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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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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 2-①

이른바 '배달 산업'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며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노동자들의 희생이 감춰져 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은 지난 수개월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겪는 사건사고와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배달 중 숨진 18살 김은범 군의 죽음을 통해, 청년 라이더들이 처한 비참한 노동현실과 비정상적인 법체계를 고발한다.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은 4차례에 거쳐 연재된다. 매편의 ①번 기사는 주요 취재내용을, ②번 기사는 취재기를 담고 있다.(☞ : '배달 죽음' 다큐 바로가기 클릭) 편집자

2-① 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2-② 영세 가게에서 배달하다 죽으면 노동자가 아니다?

▲ 고 김은범 영정 앞에 주저 앉은 어머니. ⓒ공동취재진

"지금이라도 노동청에 고발하면 돼요?"

은범이의 어머니 장수미 씨는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청을 찾아가 업주들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들의 사망사고가 벌금 30만 원으로 처리된 뒤, 장 씨는 실제로 제주 관할 노동청인 광주지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이하 제주센터)를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노동자에게 안전 관련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게는 통상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조사가 진행된다. 산안법은 법 설립 목적을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산안법 제 1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관 부처는 노동청이다.

하지만 제주센터는 은범이 사건을 산안법 위반 사건으로는 조사하지 않았고, 단순 교통사고로 취급해 처리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은범 군 사건은 산안법 위반으로 발생한 재해가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다만 제주센터는 족발집 사장이 은범이를 고용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점만 지적해, 족발집 사장 부부에게 벌금과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제주센터는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이 은범이 사고를 취재하자 지난달 말 뒤늦게 재조사에 착수했다.

▲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 ⓒ공동취재진

교통사고로 취급된 사건

○ (산안법)
-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재해원인이 사업주의 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아니한 재해로 파악되는 바, 우리 청(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에서 조사 및 조치한 내역 없음
○ (근기법)
- 미성년자 고용 관련 2018.5.19. 제주지방검찰청 “기소”의견으로 송치, 근로기준법 제114조 및 같은 법 제67조 제3항, 벌금50만원 부과
- 2018.5.3. 근로기준법 제66조 위반, 우리 청 과태료 800,000원 부과 하여 자진납부
-출처 :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

취재진이 국회(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를 통해 받은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의 '고 김은범 군 사건 관련 처리 내역' 자료에 따르면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는 은범이의 사망에 대해 "산안법 위반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라고 판단해 별도의 조사나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산안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안전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은범이 사망사고는 왜 산안법 적용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취재진은 제주센터 측에 이유를 물었다. 제주센터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교통재해(사고)의 경우 조사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었다. 관련 조사를 생략하라는 노동청 내부의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의 경우 근로감독관의 지침에서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나와있기 때문에 조사를 생략했다는 설명이었다.

이상한 집무규정과 이상한 해석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산업안전보건)
제 26조 조사대상재해
② 제1항에 따른 재해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해는 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
2. 교통사고, 고혈압 등 개인지병, 방화 등에 의한 재해로서 재해원인이 사업주의 직접적인 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아니한 것이 명백한 재해

이 관계자가 말한 지침은 '근로감독관(산업안전보건) 집무규정 26조 2호 2항'이다. 해당 규정에는 "교통사고 등에 의한 재해로서 재해원인이 사업주의 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재해에 대해서는 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취재 중 만난 전문가는 "제주센터가 규정을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재해 원인이 산안법 위반 때문이 아니라는 게 '명백한' 재해의 경우에만 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지,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굳이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국문학적으로 해석되는 문구입니다. 배달 노동자들의 경우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을텐데 그런 경우에 대해 산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게다가 지난 2017년 3월,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교통 재해에 대해 이미 "재해 형태만으로 재해 조사 생략 여부를 판단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제주센터의 설명과는 다른 부분이다. 이에 제주센터 측은 "작년에 조사를 놓친 부분이 있었다.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지 보기 위해 다시 조사에 들어갔다"며 취재가 시작된 후인 지난달 말부터 은범이 사망사고를 재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엄격한 검찰과 최대벌금 30만 원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뒤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경찰은 은범이가 일했던 족발집 사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 결정을 내렸다. “무면허 운전 지시라는 사업주의 업무상 과실과 은범이의 사망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였다. 노동청이 이미 산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찰의 불기소이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사건 교통사고는 2018.4.8 피해자가 위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여 굽어있는 도로를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과실로 마주 오던 위 승용차와 충돌한 결과 피해자가 치명적인 상해를 입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서,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가 없는 직원인 피해자로 하여금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여 음식 배달 업무를 하게 하였다는 피의자의 업무상과실과 이 사건 교통사고 및 피해자의 사망의 결과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 제주지방검찰청 불기소사유서 中

▲ 제주지방검찰청. ⓒ공동취재진

결국 족발집 사장은 은범 군의 사망과 관련해 벌금 30만 원 처분만 받고, 사건은 종결됐다. 근거 규정은 도로교통법 154조. 여기엔 "원동기장치자전거(오토바이) 면허가 없는 자에게 운전을 시켰을 경우 3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도로교통법
154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3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
5. 제56조 제2항을 위반하여 원동기장치자전거의 면허를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도록 시킨 고용주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미성년 학생이 무면허 운전을 하게 돼서 교통사고 위험에 처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 고용주가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교통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을 해서 적극적으로 혐의를 적용했었다. 검찰이 법을 굉장히 엄격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판단에) 아쉬운 점이 있다." 제주지방경찰청 민경화 교통조사계장

취재진의 의뢰로 은범이 사건을 검토한 유성규 노무사도 "사각지대의 완전한 부작용이다. 이런 결과가 (사업주들에게) 어떤 시그널로 작용을 하겠나. '그냥 무면허 학생을 데려다가 써도 30만 원만 준비해 놓으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니냐"고 검찰의 '벌금 30만 원' 결정을 비판했다.

은범이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이 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은범이의 어머니 장수미 씨의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못했다. 장 씨는 취재진과의 인터뷰 도중 “단돈 30만 원에 이렇게… 돈만 있으면 이 나라를 뜨고싶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강혜인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린 18살 은범이의 죽음
1-② "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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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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