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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션, 여자로 몸을 바꿨는데 별반 다를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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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션, 여자로 몸을 바꿨는데 별반 다를 게 없네?"

[인터뷰]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① 어렸을 때

치킨이랑 떡볶이, 술을 좋아한다. 가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상담해준다. 예전에 겪은 재밌는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깔깔거린다. 직업은 수학 강사.

코로나 전까지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친구가 많은 편이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했다. 때때로 남자친구와 여행도 다녔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살이 쪄서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의 운영자, 이예나 씨 얘기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진다.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다 2019년, "출생신고는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시작번호) 1로 했지만, 사망신고는 2로 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태국에 다녀왔다.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마치며 국가가 인정한 '여성'이 됐다. 그리고 직업을 잃었다. 꽤 잘나가는 강사였지만, '원래 남자였던 여자'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나.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었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일상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나.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이 '별반 다를 거 없네',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사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수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 안 그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여곡절 있는 인생이지만, 그런 제가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걸."

지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 날에 맞춰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정한 성별에 따라 공개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새 규정을 발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과 공동체의 성과와 회복력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변희수 하사는 군복무를 거부당했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프레시안>은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 씨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고민은 멀고 해야만 하는 일은 막막하다. 온몸으로 부딪쳐 이뤄낸 성취의 순간도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오늘도 그걸 배워간다. 종종 내 선택이 아닌 일들의 결과를 책임지고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면서.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이 얘기를 꼭 해야 할 거 같다.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왜곡 인터뷰를 당했다고 했다.

이예나 : 그런 식으로 당했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었지만 내가 직접 당한 건 처음이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 트랜지션 과정, 이런 걸 이야기하자 해서 응했다. 정작 방송에는 내가 한 말의 앞뒤가 다 잘리고 내가 마치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매매는 당연한 거니까 이해해달라"고 말한 것처럼 나왔다. 너무 화가 났다.

나 같은 트랜스젠더 여성도 그렇고 아마 모든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그럴 거다.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 정말 조심스럽다. 내가 한 이야기가 트랜스젠더 여성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래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답한다. 언론이 그런 식으로 기만하는 게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고 충격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변희수

프레시안 : 고(故) 변희수 전 육군하사를 추모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전까지 무거운 주제를 꺼낸 적 없던 거 같은데 이유가 있나.

이예나 : 변 전 하사의 비보가 처음 전해졌을 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변 전 하사의 이름이 올라갔다. 기사도 많이 나오고. 그런데 욕설이 가득했다. 기사는 쏟아져 나오는데 욕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지난해 변 전 하사가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다시 군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군 조직이 그랬다. 불합리하고 꽉 막히고.

그런데 변 전 하사는 일방적으로 수술한 게 아니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성별불일치' 진단을 받고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수술을 결정했다.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했고 수술을 결심했을 때는 상부에도 보고했다. 여단장·군단장까지 이를 승인하고 응원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여단장까지 나서서 수술받으러 갔다 와도 된다는 데, 수술 잘 받고 오라는 데 당연히 가지 않겠나. 그런데 갔다 오니까 나가라고 했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을 거다.

프레시안 : 많은 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 군은 논의조차 없었다는 데에 비판이 있었다.

이예나 : 어떤 사람들은 변 전 하사가 군법상 문제가 될 거란 걸 알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알았다 한들 사람의 삶이라는 게 '문제될 거 알았으니 다 감수할 수 있어', '문제될 거 알았으니 무슨 일이든 다 감수해', 이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것, 군인이고 싶은 것, 조직과 상사를 믿은 것.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누구에게 피해를 준 건가. 군인이면 충성심 있고 잘 싸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나는 군대에 다녀왔고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일로 군에 실망했다.

변 전 하사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고를 떠나서, 그가 겪은 일련의 과정들은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에 많이 힘들었을 거다. 23살밖에 안 됐는데.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욕으로 가득 찬 글들을 보니까 새삼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다. 세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라도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 혼자 아니다, 고생했다'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변 전 하사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슬픔을 드러내고 변 전 하사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추모 영상을 올리면서 댓글창을 열어놓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거기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트랜스젠더, 내가 그거였다."

프레시안 :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정도에 비해 '성소수자의 청소년기'는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의 청소년기는 어땠나.

이예나 : 글쎄다. 특별할 게 없었다. '순응하고 살아온 10대'라고 하고 싶다. 조용하고 평범하고, 친한 친구들 무리가 있었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나는 그렇게 막,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사회적으로 흔히 말하는 '여성스럽다'고 할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축구.

그런데 실체를 모르는 그런 게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거. 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처음 교복을 입는데 그게 그냥 싫었다. 내가 여성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싫었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프레시안 : 학교는 성별 이분법이 강력한 공간이다. 교복도 그렇고 '남학교', '여학교' 이렇게 나뉘어있다. 성별로 갈려서 또래문화를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는 의미인가.

