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과 철거,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청년세대의 경제적 어려움과 문화적 척박함 등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공통 현상이다. '송환법'으로 시작된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그런 맥락 위에 있다. 홍콩 시위는 한국사회에, 그리고 한국 청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이를 살펴보는 '홍콩시위 연대기'를 연재를 진행한다. 지난 7월 1일 열린 홍콩시위에 직접 참여한 상현 활동가가 총 3회의 글을 보내왔다.
입법회 점거는 필자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많은 장면이 겹쳐졌다. 우리는 종종 불신하고 욕하면서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민주주의 국가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내 삶을 파괴하거나 권리를 제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정당한 권리 요구가 국가에 의해 '폭도 행위'로 낙인찍히고 규제 없는 공권력의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도망치던 홍콩의 시위대가 지하철 역사 안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곤봉으로 두들겨 맞는 것을 보며, 필자는 2011년 한진중공업 해고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로 갔던 때와 2014년 세월호 집회 진압,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의 최전선이 떠올랐다.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필자와 친구들은 경찰의 방패에 찍혀 멍이 들었고 최루액에 맞아 울었다. 비어 있는 총리 공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규명을 요청하던 필자와 시위대는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연행돼 벌금형을 받았다.
폭력을 겪고 이에 저항해본 사람이 타인이 겪는 폭력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걸까. 한국의 국가폭력에 저항해온 필자에게 홍콩의 국가폭력은 모른 척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홍콩 역시 7월 1일 입법회 점거 시위 이후 민주화의 열망이 더욱 끓어올랐다. 청년 중심이었던 홍콩 시위는 '엄마 집회', '노인 시위' 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시위 스킬도 늘어가고 있었다. 7월 말 쯤에는 경찰의 채증을 방해하는 레이저빔이 등장했다.
동시에 진영 간 갈등도 심해졌다. 친중파에 의한 '백색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의 폭력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극심한 폭력 속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홍콩 시민을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 필자가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홍콩 시민에게 필요한 것, 첫째도 둘째도 '외부의 관심'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80년 광주의 진실을 처음 세계에 알렸듯, 그래서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군부 독재 세력의 폭력에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듯, 국가폭력의 주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외부의 관심이다. 홍콩에 가장 필요한 것은 외부의 관심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인들은 대체로 홍콩에 큰 관심이 없다. 자신의 생활과 당장 접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필자의 지인들만 보아도 홍콩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타깝다"면서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하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홍콩에 관한 언론 보도도 외신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인데 그마저도 시위대의 폭력행위와 친중파의 테러와 같이 '폭력성'에 한정돼 있다.
홍콩의 현재 상황을 알리는 게 먼저였다. 홍콩에 다녀온 7월, 한국에 오자마자 당장 아시아 각지의 시민사회·커뮤니티·활동가들이 참여하는 토크 이벤트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홍콩의 활동가들과 소통하며 홍콩의 현 상황을 알리는 연대 행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던 중 8월 11일, 홍콩 경찰의 빈백탄 살포로 시위대 한 사람의 안구가 파열되어 실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분노한 홍콩의 시위대는 13일 홍콩 공항을 점령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한쪽 눈 가리기'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필자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본격적인 연대체 구성과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그렇게 탄생한 연대체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 행동'이다. 영어로는 A.C.A.B(Asian Companions Against Brutality)인데, 경찰을 조롱하는 'All Cops Are Bastard'라는 의미를 연상케하는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홍콩에서 번역가로 일하는 친구가 만들어줬다.
'아시아 공동행동', 동북아시아가 아닌 '아시아'가 된 이유를 좀 더 설명하자면 홍콩에서 본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홍콩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홍콩 내에서 이들의 열악한 지위는 매우 열악한데, 빈부격차가 큰 홍콩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이 이들이다. 홍콩의 주말에는 지하철이나 쇼핑센터 등지에서 돗자리를 펴고 있는 동남아시아계 입주 가사노동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입주 가사노동자들은 주말에 가족끼리 있고 싶어하는 고용주를 위해 주말에는 집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특별히 갈 곳이 없으니 주말동안 노숙을 하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이 홍콩으로 오게 된 데에는 동남아시아의 경제구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제조업이나 수출이 부진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주 사업은 바로 인력 송출 사업이다. 산업 기반이 약한 필리핀은 올해 적자상태인 한진중공업 수빅 공장을 인수할 계획이다. 군함을 만들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생각이다. 그 한진중공업 수빅 공장은 또 과거 불법파견과 부당해고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기도 하다. 계속된 노동 분쟁으로 필리핀 정부는 노동자들의 소요사태에 대비해 현지의 경찰과 군인들까지 투입시키기도 했다.
