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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를 위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 "수술은 끝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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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트랜스젠더를 위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 "수술은 끝이 아니니까"

[인터뷰]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②

치킨이랑 떡볶이, 술을 좋아한다. 가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상담해준다. 예전에 겪은 재밌는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깔깔거린다. 직업은 수학 강사.

코로나 전까지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친구가 많은 편이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했다. 때때로 남자친구와 여행도 다녔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살이 쪄서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의 운영자, 이예나 씨 얘기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진다.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다 2019년, "출생신고는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시작번호) 1로 했지만, 사망신고는 2로 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태국에 다녀왔다.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마치며 국가가 인정한 '여성'이 됐다. 그리고 직업을 잃었다. 꽤 잘나가는 강사였지만, '원래 남자였던 여자'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나.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었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일상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나.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이 '별반 다를 거 없네',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사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수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 안 그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여곡절 있는 인생이지만, 그런 제가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걸."

지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 날에 맞춰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정한 성별에 따라 공개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새 규정을 발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과 공동체의 성과와 회복력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변희수 하사는 군복무를 거부당했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프레시안>이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 씨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고민은 멀고 해야만 하는 일은 막막하다. 온몸으로 부딪쳐 이뤄낸 성취의 순간도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오늘도 그걸 배워간다. 종종 내 선택이 아닌 일들의 결과를 책임지고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면서.

[인터뷰] ① 바로가기 :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트랜지션, 여자로 몸을 바꿨는데 별반 다를 게 없네?"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몸 바꾸기 보다 더 중요한 것

프레시안 : '사회적 트랜지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내가 변하고, 내가 맺은 관계가 변하고, 변한 모습으로 사회에 자리잡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예나 : 우선은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일 거다.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야. 남자로 관계를 맺었지만, 앞으로 이렇게 변할 거야"

프레시안 : 어차피 성별 바뀌고 신분도 달라지는데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낄 거 같다.

이예나 : 가끔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치고 완전히 새 인생을 살겠다며 지금의 삶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본다.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할 수 있나. 과거의 나도 난데. 트랜지션 과정도 소중한 경험이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고 인연 끊고 하는 게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만 결국 자기한테도 상처다.

극단적인 사례인데 40대에 들어 성확정수술을 마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남성으로 살면서 결혼도 했었다. 결국 트랜지션을 결심하고 당시 아내에게 고백했다. 결혼생활을 다 정리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했다.

이런 게 사회적 트랜지션의 첫 단계 아닌가 싶다. 물론 정체성을 속이고 결혼까지 하는 건 큰 잘못이다.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 몸만 바꾸는 게 아니라 주변에 그걸 설명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거다.

프레시안 : 이전의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 맺는 것.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이예나 : 그리고 중요한 게 '커리어'. 변한 후에 돌아올 자리를 미리 닦아놓아야 한다. 학교가 됐든 회사가 됐든 돌아가는 것.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이게 돼야 먹고 산다.

성확정수술을 하고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건 중요한 목표다. 사회적 트랜지션의 완성은 수술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상담하는 아이들에게 꼭 얘기해준다. "수술은 골인이 아니다."

성별 정정만 완료하면 꽃길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성별 정정 후에 펼쳐지는 건 '돈 없고 나이 먹고 경력 없는' 현실이다.

프레시안 : 성별 정정만을 목표로 두지 말란 뜻인가.

이예나 : 법적 성별 정정 후에 '번아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 목표만 쳐다보면서 살았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이제 어떻게 살지" 싶은 거다.

사소한 거라도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두라고 하고 싶다.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 하다못해 게임 캐릭터라도.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질 못한다.

종합하자면 '사회적 트랜지션'은 여러 가지를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맺은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고, 변한 후에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정리하는 거다.

프레시안 : '커리어', '돌아갈 자리'를 강조한다. 그냥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예나 : 사회적 트랜지션이 정말 어려운 이유다. 일단은 한국에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내가 본 많은 경우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사람도 결국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성확정수술도 모두 끝내서 겉모습은 여성이다. 동료와 상사 모두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못했다. 성별 정정이 품위유지위반인가, 그런 거에 걸린다고 했다.

"예쁜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고 싶다…외모는 '갑옷'"

프레시안 : 의료적 트랜지션보다 사회적 트랜지션이 훨씬 어렵게 들린다. 돌아갈 자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건 뭔가.

