI얘기 전에 우주론 얘기를 좀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옮겨 본다.
"우주 표준 모형이 채택하고 있는 암흑에너지 정체는 우주 상수다. 우주 상수는 진공에너지라고 우리가 보고 있다. 상태방정식 계수가 –1이면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인데, -0.903이니 진공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면 압력과 밀도의 비가 –0.903인 물질은 무엇인가? 이걸 Quint-essence라고 한다. 우리말로 제5원소라고 하는데, 제5원소 물질이 우주에 깔려 있을 거라는 거다. 제5원소론은 제임스 피블스(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와 바흐랏 라트라(Bahrat Ratra, 미국 캔자스 주립 대학교 교수)이 1988년에 제안했다. 바랏과 나는 캘텍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같이 했다. 친한 친구다. 나는 제5원소 아이디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제5원소에 대한 증거가 지금까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이번에 제5원소론을 제안한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가 논문의 핵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진공 에너지라고 하는 게 물리학적으로 보면 예측이 된다. 그런데 물리학에서 예측하는 진공에너지와,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진공 에너지가 너무 차이가 난다. 관측적으로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해 이론적 예측값이 몇 배, 몇 십 배가 아니라, 약 10의 120승 배나 크다. 입자물리학 하는 사람이 보면 진공 에너지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이렇게 큰 건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우주의 나이나 가속팽창을 설명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렇기에 제임스 피블스와 바흐랏 라트라 이런 분들이 제5원소론을 생각해 낸 거다."
피블스와 라트라 박사가 1988년에 제안한 가상의 물질인 제5원소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 박 교수는 "진공 에너지는 우주에 공간이 있으면 에너지가 있는 거다. 반면에 제5원소는 실제 물질이 있는 거다. 압력과 밀도의 비(w)가 –1보다 큰 물체가 실제로 우주에 차 있는 거다. 우주 안에 진공, 즉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아니라, 우주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물질이 있는 거다. 그리고 이 물질은 우주의 어디에는 많을 수도 있고, 또 어디에는 적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제5원소와 암흑물질
그러면 제5원소는 또 암흑물질과는 다른 것인가? 현재 우주표준모델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약 25%는 암흑물질이 차지한다고 말한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 인류는 모르고 있다. 중력은 있고,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을 '일반물질'이라고 한다. 일반물질은 전체 물질-에너지의 5% 밖에 안 된다.
박 교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w가 –1/3 지점에서 갈린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암흑물질은 압력과 밀도의 비가 –1/3보다 크다. 그래서 중력이 인력이고 우주를 감속 팽창시킨다. 우주가 팽창하기는 하나 팽창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물질이니 질량을 갖고 있어 중력이 작용하기에 서로 잡아당긴다. 박 교수가 "질량의 일반적인 개념이 에너지다."라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어떤 물질이 있으면 이 물질이 항상 인력을 내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귀가 솔깃하다. 물질인데, 인력, 즉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고 밀어내는 힘, 척력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인가? 박 교수는 "척력을 낼 수도 있다. 인력을 내느냐, 척력을 내느냐 하는 건 바로 압력과 밀도의 비율인 w에 의해 결정된다"라며 "비율이 –1/3을 기준으로 크면 인력, 작으면 척력이 된다"라고 말했다.
인력과 척력이 엇갈리는 지점
박 교수는 "물질이라고 무조건 인력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라고 다시 강조했다. 나는 왜 –1/3에서 밀어내는 힘과 잡아당기는 힘으로 물질의 물리적인 특징이 갈리는지가 궁금했다. 설명해달라고 했다. 박 교수가 뉴턴을 말했다.
