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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도 '개정하자' 했던 한미조약, 지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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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도 '개정하자' 했던 한미조약, 지금 우리는?

[기고] 불평등한 한미동맹관계가 남북관계 걸림돌

북미, 남북 관계가 중대고비를 맞고 있다. 비핵화 관련 해빙무드가 지속될지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일괄타결 방식을 제시해 회담을 결렬시킨 뒤 동일한 입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북한은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시험하는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회담에서 빠지라는 요구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북미간의 접점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비핵화 추진의 한 쪽 키를 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특검 조사가 끝나고 그 발췌본이 발표된 뒤 특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야당은 특검조사 자료 전문 공개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고 있다. 미 대선이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역풍을 고려해 탄핵추진에는 선을 긋고 있지만, 예비후보들이 트럼프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 스캔들 논란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큰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에 얼마나 열의를 보일지 확실치 않은 데다 이런 점을 주목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외 정책이 상식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언제든 북한 관계를 악화시킬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향후 역할을 기대한다는 태도를 표명한 것도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서 한 발 빼는 정치적 제스처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특히 한미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의 단독 회담이 2분에 불과했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나 현재의 북미 교착 상태, 북한의 남한 정부 비판 등을 고려할 때 비핵화를 위한 문 대통령의 의미 있는 역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고 시간을 벌려는 시도로 보여 비핵화나 남북관계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반도 또는 북한 비핵화 목표를 두고 미국이나 북한은 모두 그에 동의한다는 입장은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미국이 북한 제재를 지속하면서 일괄타결 방식을 고집하고, 북한이 단계적 동시적 이행 방식으로 맞설 경우 자칫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걱정스런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미국 조야의 한미동맹에 대한 태도다. 미 의회나 전문가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북 제재는 유지 또는 강화하되 현재의 한미동맹 관계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만큼 이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비핵화 추진에서 남한을 경계하는 이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전적으로 미국과 동조하는 태도를 취하는데도 한국 정부를 경계하는 태도를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논리적으로 한국 정부 단독으로 재개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절대 불가’ 입장을 밝힌다. 미국은 그러면서 항상 최적의 대북 군사적 대응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힌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비핵화 추진과정에서 대북 군사적 옵션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은 한미동맹의 토대위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나 정당, 시민단체, 학계는 한미동맹의 불평등성이나 미흡함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이는 국가 간 관계가 도덕이나 윤리만이 아닌 이해관계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매우 의아한 태도다. 박정희 정권 당시만 해도 달랐다. 당시 정부는 한미동맹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를 문서화한 바 있고, 그 작업에 박정희의 심복 차지철(당시 국회의원)이 앞장섰다(오마이뉴스 2015년 8월 2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보장받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애걸(?)해 만든 것으로 21세기에 유일무이한 불평등 군사조약이다. 또한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까지 장악하고 있어 한국의 군사적 주권이 미국에 종속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박정희는 공작정치의 화신이라 할 만하고 차지철은 박정희의 철저한 충복으로 공작정치를 실천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장섰던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분석하고 미국에 그 개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국가 간 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느냐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많은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박정희는 월남 파병을 놓고 미국과 벌인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차지철에게 파병 반대운동을 벌이라고 비밀리에 지시한 바 있다(동아일보 2006년 9월 27일).

월남 파병 문제가 타결되었던 1965년은 박정희가 한일협정 추진을 강행해 학생 데모 등 반대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한편, 국회와 언론은 군사정권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던 때다. 언론은 보도지침에 따라 매일 정권의 요구대로 사건을 보도하는 상황이었다. 공작정치는 상대방이 진짜로 믿도록 만드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지철이 반미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이나 박정희가 그런 차지철에게 너무 나간다고 비판한 것은 미국을 상대로 벌린 정치 공작의 역할분담으로 추정된다.

박정희의 공작 정치와 차지철의 파병반대

한국군 전투부대의 월남 파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65년 5월 당시 정일권 총리는 브라운 미국 대사에게 국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수정 등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는 미국 정부에 보고되었다. 이어 같은 해 8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월남 파병동의안이 가결되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당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시도는 상당히 정교하게 이뤄졌다. 차지철이 앞장섰던 한미동맹관계의 철저한 점검 요구는 국회의 관련 결의안 통과와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이어 국방부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 및 보완 필요성을 지적하는 자료를 외무부에 전달해 부처 간 협의까지 이뤄졌다.

