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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코로나19가 비정규직은 피해간답니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원청과 교섭할 권리 보장해야 안녕할 수 있다

"진짜 분통이 터집니다. 방한대가 뭡니까, 방한대가! 하청업체가 이걸 마스크라고 지급했다는 거에요. 매일매일 빨아서 쓰라면서 …"

지난 2월 2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울산 2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 질병관리본부와 현대차 노사가 빠르게 움직이며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작업자들에게 곧바로 마스크가 지급되었고, 선별진료 및 퇴근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 '작업자' 범주에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인 현대차로부터 공지받은 게 없었다. 마스크 지급은 물론이고 선별진료의 기회도 보장받지 못했고, 그저 쫓겨나듯이 공장 문을 나서야 했다.

▲ 정규직에게 지급된 방진 마스크와 비정규직에게 지급된 방한대.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데 이런 차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정규직에겐 알아서 피해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분하고 억울해서 마스크라도 제대로 지급되는지 조사를 해봤더니, 정규직과의 차별은 기본이고 방한대를 지급하는 사례까지 발견된 것이다.

임금 차별보다 서러운 '투명인간'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 코로나 증상이 의심되어 검진을 받으러 갔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아니냐고요."

지난 2월 21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 소속 노동자 한 명이 사내 부속의원에 들렀다가 외부 병원으로 후송된 뒤 코로나 증상이 의심되어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혹시나 확진될 경우에 대비해 사내 부속의원은 곧바로 격리를 위해 업무 중단 조치되었다.


오후에 곧바로 로베르토 렘펠 사장 명의로 GMTCK 직원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귀가해도 좋다’는 문자가 발송되었다. 혹시나 확진 및 사업장 폐쇄가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재택근무를 위해 ‘노트북을 챙겨서 귀가’하라는, 참으로 꼼꼼한 내용까지 일일이 문자 내용에 담겨 있었다.

"기술연구소 4층에 근무하는 직원이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 중이며, 오늘 밤 11시경에 검사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만약 확진 결과가 나오면 절차대로 Company Crisis Team이 가동되고 질병관리본부의 협조하에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직원분들은 현재 바로 귀가하셔도 됩니다. 귀가 시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노트북을 챙겨서 귀가해주시기 바랍니다 …"

하지만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아무런 공지도 받을 수 없었다. 사내 부속의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에, 혹시 코로나19 감염으로 확진될 경우를 대비해 동선이 겹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공유해야만 코로나 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조치인데도 말이다.

써먹지도 못하는 정부 지침

"더 화가 나는 일이 뭔지 압니까?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며칠 전에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발표했잖아요. 사업장에서 코로나 예방과 확진자 발생시 조치를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가리지 말고 동일 적용하라고요. 그런데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뭐라는지 아십니까? 이건 지침일 뿐이라 법적 강제성이 없답니다."

이름은 거창했다. <코로나19(COVID-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지침> - 1월 29일에 처음 만들어진 '사업장 대응지침'은 그 이후 5차례 업데이트가 되어 2월 24일에 제6판이 발표되었다. 이 지침의 기본 방향은 4가지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중 3가지 내용에 하도급·파견·용역 포함 소속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 사업장 차원에서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나타내는 소속 노동자(하도급, 파견, 용역노동자 포함)의 발생 동향 철저히 파악

사업장 경영자는 소속노동자(하도급, 파견, 용역노동자 포함) 확진자 발생 즉시 적절한 격리가 이뤄지도록 조치

보건관리자 등 보건업무 담당자는 이 지침내용을 소속 노동자(하도급, 파견, 용역노동자 포함)에게 철저히 교육하고 이행상태 확인


그런데 정작 써먹을 수 없는 지침이라니? 현대차나 GM과 같은 원청 사업주에게는 그저 '권고'만 할 수 있을 뿐이란다. 그럼 지금까지 정부가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에게 동일 적용이 되도록 지침 만들었다며 생색낸 건 다 뭐란 말인가.

▲ 코로나 확산 사업장 대응 정부 지침.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게다가 '지침'에는 아래와 같이 멋들어진 행동 요령까지 곁들이지 않았던가. 협력업체·파견·용역업체 포함해 사업장 내 상황을 전파하고, 사업장 내 전체 노동자 개인위생을 관리하라고 명시해서 말이다. (위 그림. 붉은 밑줄은 강조를 위해 필자가 그은 것)

김용균법,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그러고 보니 위험의 외주화 중단, 하청노동자 안전을 위해 ‘김용균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정확히 말하면 2018년 말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파견·용역·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관련해 원청 사업주(도급인)의 책임이 강화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원청 사업주(도급인)가 파견·용역·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조치·보건조치를 해야 한다는, 매우 추상적인 수준의 법 문구가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발전소 설비업무나, 구의역 김군이 일했던 지하철 경상정비업무에는 '도급 금지'가 적용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지침을 만들어 놓고도 '법적 강제성 없는 권고'일 뿐이라고 말하는 문재인 정부 아닌가. 한계가 많고 추상적인 법 문구 하나 생겼다고 문재인 정부가 하청노동자들을 위해 원청 사업주(도급인)가 안전·보건조치를 취했는지 감시·감독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재갑 노동부장관은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대면접촉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3월 중순까지는 사업장에 직접 들어가는 근로감독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목마른 이가 샘을 파는 법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고, 목마른 이가 가장 먼저 샘을 파는 법이다. 용역·파견·하청 노동자들이 자구책을 발동하는 길이 있다. <인사이드 경제>가 몇 차례 강조한 것처럼, ILO 기본협약에 따르면 용역·파견·하청 노동자들에게는 진짜 사장인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실제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수 차례 한국 정부에게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고 행정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전달한 바 있다. ILO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권고, 간접고용(용역·파견·하청) 비정규직의 끈질긴 투쟁의 성과로,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래와 같이 문재인 정부에 권고안을 채택한 바 있다.

▲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3권과 관련한 국가인권위 권고안.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그렇다면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용역·파견·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와 GM을 비롯한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된다. 요구안을 어떻게 하냐고? 문재인 정부가 ‘지침’을 통해 아주 잘 만들어놓지 않았던가.

△ 코로나19 의심증상 발생 동향 철저히 파악

△ 예방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열화상 카메라 설치, 마스크 지급 등)

△ 확진자 발생시 신속하고 적절한 격리 조치

△ 사업장 내 신속하고 정확한 상황 전파 및 사실관계 투명한 공유

△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에게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한 교육 및 이행상태 노사 합동점검...

이건 김용균법에 추상적으로 적시된 내용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전국에 원청사업주(도급인)라고 할 수 있는 사업장 숫자만 수천 개에 달할 텐데, 이 모든 사업장에 어떻게 노동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점검할 수 있겠는가? 근로감독관 전원을 투입해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부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 사업장에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직노조가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안전·보건과 관련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교섭과 투쟁을 통해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교섭과 투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경우 정부가 나서면 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대선에서 이들 하청노동자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공동 사용자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한 ILO 핵심협약에도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도 수차례 권고했고,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도 권고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하청·용역·파견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한 것 아닌가. 원청 사업주에게 사용자책임을 부여하고, 용역·파견·하청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과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 바로 여기에 “밤새 안녕들 하셨습니까”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해법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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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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