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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닙니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⑩] 김관섭, 그리고 유우성
여든하나, 서른여섯. 45년이란 세월을 사이에 둔 두 남자가 만났습니다. 적잖은 세대 차이에 첫 만남인데도 이들은 서먹함 없이 서로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흘렀습니다.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탈북자입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간첩 의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40년 전 대성공사에서 고문받으며 3년 6개월
서어리 기자
2015.09.06 17:41:51
"간첩이 北 보위사령관 이름도 모릅니까?"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⑨] 2010년대 간첩 조작 피해자 철이 씨
중압합동신문센터 직원들은 언론에 철이 씨의 얘기를 흘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기사는 분명 철이 씨, 자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이라며, 무척 자극적으로 포장돼있었습니다. 당장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철이 씨 가족을 한국에 데려와 주겠다던 약속 또한 거짓일 거란 생각
2015.08.31 07:36:15
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⑧] 2010년대 간첩 조작 피해자 철이 씨
"그땐 조사관이 저한테 '담뱃값을 하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업적을 세우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 했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닐 테고. 그리고 북한에서 있던 일이라 '눈깔(정보원)'이었다고 해도 처벌은 않겠다고 하니…." 2013년 8월, 어렵사리 탈북에 성공해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입소한 철이(가명, 41) 씨. '담뱃값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2015.08.23 13:59:28
담뱃값, 간첩 누명의 대가였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⑦] 2010년대 간첩 조작 피해자 철이 씨
"21세기에 무슨…". 흔히들 하는 얘깁니다. 시간이 흘렀으니, 방식도 시대 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보기관도 '21세기식'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 1970년대 탈북자 김관섭 할아버지와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0년대 탈북한 이민복 씨는 정보기관원들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년 뒤인 2010년대 탈북
2015.08.15 09:10:24
"북에서도 남에서도 제 인간성은 파괴됐어요"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⑥] 대북 풍선 살포 운동 이민복 씨
그는 주머니 속에 손바닥 만한 '삐라'를 늘 넣고 다닙니다. '대북 삐라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었다'던 그는 남풍이 부는 날이면 풍선에 '삐라'를 실어 남몰래 북한에 띄웁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을 맡고 있는 이민복 씨. 언론에 잘 알려진 그의 주력 사업은 대북전단 살포지만, 남한 정착 초기엔 탈북자 인권 운동에 매진했습니
서어리 기자, 성현석 기자
2015.08.08 07:48:18
'행불' 아들이 15년 만에 찾아 "아빠, 불쌍하구나"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⑤] 안보 강연만 30년, 종북 변호사를 찾아간 이유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는 충격적인 보고서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9.11 사건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7일 이상을 잠 못 들게 하거나, 체내에 물을 주입하는 고문, 또 불 밝은 흰 방에 넣어 큰 소리로 음악을 듣게 하는 '감각 이탈' 고문까지…. CIA가 비밀 시설에서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자행한 고문은 실
2015.08.02 14:59:05
"아빠 간첩이야?" 아내도 아들도 날 버렸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④] 간첩 누명이 부른 불행
고문은 끝났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희망고문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수용 생활을 성실히 하면 곧 나간다" 대성공사 심문관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나가겠지, 조금만 참으면 감금 생활이 끝나겠지'. 하루하루를 손에 꼽았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3년 6개월. 1974년 북한을 벗어난 김관섭 할아버지는 1978년에야 대성공사에서 나
2015.07.25 08:06:39
"날 고문한 자의 모친상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③] 때려잡아 간첩 맞으면 좋고, 아니면…
"살려고 남한에 내려온 건데…죽느니만 못한 생활을 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1974년 남한에 내려오자마자 간첩 누명을 쓰고 약 3개월간 고문을 당한 김관섭 할아버지. 그는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남한에 내려온 걸 후회하느냐'고.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습니다. "아니요. 남한에 온 걸 후회하는 게 아닙니다. 고문
2015.07.11 07:00:50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네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②] 45일, 끔찍했던 고문의 기억
자다가도 몇 번씩 몸부림치며 일어납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합니다. 간신히 정신이 들어 한숨을 돌릴 때면 이젠 욱신욱신 허벅지가 쑤셔옵니다. 김관섭 할아버지(81)는 밤이 두렵습니다. 어둠이 쏟아지는 밤마다 늘 똑같은 악몽에 시달립니다. 40년 전 끔찍했던 '그날들'은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꿈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됩니다. 머리가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는 일,
2015.06.28 14:32:00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했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①] 김관섭에서 유우성까지… 끝나지 않는 '간첩 잡기'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겨울,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장경욱 변호사의 사무실에서였습니다. "나는 한국의 안보와 자유를 사랑하는 김관섭이라 합니다." 딱딱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를 한 번, 장 변호사를 한 번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는 자신이 '멸북'을 주장하는 한 보수단체의 간부였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 분과 '종북 변호사'가 한 공간에 있다니, 이 얼
2015.06.22 06:5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