아시아 지역 내, 국경을 넘은 자본 이동과 그로인해 발생한 폭력에 국가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고 한 국가, 한 지역의 일들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리 모두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국제연대, '아시아 공동행동'이 필요한 이유다.
이름도 만들었겠다, 성명문을 작성하고 서명을 받았다. 성명문은 아시아의 여러 활동가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완성했다. 제목은 '홍콩 시위대에 대한 살인적인 국가폭력을 규탄한다'였다.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80년 광주가 그랬듯, 민중의 도도한 저항과 국경을 넘은 연대가 이 폭력의 연쇄고리를 끊을 하나의 방법이며 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는 역사의 역동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단지 목격자로서가 아니라 함께 싸우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하기를 제안한다'
급하게 만든 것 치고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광주를 굳이 언급한 것은 한국인들의 공감을 호소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더 크게는 아시아 각지의 활동가 친구들 때문이다. 아시아 각지의 많은 활동가들이 자국의 민주화 항쟁을 우리나라의 광주항쟁과 연관시켜 설명하곤 한다. 아시아의 민주화 역사에서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이 큰 획을 그은 사건임은 틀림없다.
성명문은 연대하는 친구들에 의해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됐다. 그리고 다시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집단 지성의 힘이었다. 온라인 서명 운동에는 사흘도 채 되지 않아 27개 단체 및 커뮤니티를 비롯해 280명이 넘는 개인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8월 16-28 홍콩 연대 행동 주간
8월에는 홍콩의 사태가 더욱 급박하게 흘러갔다. 업종 파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직공맹'이 주도했다. 홍콩 역시 중국 당국의 영향으로 노동운동이 많이 위축돼 있고 노조가 있어도 중국에 친화적인 어용노조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해 만든 직공맹이 파업에 나섰다는 것은 큰 의의를 지니는 일이다.
8월 11일 실명 사건을 기점으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중학생(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홍콩 당국은 조슈아 웡을 체포했다. 경찰이 지하철에 진입해 시민을 마구잡이로 때려잡은 것도 8월 말에 일어난 사건이다.
한국에서도 연대 활동이 바쁘게 이뤄졌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 행동'은 16일부터 28일을 홍콩 연대 행동주간으로 정하고 홍콩 사태를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며 중국정부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키웠다.
1) 8월 16일, '기자 없는 기자회견
"대한민국정부 대통령 문재인 귀하께, 홍콩의 국가폭력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청합니다"
성명문을 청와대에 전달하기에 앞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실명사건 후 그 주 금요일에 연 기자회견이었는데 날짜가 너무 촉박했는지 기자는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필자와 다른 활동가들이 함께 종로경찰서의 경찰차를 타고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연풍문 건물 안에서 시민수석 행정관이 요청서를 수리했다. 실제로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을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홍콩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2) 8월 23일, 국경과 언어를 넘어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예술 행동
연대행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뮤지션들의 공연도 있었다. 단언컨대 문화예술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기에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다.
이날 참여한 뮤지션들 중 일부는 필자가 도쿄에 방문해 참여한 2020 도쿄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외에도 우리동네나무그늘, 동대문옥상낙원, 경의선공유지의 활동가들이 공연에 함께 해주었다.
이날 우리는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에 작은 레넌 얼을 세웠다. 香港加油(홍콩화이팅)이라고 아주 크게 쓰인 벽 앞에서 우리는 작은 연대 선포식을 열었다.
3) 8월 24일, 광화문에서 DDP로 - 노란 헬멧을 쓴 시위행렬
예술 행동 다음 날,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연대 시위를 진행했다. 홍콩 시민들과 연대의 의미로 '검은티셔츠, 노란헬멧, 안대'를 착용했다.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안을 한국어로 담은 손피켓도 준비했다.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시위는 동대문 DDP를 향한 행진으로 이어졌다. DDP는 홍콩 유학생들이 모여 한국인들에게 연대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하던 곳이다. 쇼핑몰 앞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를 향해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몇몇 관광객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기도 했다. DDP에서 추모대를 만들어 국화를 헌화하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시위는 마무리됐다. 이날 쓰고 행진했던 헬멧에는 각자의 연대 문구를 적어 다음달 홍콩의 시위대에게 전달됐다.