이예나 : 앞에서 '사회에 녹아든다'고 설명했는데, 결국 외모가 제일 중요해진다. 어쩔 수 없더라. 사람들이 보기에 외모가 '여성스러우면' 자리 잡기가 쉽다. 외모가 성별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성확정수술 전에 외모부터 갖추라는 건가.

이예나 :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 누군가의 성기를 확인하고 성별을 판단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한 성별화된 기준이 분명히 있다. 사회에 녹아들려면 이 기준을 무시할 수 없다.

직장의 남성 동료, 상사, 아무나 떠올려 봐라. 그 사람이 한두 달 뒤에 "나 사실 여자야"라고 커밍아웃한다면 어떨 거 같나. 수술도 다 했다고 한다면? 존중해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무턱대고 성확정수술부터 한다고 해보자. 키는 180이 넘고 근육질에 수염자국이 가득하다면? 사람들이 보기엔 남성인데 자기는 여성이라고 한다. "나는 여성이다"라고 주장한다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건 분명 아니지 않나. 결국엔 당사자만 더 상처받는다. 주민등록번호도 바꾸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남성으로 대하니까.

내 경험상 세상 사람들은 바로 성확정수술부터 한 사람보다 성확정수술은 안 했어도,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을 더 여성으로 생각한다. 수술하고 성별 정정하는 게 다 사회에 녹아들려고 하는 건데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프레시안 : 사회적 트랜지션의 조건은 외모라는 뜻인가.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형수술해서 예뻐져야 한다는 말 같다.

이예나 : 트랜스젠더 여성은 성형수술을 꼭 해야 하고, 반드시 예뻐야 하냐고 물어보는 건가.

예뻐야 여성이고,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건 절대, 절대 아니다. 사회가 여성의 외모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게 여성의 삶을 힘들게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것도 안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외모는 '갑옷'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템'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예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여성'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네가 왜 여성이냐"라고 묻고 내가 왜 여성인지 증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외모를 강요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세상이 바뀌어야겠지만 당장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으니까. 어떤 기준이 있다면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그걸 맞추는 거다.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다.

꼭 해주고 싶은 말

프레시안 : 예전에 "트랜스젠더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이기만 한 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이예나 : 트랜스젠더인 지인들을 만나면 함께 하는 말이 있다. "인생 최대 업적이 성별 정정인 채로 살지 말자"라고. 무슨 말이냐면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이 나를 표현하는 1번으로 두지 말라는 거다. '눈 밑에 점이 있다', '영어를 잘 한다', 그런 것처럼 정체성도 내가 가진 개성 중 하나가 되게 하는 거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다.

트랜지션 중에는 많은 것이 변한다. 인간 관계의 변화가 정말 크게 느껴질 거다.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라는 거다.

프레시안 :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과정인 거 같다. 아까 몸만 바꾸는 게 아니라 주변에 그걸 설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일이 나를 설명하는 거 자체가 피곤하고 힘든 일인 거 같다.

이예나 :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한 건 상처받지 말라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상처를 극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려운 이야기인데, 트랜지션 과정이 길고 힘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내가 트랜스젠더인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거다. 법적 성별 정정을 모두 마치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내 모습이 변해가면서 친구들이 적대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게 꼭 내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일까. 평소부터 내가 싫었을 수도 있고 내가 커밍아웃하는 과정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모든 인간 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싸우고 인연이 끊길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 나의 모든 문제, 나쁜 상황의 탓을 '트랜스젠더'로 돌리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니까.

프레시안 : 나쁜 말을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떠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

이예나 :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직업 좋고 잘나가면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고, 망하면 다 떠난다고. 트랜스젠더도 똑같다. 내가 잘나면 된다.

실력으로 커버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말라는 말이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 남자 모습으로 '난 여자야, 여자가 될 거야. 빌어먹을 세상, 웅얼웅얼…' 이러고 있으면 결국 내 손해다.

인생은 길고 시간은 소중하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하고 싶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멋있는 법이다. 누구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체성보다 중요한 가치는 많다.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것, 정보의 계승

프레시안 : 수술 후에 법적 성별 정정 과정은 어떤가. 복잡할 거 같다.

이예나 : 복잡한 것보다는 정보가 계승되지 않는 게 큰 문제다.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 바닥을 뜨'니까. 검색해서 나오는 건 준비해야 하는 서류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서류가 아니라 과정이다.

예를 들어, 준비해야 하는 서류 중에 '의사확인서'가 있다. 이 서류는 수술한 태국 병원에서 발급해준 거랑 한국의 산부인과에서 진단받은 게 필요하다. 나한테 물어본 사람 중에 "산부인과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었고, "태국에서 받은 확인서는 영어인데 번역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마다 막히는 부분, 모르는 부분이 다 다르다.