이예나 : 나는 1985년생인데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조차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내가 게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게이인 분들에게 죄송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게이라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억에 남는 게, 꿈속에서 항상 내가 여자였다는 거다. 드레스 입고 남자를 만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여자였다.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무의식적으로 여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 같다. 그럼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이예나 : 연예인 하리수였다. 하리수가 미디어에 등장한 게 200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에 공중파 9시뉴스에서 크게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됐다. 언론이나 예능이나 할 것 없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설명을 듣는데 꼭 내 얘기 같았다.

물론 그 당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때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웠다', '여자 옷을 좋아했다', '인형을 좋아했다', 이렇게 묘사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그랬을 거다.

그런 부분만 빼면 나머지는 내 얘기 같았다. '아, 내가 저거구나'하고 그때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녔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내가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미친 줄 알았다.

프레시안 : 고민이 많았을 거 같다.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정보를 찾기 더 힘들었을 거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없었을 텐데 그런 고민을 나눌만한 친구나 주변 어른들이 있었나.

이예나 :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게 됐지만 아무에게도 말은 못했다.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미디어에서는 매일같이 '트랜스젠더', '하리수' 얘기가 나오는데 지금 기준에선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 인권의식도 많이 부족했고.

어딜 가나 하리수 얘기가 나왔다. 학교도 그랬다. 그런데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않나,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로 그걸 표현한다.

하리수를 두고 하는 이야기들, 성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표현들. 그 말들이 다 나한테 꽂혔다. 나한테 하는 얘기 같았다. 절대 드러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트랜스젠더의 친구? 친구가 그냥 친구지 뭐."

프레시안 :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정체성 이야기는 전혀 안 했나. 유튜브 영상에 종종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출연하던데 그 친구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커밍아웃 했나.

이예나 :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됐을 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연락을 다 끊었었다.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을 하고 법적 성별 정정도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내가 남자였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그러다 한 친구가 결국 나를 찾아냈다. 걔가 내 방송에 가끔 나오는 그 친구다. 나는 새 인생 살겠다고 연락 끊었는데, 친구들은 서울 간 애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많이 걱정했던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부터 "혹시 나쁜 짓 하는 거냐", 계속 추궁해서 결국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는 그때 커밍아웃했다. 그 친구들은 내 트랜지션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요즘도 같이 술 마시면 우스갯소리로 "내 친구 돌려놔라" 이런다.

프레시안 : 트랜지션이나 커밍아웃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항상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던 것 같다. 커밍아웃 후에도 유지된 관계는 새로운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한 노력이 있나. 트랜지션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은 남다를 거 같다.

이예나 : '찐우정'이라고 하지 않나. 정말 친하다. 가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 친구들을 만났던 일상을 브이로그로 올리기도 했다. 트랜스젠더의 친구라거나 트랜스젠더와의 우정이라고 특이하고 남다르진 않은 것 같다.

그중 한 명이 곧 결혼한다. 예비신부와 만남을 내가 주선했다. 예비신부가 해준 얘긴데, 친구들이 "신랑 어떻게 만났어?"라고 물어보면 "응, 아는 언니 불X 친구"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 반대로 관계가 단절됐다가 트랜지션 후에 이어진 친구도 있나.

이예나 : 중학교 때 친구들은 그때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못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한 명이 결혼하면서 연락이 닿았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연락을 했다. 신기했던 게, 그 친구가 "얘들아, 옛날에 연락 끊었던 ○○이가 다시 만나고 싶대. 우리한테 많이 미안해하고 있대" 그러니까 한 애가 갑자기 "왜? 걔 여자 됐어?", 이랬다는 거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럴 거 같았다고 하더라. 촉이 좀 있었나 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는 그렇게 연락이 닿아서 잘 지내고 있다.

프레시안 : 전자공학 전공이라고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훨씬 전에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그런 방향으로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이예나 : 특별히 없었다. 진로 고민도 특별히 안 했다. 점수 맞춰 갔다.

사실 대학에 큰 뜻이 없었다. 다니다가 그만둘 생각도 있었다. 나는 군대도 갔다 왔는데, 남자로 살아보려고 간 거였다. 남자로 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대학교 3학년쯤까지 그런 거 같다.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잘 모르는 어른들이 그런 말 하지 않나. '어려서 헷갈리는 거다', '군대 갔다 오면 괜찮을 거다.' 그런 말들을 접하다 보니까 나 스스로도 의심이 됐다. 내가 착각하는 건가 싶었다. 그냥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남자인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노력했다. 나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는데 결국 안 되겠더라. 남자로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다.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되면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됐다.

▲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한 거 같다.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성격을 가진 남성,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여성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 여성'. 다 다른 건 알겠는데 그 사이에서 고민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땠나. 구별하는 기준이 있나.

이예나 :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고 전문적인 상담도 꼭 받아야 한다.

성확정수술 후에 후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이다. 단편적으로 '나 여자 옷이 좋아! 트랜스젠더인가? 수술해야지!' 이런 거다. 그런데 여성인 게 아니라 그냥 여자 옷을 좋아하는 남성이었던 거다.

또는 '나는 남자가 좋아! 나는 끼순이야! 그럼 여자인가보다! 수술해야겠다!' 근데 애교 많은 남성인 거다. 수술 다 하고 나서야 '나는 여성이 아니라 그냥 그런 성격의 남성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면 말 그대로 '미친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자기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어서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거다. 다 똑같은 헬조선이고 먹고 살기 팍팍하고. 트랜지션이 너무 몸 변화, 의료적 트랜지션만 조명되니까 사회적인 걸 많이 놓친다.

