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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젠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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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젠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논할 때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하며...

"작년 가을에 지어 주신 약 먹고 잘 지냈어요. 감기에 걸려도 병원 안 가고 가볍게 지났고요. 올 해 초등학교 입학인데, 학교에 안가서 아직 별 탈은 없어요. 그래도 걱정도 되고, 봄 되면 오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서 왔어요.”

어린이집 다니면서 감기를 달고 지내 걱정이던 아이가 작년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식사도 이전보다 잘 하고 잔병치레를 덜하니 키도 좀 컸다고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만 만나는 건 아니거든요. 조금 관점을 달리 해서 바라보면 등교는 새로운 환경, 특히 다른 아이들을 둘러싼 미생물에 노출되는 일이기도 해요. 만일 우리가 미생물의 시선에서 본다면, 학기 초는 다양한 미생물군단의 만남일 거예요. 순조롭고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쟁 같을 때도 있겠지요. 그 적응의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과도하게 일어나면 가장 흔하게 걸리는 것이 감기예요. 그러니 평소 잔병치레가 많다면, 생활에서 그 원인 되는 부분을 고쳐주고, 전시戰時는 미리 대비해 주는 게 좋겠죠.”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바이러스나 세균에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항상 그런 존재들과 함께 해 왔습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수보다도 우리가 품고 있는(어쩌면 우리를 품어주고 있는) 미생물 숫자가 훨씬 많다고 하지요. 타인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실 때도,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쉴 때도 우리는 많은 균들에 노출됩니다. 때로는 타인의 균을 공유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인간의 면역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고요.

“뒤뜰로 통하는 너머에 싼 지 얼마 안 된 고양이 똥이 있었다. 그는 그걸 반 스푼 정도 떠내어 식초 두서너 방울, 소금과 함께 플라스크에 넣었다. 또 작업대 밑에서 뤼넬이 식사 때 흘린 것을 보이는 엄지손가락 손톱 크기의 치즈를 찾아냈다 상당히 오래된 것이 틀림없는 그 치즈는 빻기 시작하자마자 쏘는 듯한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또 가게 뒤편에 있던 정어리 통조림 뚜껑에서 생선 비린내가 배어 있는 덩어리를 약간 긁어내어 썩은 달걀, 카스토레움, 암모니아 사향, 윤기를 낸 뿔, 살짝 태운 돼지가죽 등과 함께 곱게 빻았다. 거기다 사향을 좀 듬뿍 넣은 후, 그 재료를 알코올에 섞어 밑으로 가라 앉혔다. 그런 후 내용물을 걸러 다른 병에 옮기자 벌써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마치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썩은 악취 같았다. 부채를 슬쩍 한번 흔들리기만 해도 벌써 뜨거운 여름날의 페르 거리나 이노생 묘지, 혹은 빽빽이 들어찬 건물들이 만나는 랭주리 거리의 모퉁이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체취가 없는 대신 누구보다도 냄새를 잘 맡는 재주를 지닌 소설 속 주인공 그르누이는 위에서 만든 액체에 페퍼민트나 라벤더, 그리고 레몬과 유칼리 등의 향을 더해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에게 발라 보통의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지요.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냄새라는 것이 고양이 똥, 식초, 치즈, 생선 비린내, 그리고 썩은 달걀 같은 향을 품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설의 이야기여서 허구적 측면도 있겠지만,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화장품이나 향수 등을 걷어낸 사람의 냄새는 땀이나 눈물, 소변, 때론 약간의 대변이나 방귀, 그리고 먹은 음식이나 생활하는 공간에서 스며든 냄새와 우리 몸의 분비물을 양식으로 삼은 세균들이 살아가면서 내놓은 분비물의 냄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부에도 입안에도 장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미생물들이 있고,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어떤 집안의 가족력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 집안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미생물군집의 패턴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이러한 미생물들이 인간의 심리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끌리거나 왠지 어떤 사람이 밉다면, 몸의 세포보다 더 많은 숫자의 미생물들 간 화학적 반응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고고한 호모사피엔스가 어쩌면 유전자와 인간을 숙주로 삼은 미생물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단 발칙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그럼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왜 이렇게 난리일까요? 강한 전파력과 높지는 않지만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종’ 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이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최초로 감염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정규모 이상으로 노출된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면역체계는 이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갖추진 못했지요. 학기 초반의 아이들이 노출되는 균은 낯설지만 대충 짐작이 가는 수준이었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미지와의 조우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만남에서 발생하는 병증들에 대처하면서, 면역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해 자연획득면역 상태가 되도록 돕는 치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폐렴과 같은 병증이 악화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이렇게 보면 이번 사태는 아마도 미지의 바이러스를 인류 전체의 면역시스템이 대충 알 것 같은 수준이 되었을 때 마무리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짐작컨대 앞으로 이런 사태는 점점 더 자주 발생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구증가에 따라 인류가 지구상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이것은 곧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에너지와 영역을 인류가 빼앗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되면, 특정한 야생동물과 지역에 잘 봉인되어 그간 만날 일이 없었던 미지의 세균과 바이러스에 인류가 노출될 확률이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또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는 우리의 예상 외로 빠르고 결정적으로 인류를 위협할 확률이 큽니다. 인류는 많은 생물종을 함부로 대하고 지구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무서울 것 없이 살지만, 인류 문명이란 빙하기 사이에 찾아온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의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후학자들의 예측처럼 온난화가 지속되어 먼 옛날 공룡이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던 시절의 기후대가 찾아온다면,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정도로는 절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점은 매우 빨라질 수 있고요.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많은 희생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자초한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생각과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언제고 동일한, 혹은 더 위협적인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겪은 어려움과 고통이 그냥 끝나지 않고, 생물종과 지구온난화과 같은 이야기들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서도 지역개발 공약보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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