"뉴턴 역학에서는 질량에서만 중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물질 밀도 뿐 아니라 압력도 중력을 만들어낸다. 뉴턴 중력에서 아인슈타인 중력으로 가면 중력을 주는 항이 질량이 아니라 에너지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압력도 에너지다. 중력을 주는 물리량이 에너지 즉 물질 밀도 항과 압력 항 2개가 있는 것이다. 이 두 개를 합한 값이 양수가 될 수도 있고, 음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궁금했다. 중력 값에 마이너스가 나올 수도 있나 싶다. 박 교수는 이런 질문에 대해 "물질 밀도만 있으면 물질 질량이 음수가 되지 않는 한 플러스다. 항상 인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항이 두 개 이기 때문에 합이 음수가 되느냐 양수가 되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알아야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두 개의 항을 합한 값이 마이너스라는 건 물질 밀도보다는 압력 항이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인가 싶다. 박 교수는 "압력항이 결국은 중요해지고 있는 거다. 훨씬 큰 거다"라며 "물질 밀도에 의한 중력항과 압력에 의한 중력항이 지금은 비등하나, 압력에 의한 중력항이 더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설명을 계속 옮겨 본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와 같은 우주상수라면 압력에 의한 중력 항은 안 커진다. 물질 밀도에 의한 중력항은 줄어들고 있다. 왜냐면 우주에 있는 물질의 양은 그대로 인데, 자꾸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피가 팽창하니 밀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중력이 약해진다. 인력은 자꾸 약해지는데, 척력은 그대로 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밀어내는 힘, 척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왜 –1/3일까? 두 개의 힘 중에서 어떤 힘이 나타나느냐는 –1/3의 어느 쪽으로 나오느냐가 결정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공간에 세 방향이 있어서 그렇다. 세 방향 압력이 등방한 개념이다. 그렇기에 물질밀도/압력의 값이 –1/3이면 전체 중력 값이 0이 된다. 그러면 우주 팽창 가속도가 힘을 잃는 거다. 그리고 이 값이 –1/3보다 크면 전체 중력값이 음수가 되어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는 것이고, -1/3보다 작으면 전체 중력값이 양수가 되어 우주가 가속 팽창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SDSS관측데이터 보정을 위해 KISTI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다
알콕-파친스키 방법을 관측 데이터에 적용했다. 관측 데이터가 주는 건 은하들의 적색이동 수치다. 적색이동 수치는 빛을 내고 있는 천체가 지구에 있는 관측자로부터 얼마나 빨리 멀어지고 있는가 하는 속도를 알려준다. 은하들의 공간 분포를 그려보려면 적색이동 수치를 거리로 환산해야 한다. 적색 이동을 거리로 정확히 환산하려면 우주가 그동안 어떻게 팽창해왔는지를 가정해야 한다. 어떤 모델이든 쓴다고 하자. 그거에 맞춰 구간 별로 관측된 은하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가까운데에서부터 멀리 있는 데 까지를 표현한다. 적색이동 값밖에 없었는데 시선 방향 거리로 환산해서 은하 그림을 얻는다. 적색 이동을 제대로 거리로 변환했다면 은하들의 공간 분포가 실제 우리 우주의 우주거대구조의 공간 분포 모습과 일치해야 한다.
박 교수는 "한 가지 예를 들면 우주거대구조가 시선방향으로 찌그러져 있으면 안 된다. 호떡처럼 납작하게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적색이동을 거리로 잘못 환산하면 은하들의 공간분포 모습이 찌그러진다. 그러면 내가 우주 모형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멀리 있는 은하 분포 자료에서나 가까이 있는 은하 자료에서 분포의 성질이 통계적으로 똑같이 되는 그런 우주 모형을 찾는 거다. 그런 모형을 찾으면 그게 정답이다"라며 "잘못된 우주모형을 채택하면 은하들의 공간 상의 분포 모습이 실제에 비해 왜곡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우주모형을 찾는 방법이 알콕-파친스키 테스트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모든 관측 데이터는 지저분하다. 간접적인 선택 효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라며 "관측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적인 왜곡 효과를 모두 보정하기 위해 관측 과정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없으면 관측의 왜곡 효과 보정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호라이즌 런 1~5
박 교수는 KISTI로부터 슈퍼컴퓨터 사용시간을 지원받아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는 대전에 있는 KISTI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행한 우주 거대 구조 생성 시뮬레이션 연구는 '호라이즌 런(Horizon run, 이하 HR이라고 표현)'라고 한다. 매 단계의 시뮬레이션이 당대에서는 가장 큰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를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었다. HR1은 2007년에 시작했고, HR2, HR3, HR4, HR5를 2019년까지 진행했다. 이번 제5원소론 연구 성과는 HR4 시뮬레이션에서 나왔다. HR4는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까지 석 달간 KISTI의 슈퍼컴퓨터 4호기인 타키온을 갖고 했다. 박 교수는 "KISTI의 슈퍼컴퓨터 능력의 4분의 1은 사용했을 것이다. 코어를 8000개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HR1~4는 N체(N-body) 시뮬레이션이다. N개의 물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주 진화 모형을 연구했다. HR1에서 HR4로 숫자가 커질수록, 시뮬레이션으로 돌린 입자 수가 늘어났다. 우주를 모사해서 정확하게 그 진화를 알려면 입자 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에 입자를 집어넣고 입자의 중력만으로 우주에서 은하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지켜보았다. 별 생성은 볼 수 없었다.