혹은 "보험 만료가 언제인데 성별 정정 시기랑 겹쳐도 괜찮을까", "어느 법원에서 정정하는 게 빠를까" 이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런 정보가 모이는 창구가 없다.

그리고 성별 정정 자체보다는 성별 정정 후 그동안 가진 걸 다 바꾸는 게 힘들다. 개명은 잘 돼있는데 주민등록번호는 잘 안 돼있다. 나는 주식 계좌도 아직 못 바꿨다. 바꾸려면 직접 가야 한다. 특히 카카오톡.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다 다르다. 하나씩 바꿔야 하는데 또 통신사마다 방법이 다르다.

프레시안 : 법적 성별 정정 후에 달라진 게 있나.

이예나 : 주변 사람들의 태도 보다는 내가 달라진다.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당당해진다.

예전에 여성인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숙소의 샤워실이 공용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 성형 수술까지는 했는데 성확정수술은 하기 전이었다.

친구들은 날 여성으로 대했지만 내가 여탕에서 같이 씻을 수는 없지 않나. 애들은 '뭐 어떠냐' 했는데 내가 안 괜찮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 따로 씻거나 안 씻었다. 성확정수술을 마치고 나면 그런 게 없어져서 편하다. 사람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한국 사회가 보수적이지 않나.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 심하다. 그런데 성확정수술을 마친 사람은 금방 받아들인다. 외국에서는 보통 트랜스젠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술을 해도 싫어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할게' 이런 반응이다.

프레시안 : 상담을 많이 하던데 이유가 있나.

이예나 : 정보를 계승해주고 싶다. 한국은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사람도 적은데 그 사람들 대부분 드러내지 않고 산다. 어떤 사람이 트랜지션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정보가 되어 다음에 트랜지션 중인 사람에게 전해지고. 이런 식으로 정보가 누적돼서 계승돼야 하는데 성확정수술 끝나고 성별 정정 끝나면 다 사라진다.

두 번째는 트랜스젠더 여성 당사자보다 그 부모를 위해서다.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트랜스젠더를 인정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나에게 상담하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얘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입시 학원의 강사이기도 하다.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하는 게 원래 내 일이다. 게다가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법적 성별 정정도 마쳤다. 상담하기 딱 좋지 않나.

프레시안 : 상담하는 아이들은 어떤가. 요즘은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돼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관련된 정보를 구하는 게 예전보다 쉬울 것 같다.

이예나 :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안 해서 어떤지는 잘 모른다. 인터넷이 있다는 거 자체가 큰 차이일 거 같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발품 팔고 알음알음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성인이 돼야 한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보를 찾고 인생계획을 세워 놓는다. 20살 되면 뭐부터 하고 돈은 이렇게 모으고 어떻게 달려야겠다, 이게 있다. 제일 부러운 건 군대 거의 안 가는 거.

그리고 요즘 애들이 다르다고 느낀 건, 뭐가 많아졌다.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퀘스처너리 등등.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해 못 하는 부분도 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건 아니니까.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중요한 건 '먹고 살기'

프레시안 : 성별 정정 이후의 삶은 어떤가. 마냥 꽃길은 아니라고 했다.

이예나 :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니까. 하던 분야에 복귀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대부분 성별 정정을 하고 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힘들다. 한순간에 확 내려앉는 경우도 많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든가,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 국비 지원 학원 다녀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원래 직업을 살리는 건 힘들다는 거. 이런 거 때문에 성별 정정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졌다면 성별 정정을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을까. 전문직도 그렇고. 의사인 경우엔 커밍아웃부터 별문제가 없었다. 의사들은 성별불일치에 대해 배우니까 '트랜스젠더 여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아니라 '성별불일치는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다. 그 사람은 교수가 나서서 부모를 설득했다.

커리어가 능력을 증명해주는 분야도 복귀가 수월한 편이다. 어떤 사람은 디자이너인데 성별 정정하고 다니던 회사에 복직했다. 공직은 좀 다르다.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하면 살아갈 길은 많다. 살기 팍팍하겠지만 성별 정정 안 하는 거보다 사는 게 쉽다. 성별 정정을 안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말 힘들다.

프레시안 : 유흥업소에서 많이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도 그렇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이야기 속에는 유흥업소가 많이 등장했다.

