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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은폐한 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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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은폐한 제약사

[그 약이 알고 싶다] ②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제약사

진실에 대한 변명


우리는 늘 진실을 갈구한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이든, 사회의 문제이든 말이다. 어떤 사안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대한 대응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갖가지 이유로 진실이 숨겨지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나이 드신 부모님의 슬픔을 늦추기 위해 자신의 병을 숨기는 '선의의 거짓말'부터 사회적 비난이나 처벌을 피하기 위한 '범죄적 은폐'까지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된 인보사 사태도 수년 전부터 애초 허가 물질과는 전혀 다른 종양유발 가능 세포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 생명과학은 효능에도 안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런 진실 따위는 식약처도 환자들도 알 필요가 없었다는 항변을 계속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로슈의 항암제 부작용, GSK의 우울증약 소아 자살충돌유발, MSD의 진통제 부작용 은폐 등 제약회사들의 전략은 이처럼 보통 '부정적' 결과를 숨기려는데 사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긍정적 데이터'를 숨기려는 제약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명확한 이전 사례와는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엔브렐, 다시 조명받다

최근 미국을 뜨겁게 달군 약이 하나 있다. 제약회사와 연구자들, 언론, 시민단체, 환자단체까지 갑론을박을 주고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약은 바로 화이자의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적으로 인식해 자신을 공격하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다. 주요하게는 TNF-α라는 단백질이 몸에서 과다하게 만들어져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엔브렐은 바로 이 단백질을 억제하는 약이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서는 암젠이 판매권을 갖고 있으며 그 이외 지역에서는 화이자가 독점권을 갖고 있는 엔브렐은 글로벌 탑 10 의약품 판매 순위에 빠지지 않았으나 최근 특허가 만료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점차 전락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이 오리알이 갑자기 무대의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까?

은폐된 자료,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


지난 6월 4일 <워싱턴포스트>는 화이자가 엔브렐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고 발표했다. 화이자 내부 연구팀이 2015년 보험 기록을 검토하던 중 엔브렐을 복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64%나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난 해 2월 화이자 내부 위원회 검토를 위해 준비한 자료에서는 '엔브렐이 잠재적으로 안전하게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적혀있다. 연구원들은 엔브렐의 알츠하이머 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화이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약회사가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외면했다는 지점에서의 비난도 만만치는 않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약자본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에 대한 '그들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화이자가 관련 자료 자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로 그것이 많은 연구자들, 환자들, 대중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 지금 전 세계는 알츠하이머의 실낱같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백사장을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연구, 새로운 길을 찾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60세의 경우 100명당 1명이 치매다. 65세 이상에서는 10명당 1명이 치매이고 이후 나이가 5년 증가할 때마다 발병 빈도는 두 배 씩 증가하여 85세 이상의 경우 거의 50%에 육박한다.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한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치매환자를 어떻게 케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약한 효과만을 보이는 4개의 약제가 허가되어 판매되고 있고 그마저도 16년 전 허가된 약이 마지막이다.

아직도 우리는 치매가 왜 발병하는지 모른다. 지난 약 25년 동안 가장 각광받았던 학설은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축적되어 여기서 발생한 독성이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관련 임상연구의 약 80%가 이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초국적 거대 제약회사인 릴리, 머크 등이 실제 환자의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음에도 치매 치료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베타아밀로이드 학설은 실패했다'는 것이 거의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화이자는 왜 자료를 은폐했나?

이러한 상황에서 화이자의 엔브렐은 치매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뇌 속의 염증, 심지어 체내 염증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최근의 임상 보고들은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진 엔브렐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화이자는 이 모든 발견과 자료들을 '은폐'했다. 관련 데이터가 '엄격한 과학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이런 정보를 공개했을 때 '과학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화이자는 밝혔다. 알츠하이머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야말로 멍청하게 잘못된 길로 걸어갈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료를 은폐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바라보는 대다수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의 해석은 다르다. 엔브렐의 특허가 만료되어 바이오시밀러들이 이미 속속 등장하고 있고 이에 더 이상 돈을 투자하고 싶지도, 자료를 공유하고 싶지도 않은 화이자의 경제적 이윤 동기만이 이 사태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약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제약회사는 공공의 비용으로 수행된 온갖 연구 자료를 밑거름으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수많은 세제 혜택과 세금 감면을 받고 20년이라는 특허 독점권도 부여받는다. 이 사회가 제약회사에게 이런 혜택을 주는 이유는 그들에게 인류를 구원할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생산해내라는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화이자의 이번 결정을 단지 자본의 자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이해되고 용서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투명성이 민중의 건강을 담보한다


지난 5월 세계보건총회는 제약산업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연구, 개발, 생산, 가격, 특허, 판매수익, 임상시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약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전 세계 민중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는 갈수록 모든 정보를 숨기려는 제약산업의 비밀전략이 환자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가격 정보를 숨겨 약가를 높이고, 특허 정보를 감춰 독점권을 강화시키고, 임상 시험 정보를 은폐하여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보통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제품에 부정적인 부작용을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어왔다면 이번 화이자의 사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긍정적' 자료를 은폐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기까지 하다. 물론 전 세계가 이 사안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제약사가 단지 높은 약가를 요구하는 형태의 이윤 추구를 뛰어넘어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질병에 대한 잠재적인 연구를 막아서는, 오히려 더 극단적인 행태의 비윤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고, 제약사는 치료제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은폐가 아닌 투명성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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