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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의 문화산책"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7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열치매 나타난 달이…"
3월 중순, 경주 남산 삼화령을 오르게 되었다. 이곳의 연화좌대를 보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산에서 제일 높은 494미터 높이 고위봉과 금오봉을 잇는 삼각지점의 고개란 위치가 연화좌대를 보러 갈 특별한 명분이었다. 월성 안팎을 연결하는 월정교를 끼고 가서 천관사 터를 지나고 서출지까지 온 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남산의 한 중간쯤 되는 곳, 삼화령까지 가장 완만한 경사의 순환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었다. 새 잎과 진달래가 더러 피어나고 길가에 보이는 밭에는 봄 농사 준비로 흙을 다 갈아엎어 놓은 동네를 통과했다. 마당 담장에 붙어
김유경 언론인
2022.06.18 11:46:09
포석정의 느티나무
포석정은 남산의 서쪽 끝자락에 있다. 포석사라는 사당(祠堂; 제사지내는 곳, 절이 아님)이 있었다고 하는데 돌 수로와 함께 지금은 고사한 당산나무 고목과 얼마전 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올리던 돌 제단도 있지만 경주시대와 연관지을 유적은 아니라 한다. 포석정 수로는 여기 숲 가운데 지표면에 단단한 화강암 돌 63개를 조각해 이었다. 동서 긴축은 10.3미터, 짧은 폭은 4.9미터의 전체 길이 22미터를 돌아나가게 한 전복모양 수로를 통해 흐르는 물길에 술잔을 띄우며 즐기던 신라인의 풍류가 행해진 곳이다. 22센티 폭, 26-
2022.06.06 09:36:32
경주의 상징 '알천'에는 돌 233개가 놓인 징검다리가 있다
현대에 와서 월지에 신라 때와 달라진 것이 생겼다. 신라시대 월지 입수의 근원은 경주 북쪽 알천(북천)의 물이 분황사를 거쳐 월성 주변의 해자를 채우고 월지로도 흘러들었다. 그 후 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며 농경지 등으로 북천의 물줄기가 점점 막혀가고 1975년 북천(알천)이 발원하는 곳에 덕동호가 건설된 뒤에는 자연의 물길이 더 메말라 버렸다. 보조 수단으로 관정을 뚫어서 물을 얻어 제2의 입수구로도 활용했으나 그것도 충분치 못했다. 그 위에 농수로 물에 스며든 비료 성분이 그대로 입수되면서 월지 물이 녹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수
2022.05.28 10:34:05
통일신라 최전성기 기운이 담긴 경주 안압지(월지)
경주 월성 대궐에 딸린 연못 월지(月池)(안압지(雁鴨池))는 문무왕 때인 674년 생겨났다.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기운을 담아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심오한 조경의 정원까지 갖춘 화려한 못이다. 현대에 복원된 4730평 넓이의 연못은 어느 방향에서도 한눈에 전체가 다 조망되지 않아 여기에 지어진 전각의 명칭은 임해전(臨海殿)이다. 효소왕(697), 혜공왕(769), 헌안왕(860), 헌강왕(881) 등이 여기서 봄·가을 신하들과 잔치를 벌였다. 화려한 대궐파티였겠지만, 태평성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신라 말 경순왕은 여기서 고려 태
2022.05.23 10:53:59
15대 심수관 "한국과 일본의 가교로 등대 같은 역할을"
15대 심수관 '한국과 일본의 가교로서 부동의 등대 같은 역할하겠다' 조선 도공의 후손으로 일본 가고시마 미야마에서 사쓰마 도자기를 제작해온 심수관가의 15대 심수관(大迫一輝; 오사코 가즈테루)씨가 18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부친 14대 심수관 추모회에 왔다. 한일협력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 과거 14대 심수관(1926-2019)과 교분을 나눴던 1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15대 심수관은 추모사에서 '한·일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시민'으로 14대에서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현실과 의식의 흐름을 담담하게 전했다. 15
2019.11.30 11:49:59
마지막 본 남원성 삼층탑과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
도공들이 남원성을 떠난 이래 400년이 흘렀다. 1998년 서울에서는 ‘400년 만의 귀향-심수관가 도예전’이 열리고 도공 후손들의 땅 미야마에서는 계속 이어지는 도자기 가마에 남원을 근원으로 한 불을 당기는 작업과 그들 선조가 마지막 본 남원성의 삼층탑을 제막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김유경의 '문화산책' 보기 "당길 조상님의 사발부터 사쓰마 도자기까지 400년간 지내온 일종의 보고서를 고향에 가져와 보이는 것이죠." 전시회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여기 오기 전 일본에서의 전시회도 그랬고 사인하는데 팔이 떨어지는 줄 알
2019.08.03 11:05:23
심수관가의 도자기와 옥산신사
14대 수관, 심혜길은 와세다 대학을 나와 정치인의 의전비서로 일했다. 이 기간 중에 '교육 없이 문화는 없다' 하여 가고시마 산골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대대로 교육을 중시해 한어훈몽(韓語訓蒙) 이라는 한글 책을 통해 '책을 잘 닐럿냐(읽었느냐)' 는 말로 책을 가까이 할 것을 가르쳐 왔다. ☞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1편 바로가기 그가 도업 일을 부친에게서 익혔음에도 가업을 이으라는 말을 안 들으니까 13대의 임종자리에서 일본인 부인 나츠코(夏子) 여사가 보다 못해 '제가 이어 받겠습니다' 했다. 마침내 결
2019.07.13 10:3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