차지철을 비롯한 55명은 1966년 3월 12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보완개정촉구에관한건의안'을 국회 외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어 국회는 같은 해 7월 8일 "한국방위문제와 한미 양국 간의 군사적 제휴 및 재한 외국군대의 지위를 결정하는 제반 조약과 협약을 정부는 재검토하여야 하며 시국 변화에 따라 현실성 있고 주권이 보전되는 내용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보완 개폐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건의안을 통과시켰다(프레시안 2010년 5월 13일). (☞관련기사: "주한미군 일방적 철수를 막아라" 선봉에 선 차지철)

이에 따라 국방부는 1966년 10월 한미동맹 자체 검토 결과를 외무부에 보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10여년이 지나면서 발생한 국제정세 변화 등으로 이 조약의 전면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특히 이 조약 제4조의 경우 미국이 한국의 영토 내와 부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한국이 허여하고(grant) 미국은 이를 수락(accept)하는 권리(right)로 규정하고 있어 그 목적과 책임한계가 불분명해 '주한미군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한국의 안보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견해와 달리 미국의 전략 무기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한국이 저지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그런 우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미군의 병력과 장비의 중요한 변경 등에 대해 사전협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의 이런 검토 결과에 대해 외무부는 1966년 11월 '한·미 상호 방위조약 개정에 관한 외무부의 의견'이라는 문건에서 조약의 개정은 필요 없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도 험프리 부통령의 해명 등을 통해 이 조약의 개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 오늘날까지 이 조약이 수정된 적은 없다. 당시 국방부와 외무부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이견을 보였지만 이는 부처 자율적인 조치라기보다 박정희의 총지휘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국방부가 지적한 한미동맹 문제점 주목해야

하지만 국방부가 지적한 이 조약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국방부가 검토할 당시 한국의 1인당 GNP는 100달러 선이었지만 오늘날 3만 달러에 달한다. 그 사이 한국은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 하나가 되는 등 그 위상이 크게 변했다. 특히 오늘날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 것 등은 냉전시대에 맺어진 한미동맹관계에서 비롯한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 제3조와 제4조에 따라 북한을 '반국가단체'이자 동시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보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19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남과 북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은 가능할 터인데 미국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미국 핵무기나 사드의 한국 배치에서 미국이 실효적인 사전 협의를 한국 정부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이 조약 4조의 부속협정 성격인 한미행정협정(SOFA)이 1966년 만들어져 주한미군의 부지와 시설을 한국이 제공하고, 이어 SOFA 제5조에 대한 특별협정으로 1991년 한미방위비분담금부담특별협정(SMA)이 만들어져 주한미군 주둔비를 한국이 1조 원가량 부담하고 있다. 이로써 주한미군은 미국이 원하는 무기를 한국에 들여올 때 권리를 행사하는 식이고, 본토에서 주둔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으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 평택미군기지가 세계 최고인 것도 이 조약에 근거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에서 한미동맹을 최상의 동맹으로 추켜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일부 있다.

한편 이 조약의 연장선에서 한미 간에 2006년 합의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큰 문제다. '전략적 유연성'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 등 미군이 특정지역에 고정되지 않고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고 유연하게 개입할 수 있는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보장됨에 따라 대만 등 동북아 지역 분쟁에 주한미군이 개입할 경우 한국이 자동적으로 끌려 들어가게 될 우려가 있다(통일뉴스 2006년 1월 20일).

미국이 대북 전면전 가능성을 대북 정책의 한 카드로 비축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한미동맹이 그것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공격 확정시 그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비축, 30~40만 명에 달하는 미군사력 주둔, 해군력의 배치와 그 발진기지 등이 필요한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이런 것들이 보장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의 북미관계를 보면 대북 전면전 카드라는 옵션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미국이 대북협상에서 극단적인 물리적 방법까지 선택지에 포함시키게 만들거나 그 결과 협상의 실패 또는 결렬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 전무할 경우 미국의 대북 협상 태도는 좀 더 진지하고 신중해질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21세기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안정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 필리핀, 일본이 평등국가의 입장에서 미국과 맺은 군사동맹이 참고가 될 것이다.

필리핀, 터키 대통령의 줄타기 흥정 외교, 한국은?

만약 문재인 정부나 정당, 시민단체가 불평등한 한미동맹 관계를 지적하면서 비핵화 추진에 동참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논란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경제 보복 등이 취해졌을 때, 그리고 북핵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 선제공격작전계획으로 한반도 전면전 전개 가능성을 선언했을 때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점검할 절호의 기회였다고 보여 진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비핵화 추진 교착 상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카드를 청와대가 제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외교가 어떤 식이어야 하느냐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간에 줄타기를 하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미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흥정하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 간 협상은 철저한 주고받기고 그 배경은 힘이다. 한국 정부가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 깜짝 쇼를 할 정도의 치열한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그것은 촛불혁명의 요구이기도 하다. 청산되었어야 할 적폐세력의 하나인 한국당이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장외집회와 행진을 하는 것은, 정치는 올바르게 앞서 나가지 않으면 위기를 맞는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월남파병 이후 최근까지 국내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가 완전 실종된 것은 박정희, 전두환이 국보법을 앞세워 언론탄압을 벌이면서 생긴 결과로 정보정치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몰고 오는지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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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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