4) 반송시위 '우산혁명 리부트' 상영회 개최
일요일이었던 8월 25일에는 동대문 옥상낙원에서 홍콩 찬 체운 감독의 우산혁명 다큐멘터리 <Yellowing-우리들의 우산운동> 상영회를 개최했다. 서구 언론에서는 '우산혁명'이라 이름 붙였지만 홍콩에서는 '우산운동'이라 부른다. 일본에서 상영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감독에게 연락해 상영 허락을 받았다. 상영료를 무료로 하는 대신에 우리가 한국어 자막을 제작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5) 중국 대사관 항의 방문
다음날에는 중국대사관에 항의 방문을 갔다. 홍콩에 대한 탄압과 폭력을 중단하고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요청서 서류 봉투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시진핑 귀하'라고 적었다. 시진핑 주석이 이 요청서를 받아 읽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지만 홍콩도 중국도 아닌 다른 곳에서 홍콩의 사태를 심각하게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중국 당국 관계자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이 자리에는 일본 도쿄에서 교류 차 서울에 온 활동가 마리오 씨(활동명)가 동행했다. 그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관련한 평화운동을 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에 연대하고 있는 활동가다.
참 바쁜 주간이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 행동>의 활동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재한홍콩인 유학생 집회 개최자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 홍콩 연대 집회 협력을 요청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가들이 우리가 발표한 선언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연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금씩이지만 분명 점점 관계가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한국의 민중가요가 홍콩 시위현장에서 불렸다는 것보다 현재진행 중인 아시아 풀뿌리의 자율적인 문화·학술교류 활동에 주목해보자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종종 홍콩의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등 한국의 민중가요가 불렸다든가,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가 상영됐다든가, 조슈아 웡이 "촛불시위에서 배웠다"고 말했다든가 하는 점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홍콩의 상황과 한국과의 연관점을 찾아 관심을 촉구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그저 소위 말하는 '국뽕'을 자극하는 것에서 끝나버려 아쉬울 때가 많다.
풀뿌리 활동가들의 자율적인 문화·학술교류에 주목하는 것은 어떨까. 필자가 만났던 광저우의 한 예술가는 중국에서는 출간이 되지 않는 일본의 사상가 기라타니 고진의 책을 해적판으로 돌려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만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청년 연구자는 "지금 중국의 진보적 학계 또는 노동계에서는 한국학자가 제시한 '민중'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이남희의 <민중만들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런던에서 유학중인 한 홍콩인 친구는 내게 2006년 홍콩에서 열린 FTA 반대 국제연대 투쟁 당시 한국 농민들의 현란한 투쟁 방식이 홍콩 반FTA 투쟁가들에게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고 말한 적 있다.
중요한 점은 홍콩 사람들이 한국으로부터 보고 배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사점이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니 서로의 운동에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홍콩 시민들이 요구하는 민주화의 내용과 저항 방식도 한국의 사회 운동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은 이미 한 국가, 한 지역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국경을 넘는 자본의 이동과 이윤 추구, 금융자본의 먹튀, 약한 고리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노동권 탄압, FTA와 전쟁, 테러 등의 문제는 한 국가 차원이 아닌 세계 전체가 연결된 문제다. 국제연대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지지를 보내야 한다.
국제연대행동은 사회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경험이다
국제연대행동은 해외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함께 깊숙이 들어가 함께 고민하고 재해석하며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주입식 제도교육을 받으며 포기하거나 질려버린 외국어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우게 되는 것은 덤이다. 외국어 공부에 학을 뗐던 필자도 최근 광둥어 교재를 샀다. 대단한 언어능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요즘엔 온라인 자동번역기의 수준이 꽤 높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국제연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사진이나 영상이 가능하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가서 행동을 보태고 싶은 사람들에게 방법은 항상 열려있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국경이든 무엇이는 '넘어서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내 삶을 규제하는 어떤 조건들을 넘어서는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동료를 발견하는 경험. 하다못해 놀러 갔을 때 가난한 나를 공짜로 재워주고 밥을 사 주는 해외의 친구가 한 명 느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이 이런 활동에 활발하게 매진하기에는 우리 모두는 너무 바쁘다. 필자 또한 본업이 있는 사람인지라, 연말까지 처리할 업무가 밀려 죽을 지경이다. 한 가지 더 바람은 누군가는 과로하고 누군가는 실업상태인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노동구조도 바뀌었으면 한다. 홍콩 시위의 배경 중 하나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살인적인 노동시간,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이다. 이건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이 불평등 타파를 외치며 홍콩과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민주주의는 근원적으로 민중과 특권층·엘리트층·지배계층 간 긴장과 투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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