후속 연구인 HR5에서는 유체 역학을 추가했다. 박 교수 연구진은 중력과 유체역학을 같이 보는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이번에 처음으로 수행했고, 이 역시 세계적으로 최대의 시물레이션이었다. 박 교수는 "HR4까지는 물질 분포의 요동을 입자들을 갖고 표현해서 중력 계산을 했다, 가스는 없다"라면서 "HR5에서는 입자, 즉 중력의 특징에 가스와 별 생성이 들어갔다. 관측 데이터와 직접 비교가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HR 연구는 매번 세계 최대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이는 KISTI가 우수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가령 2018년에 구축한 누리온은 25.7페타플롭스(PFlops)의 계산 능력을 갖고 있다. 플롭스는 초당 수행할 수 있는 연산 횟수(부동소수점 연산)이고, 페타플롭스는 초당 1000조 번 연산을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HR5 데이터가 아니라, HR4 결과를 갖고 논문을 작성했다. 박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HR5는 유체역학을 고려한 시뮬레이션이기는 하지만 관측 데이터에 비해서 너무 작아서 관측을 시뮬레이션할 수가 없다. 시뮬레이션 공간 크기로는 HR4가 훨씬 크다"라고 말했다. 한국 연구자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려면 KISTI가 더욱 강력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박 교수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KISTI에서 시뮬레이션할 때 연구자가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 슈퍼컴퓨터가 알아서 잘 돌리겠지 하고 나는 짐작했으나, 그건 잘못이었다. 슈퍼컴퓨터는 병렬계산 방식을 쓴다. HR4 8000개, HR5 17만 개의 코어 중 슈퍼컴퓨터를 돌리다보면 코어 중 잘못 되는 게 있다. 고장 나면 계산이 안 된다. 한 개가 계산을 못하면 다른 코어들도 계산 수행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장 나면 시스템을 안전하게 죽여야 한다. 그러니 박 교수가 시뮬레이션하는 동안에 연구원 두 명이 밤샘 근무를 해야 했다. 이재현 박사(KIAS연구원)과 김용휘 박사(KISTI 선임연구원)가 고생했다.
HR5는 KISTI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을 2018년 3개월, 2019년 삼 개월씩 사용하여 진행했다. 처음 3개월에는 우주 나이 30억 년까지의 계산을 했다. 그리고 중간에 시간을 갖고 그 다음 시뮬레이션을 돌려 100억 년까지 계산 결과를 얻어냈다. 현재 우주 나이는 138억 년이라고 본다.
KISTI시뮬레이션이 끝나 데이터를 얻어냈을 때 그걸 KIAS로 갖고 와서 분석 작업을 했다. 고등과학원 내에는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가 있다. 김주한 연구교수가 이 작업을 수행했다.
제5원소론 논문에 대한 반응
박 교수는 제5원소론 논문에 대해 "우주론의 근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연구다. 하지만 한 연구자의 연구 내용으로 확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 그룹은 SDSS, 즉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 데이터를 갖고 분석한 거다. 추가적인 연구가 잇따라야 하고, 실제로 DESI라는 후속 은하적색이동탐사가 진행 중이다.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는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주도하여 남반구와 북반구 해서 두 대의 망원경을 갖고 수행 중이고, 우주 팽창의 역사와 암흑에너지 물리학 연구가 목표다.(북반구는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메이올 망원경이고, 남반구는 칠레의 블랑코 망원경이다. 각각 직경 4미터 크기다. 반면에 SDSS 관측 망원경은 2.5미터 크기다.) 구체적으로는, 우주 3분의 1 영역에 있는 3000만 개 은하를 미리 선정, DESI가 관측한 적색 이동 데이터를 갖고 우주의 3차원 지도를 만든다. 박 교수는 "SDSS보다 DESI가 훨씬 큰 서베이이고, 한국에서는 고등과학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이 DESI 회원이다"라고 말했다.
학술지에 우주론 표준모형이 틀렸다는 연구가 자주 나오는 걸까? 박 교수는 "아닐 거다. 직접적으로 물리량을 측정해서 표준 모형이 채택하고 있는 물리량과 다른 측정치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일 거다"라고 말했다. 나는 "지난 10, 20년 간 이런 지적은 없었나?"라고 물었고, 박 교수는 "그렇다. 표준모형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측정치는 없었다"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우주 팽창의 속도를 설명하는 관측치로 허블상수가 있다. 허블상수는 우주배경복사에서 계산한 것과, 주변은하에서 측정한 게 다르다. 어느 게 옳은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허블상수는 우주론학계에서 세계적인 이슈다. 그거에 비하면 이번의 암흑에너지 연구가 더 임팩트가 있다. 우주의 구성 성분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어야 한다는 발견을 한 것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나의 연구가 다른 사람의 연구에 의해 추가 확인되거나, 부정되어야 한다"라면서 "천문학 분야 사람들이 다 보는 학회지에 나왔기에 사람들이 충격이 클 것이고, 반신반의하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알콕-파친스키 테스트는 다른 데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보통 BAO(Baryon acoustic oscillations, 중입자 음향 진동)방법을 쓴다. 박 교수는 "BAO방법은 태생적으로 알콕-파친스키 테스트의 정확도에 도달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의 이번 논문에 대한 세계적인 뜨거운 반응은 아직은 없다. 그의 '제5원소론' 연구의 운명이 궁금하다. 우주론을 뒤흔드는 위대한 발견의 첫 단초가 될 것인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읽을 거리
1. 박창범 교수의 2023년 8월 8일자 APJ 논문 제목은 '적색이동 공간 상관 함수를 사용한 단층 촬영 알콕-파친스키 테스트: 암흑 에너지 상태 방정식 파라미터 w>-1에 대한 증거'(Tomographic Alcock–Paczyński Test with Redshift-Space Correlation Function: Evidence for Dark Energy Equation of State Parameter w>−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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