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화제를 모았던 경제 석학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코로나19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시장주의 우파, 미디어들의 대응 방식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과 닮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타조가 위협을 느끼고 머리를 풀숲에 쳐박듯, 바이러스 위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부정하기(denial)'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를 '좀비 아이디어(zombie ideas)'에 비유한다. 이를테면 '부자 감세'의 경우 부자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식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들이 무수한데도, '부자 감세' 이론은 죽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주로 '감세 정책'을 맹신하는 시장주의 우파)의 뇌를 갉아먹으며 비틀비틀 걸어다닌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글에서 '좀비 아이디어'에 대한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코로나19는, 모든 '좀비'들을 떠올리게 한다. 왜 바이러스에 대한 부정은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과 닮았을까(Covid-19 Brings Out All the Usual Zombies. Why virus denial resembles climate denial.)"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정책과 기후위기 정책을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감염병 역학자들의 과학적인 노력이 정치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이, '기후 위기'를 연구하고 증거를 제시해 온 기후학자들이 수십년간 공격받아왔던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보는 미국 '우파'들의 반응이 기후 위기를 보는 반응과 똑같다는 것이다. 바로 '부정하기'다.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도 '대수롭지 않다', '기후위기는 없다', '바이러스는 감기와 같은 것일 뿐'이라며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이 아니라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좀비 아이디어'가 성행하는 이유로 금융 자본의 '사적 이윤 추구' 행태를 지적한다. 세금 감면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한정된 부자들이다. 이들은 '화석 연료'에 기반한 산업을 유지하고자 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들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작가인 업튼 싱클레어의 말을 인용한다. "어떤 사람에게 뭔가를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이 받는 봉급이 그 '이해 못할 것'에서 나오고 있다면."
크루그먼 교수는 기후 변화의 결과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 우리는 기후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우파'들이 '바이러스 부정하기'를 한지 불과 몇주 만에 치명적인 결과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이같은 '좀비 아이디어들'이 방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의 '보수 우파'들을 비판하면서 전문가들을 '경멸'하고 과학적 방식보다는 '종교적 보수주의'를 고수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부자 감세'가 효과 없다는 증거나, 기후 위기가 닥쳤다는 증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전파의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부정'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좀비 아이디어들'을 믿는 보수 우파들은 '국가의 시장 개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싫어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국가의 시장 개입 정책이 어떤 지역에서 효과를 볼 경우, 유권자들이 '다른 곳에서도 정부 정책이 성공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시장주의적 시각'에 대해 비판적이다. 바이러스 위기나 기후 위기와 같은 새로운 상황이 닥치고 있는데도,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대규모 금융지원 등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고, 국가의 공적 역할을 제한하며, '새로운 위기는 음모'라고 주장하는 것을 '좀비 아이디어'로 보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같은 비판이 적용된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