트랜지션, '몸을 바꾸다' 그리고

프레시안 : '트랜지션'에 대해 설명해달라. 트랜지션이 뭔지 궁금해하는 시스젠더(비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제가 트랜스젠더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이예나 : '의료적 트랜지션'과 '사회적 트랜지션'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싶다. 의료적 트랜지션은 흔히 알고 있는 호르몬치료 받고, 성확정수술 받고, 몸을 바꾸는 거다.

물론 미디어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설명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너무 자극적이고 단선적이다. 마치 '어디까지 의료적 조치를 받으면 몇 퍼센트 여자 완성!' 이런 식이다. 그런 관점은 위험하다.

사회적 트랜지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의료적 트랜지션이 몸이 변하는 과정이라면 사회적 트랜지션은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나를 드러내고, 내 몸이 변하고, 내가 맺어온 관계가 변하는 과정. 그리고 변한 모습으로 사회에 자리잡아 살아가는 과정.

프레시안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뭐가 다른가. 몸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 아닌가.

이예나 : 커밍아웃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다른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가진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점을 분명히하고 시작해야겠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커밍아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예 숨기고 남성으로 살아간다면 모를까,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면 변화가 겉으로 드러난다.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면 사람이 가진 느낌이 달라진다. 몸의 선이라고 해야 할까, 체취나 아우라? 뭐가 됐든 그런 전반적인 느낌이 달라진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트랜지션을 시작하면 그거 자체가 커밍아웃이라는 의미 같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라면 철저히 숨기고 살다가 어느 날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 사실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고백하는 걸 상상했다.

이예나 : 성소수자라고 다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니까.

(의료적) 트랜지션,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여성 정체성, 모두 다 다른 개념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다. '트랜스젠더 여성' 정체성에 의료적 트랜지션이 필요한지 여부도 의견이 다양하다.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개인적으로 나는 커밍아웃은 그저 '출발선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트랜지션의 출발선. 커밍아웃을 못하면 시작을 못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요즘 아이들을 보면, 커밍아웃 고민을 이른 나이에 한다. 청소년기에 몸이 많이 변하니까. 이 시기에 몸에 생기는 '남성적인 특징'은 없애기 힘들다. 남성호르몬은 일찍 억제하는 게 좋다. 그런데 청소년이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려면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다.

"어머님 아버님, 그냥 받아 들이세요."

프레시안 :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해야 사회적 트랜지션도 할 수 있고, 그러려면 빨리 커밍아웃해야 하는 거 같다. 그런데 예전에 유튜브 방송에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예나 : 그건 좀 설명이 필요하다. 무조건 '언제 해라', '하지 말아라' 이런 건 없다. 그때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 건 커밍아웃을 고민했던 사람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는, 청소년기에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일찍 시작하는 거다. 10대 시절에 상담과 호르몬치료를 받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성확정수술을 하는 거. 그런데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일단 부모가 빨리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문제다.

프레시안 : 부모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다는 거 자체가 상상이 안 된다.

이예나 : 커밍아웃하고 더 안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부분 사이가 틀어진다. 부모 자식 간 인연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아이가 집을 나가는 데 부모가 끝까지 찾아다니는 거다. 한국은 부모가 원하면 집 주소를 알려준다. 아이는 집 나가서 어떻게든 자기가 돈 벌어서 수술하려고 하는데 부모는 아이가 어디에 있든 어떻게든 찾아낸다. 끌고 와서 집안에 가둬놓고 어떻게든 '고치려' 하는 거다.

그런데 그건 고쳐지는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과학계와 의료계가 이걸 정신병으로 놓고 고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몸 바꿔 주는 게 최고다' 이거다.

그걸 꼭 말하고 싶다.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거. 그건 병이 아니다. 잠깐 헷갈리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쁜 애들'과 어울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가 상담을 올 때마다 항상 말한다. "빨리 받아들여야 아이가 살아갈 수 있다."

프레시안 : 종합하면 '부모가 받아들인다는 확신만 있으면 빨리 커밍아웃하는 게 좋다'는 말 같다. 그냥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이예나 : 가장 안전한 건 수술비 다 모으고, 혹은 수술 다 마치고 커밍아웃하는 거다. 수술하고 커밍아웃해서 실패한 경우는 못 봤다.

내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친가 외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보수적인 종교의 신자들은 "성소수자를 반대한다"고 한다. 내 가족,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수술하고 성별 정정까지 마치고 나타났을 때 많이 놀랐지만 결국엔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수자를 인정한다', 이렇게까지 변하진 않았다. "너는 여자니까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동성애가 아니다"라고 한다. 어쨌든 나한테는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니까.

대신 그러면 늦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돈 벌어도 빨라야 20대 중후반이다. 나는 대학교 다니면서 중간에 군대도 갔다 왔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해서 돈 모으고 수술한 게 30대였다. 이전까지 해온 것, 쌓아온 커리어, 직장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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