이예나 : 미디어라는 특성이 있지 않나. 전체 트랜스젠더 여성 중에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말하고 싶다. 우스갯소리 하자면 일한다고 다 써주는 곳도 아니다. 외모가 필요한 직업이고, 말도 잘 해야하고, 성격도 당차야 한다.

예전엔 아무래도 정보를 얻을 곳이 그런 곳이었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드러내고 모인 곳이 유흥업소밖에 없었다. 아까 말했던 의사, 디자이너, 트레이너,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프레시안 : 드러내지 않고 사는 건 어떤 건가.

이예나 :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삶이다. 여성으로 사는 거.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무리 평생을 여성 정체성으로 살아왔다 해도, 여성사회에 들어가서 여성으로 사회화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겪어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 걸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게 크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게 있다. 물론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면 정체성을 밝혀야 하지만 굳이 직장을 다니면서 정체성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우선 목소리 신경 쓰고 목젖 안 보이게 노력하는 거. 목젖은 수술로도 안 되는 부분이라 정말 난감하다. 어떤 사람은 회식 때, 다 같이 마실 때만 마신다. 무조건 원샷. 남겼다가 '밑잔 마셔라' 이럴까 봐.

생리 관련한 정보도 알아둔다. 생리 주기 앱을 설치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떤 사람은, 가끔 여학생들이 생리 관련한 걸 물어볼 때를 대비한다고 한다. '선생님은 얼마나 아프세요', '선생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진통제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프레시안 : 아우팅 당하는 경우도 있나.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예나 : 의료적 트랜지션 중에는 겉모습이 변하니까 두려움이 있다. 내가 밝히지 않아도 트랜스젠더라는 게 알려지고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학생이면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할 수도 있고.

법적 성별 정정을 마쳤다면 크게 의심을 사는 일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트랜스젠더일 거다'라는 생각을 잘 안 한다. 키가 크면 '키 큰 여자구나', 덩치 크면 '덩치 큰 여자구나', 목소리가 허스키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말지 않나. 두 사람을 놓고 "누가 트랜스젠더인지 맞혀봐"라고 하면 맞힐 수 있겠지만. 눈에 띄지 않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걱정하는 건 새로운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보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새 삶을 살고 싶은데 그 연결고리가 어디서든 나타나는 거. 지운다고 지웠지만 자기도 모르게 남긴 흔적이 있는 거.

그런 걱정 때문에 많이 전전긍긍한다. 매일 전화하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 걸리면 어떡해" 이러면서. 그럼 "아니라고 해"라고 말해준다. 아니라고 하면 끝이지 뭐. 알 방법도 없다. 초본을 떼 볼 건가, 유전자 검사를 할 건가. 어떤 남성들은 "성관계해보면 다 안다"라고 하는데, 트랜스젠더 여성을 만나 본 적도 없을 거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나.

이예나 : 지금은 유튜브 채널로 알려졌지만 수학 강사이기도 하다. 강의를 계속 하고 싶다. 얼굴이 알려져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 자리를 구했는데, 트랜스젠더라는 게 알려져서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학원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더니 십자가로 막 때렸다. 그래서 결국 엎어지고, 학원을 직접 내려고 했다. 작년 2월에 개원할 예정이었는데 2019년 9월에 내가 안 좋은 일로 날아갔다. 인터넷 강의하던 것도 날아가고 개원 계획도 엎어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하고 싶다.

프레시안 : 많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고 했다. 자신을 드러낸 이유가 있나.

이예나 : 나는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다. 접근 방법이 좀 다른 거 같다.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는 것보다는 내 삶을 보여주는 게 좋은 거 같다. 그게 최고의 설득이라 생각한다.

내 유튜브 채널 콘텐츠 중에 '쌀혼자산다'라는 브이로그 시리즈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시작했다. "트랜스젠더지만 다르지 않아요!", "똑같이 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전에 남자친구와 여행가는 내용으로 '내 여자친구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랑 데이트하는 건 어떨까 궁금해서 봤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사 먹고 투닥거리고. 보는 사람들도 '똑같네?', '별거 없네'라고 느끼게.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삶을 계속 보여줄 거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실수한 적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방송을 쉬게 됐을 때 유흥업소 쪽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다 거절했다. 그저 앞으로는 안 그런 거, 열심히 사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싶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롤모델이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노년이 어떤지 모른다. 유명한 사람이 하리수 정도인데 하리수도 40대다. 70대, 80대까지 늙어가는 삶이 있어야 한다. 그런 걸 하고 싶다.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내 삶이 우여곡절이 많은 게 잘 됐다 싶기도. <끝>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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