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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사' 넋 달래주던 이애주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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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사' 넋 달래주던 이애주 선생 별세

[부고]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이자 '민주화 열사'의 넋을 달래주던 이애주 선생(서울대 명예교수)이 10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74세.

유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암 진단을 받은 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오는 11일부터 가능하다.

1947년생인 고인은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췄다. 서울교동초등학교, 창덕여중고를 나와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 1969년 한영숙에게 승무를 사사(師事)받았다. 한영숙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 말기의 판소리 고수이자 민속무용가인 한성준의 손녀로, 정통 승무는 한성준에서 한영숙을 거쳐 이애주로 이어졌다.

고인은 1970년대 대학가 민중문화운동 첫 세대로, 연출가 임진택이 그의 제부다. 일제의 용어인 '무용'보다 '춤'을 사용했으며, 춤 공연을 '판'이나 '마당'으로 썼다. 1977년 김민기·김석만·이상우 등이 활약하던 연우무대의 개관공연에서 사물놀이의 이광수·김덕수 등의 연주에 맞춰 '바람맞이' 춤을 추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일명 '시국춤'으로 이름을 떨쳤다. 1987년 6월 27일 민주화 대행진 출정식 때 서울대 후배들의 요청으로 무명옷을 입고 '진혼굿'을 펼쳤다. 열흘 뒤 반정부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한풀이춤'을 추며 온몸으로 넋을 기렸다.

"그때 춘 춤은 '시국춤'이 아니라 경기도당굿거리 중 진혼굿입니다. 춤은 어디서라도 출 수 있는 것이고 예술의 본질 자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지어서는 안 되지요. 제 춤의 기본 춤사위는 마땅히 승무에서 우러납니다."(<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현암사 펴냄

(이애주 명예교수 인터뷰 바로가기 '민중춤꾼' 이애주, 국립극장 '블랙리스트' 오른 이유)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 ⓒ경기문화의전당

△ 1982∼2013년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 2019년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 1972년 국민훈장 목련장 △ 1974년 땅끝 춤판 공연 △ 1977∼1981년 전통춤 해외 순회공연 △ 1984년 춤패 신 창단 △ 1984년 나눔 굿 공연 △ 1984년 도라지꽃 공연 △ 1987년 바람맞이 공연 △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 △ 2003년 만해대상(예술부문) △ 2013년 옥조근정훈장 대통령상 △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빈소: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연건) 3층 1호실

발인:5/13(목)

조문:5/11(화) 오후부터 가능

장지: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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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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