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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에 주입된 유럽의 식민지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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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에 주입된 유럽의 식민지 이스라엘"

[유라시아 견문] 울라마와의 대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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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움마

울라마 : 움마는 아랍어로 엄마(움므)와 어원을 같이하는 단어입니다. 아랍어로 인류는 '바누 아담'이라고 하죠. 아담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모두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이미 아담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인식에서 이슬람의 인간론이 출발합니다. 따라서 '개인'이라는 발상도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오로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것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슬람은 그리스 사상의 적통을 자임하는 종교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반(反)지성주의의 중세로 이행했던 천 년 동안 그리스 사상을 만개시킨 것이 이슬람이었습니다. 고로 '개인'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에 바탕해서 입안된 근대의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이슬람에서는 통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움마의 언어적, 철학적 기초라고 하겠습니다.


움마의 역사적 기원은 메디나로 거슬러 오릅니다.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함으로써 최초의 이슬람국가가 성립합니다. 이곳에서 마호메트와 신도 간에 '메디나 헌장'이 맺어집니다. 이슬람의 사회계약이라고도 할 수 있죠. 메디나 헌장은 지금도 이슬람적 시민사회의 원형으로 환기되고 있습니다. 납세의 의무만 다하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동체의 자치를 허용한 쌍무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디나에서는 유대교도 기독교도들도 공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삼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도시가 메디나였습니다. 이를 세계적으로 확장한 것이 움마라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그럼 움마를 흔히 '무슬림 공동체'라고 번역하는 것도 오역이겠군요? 무슬림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슬람의 집' 아래 살아가는 만 인을 뜻하는 것입니까?

울라마 : 근대적인 개념으로는 세계시민주의, 사해동포주의, 글로벌 시티즌, 지구사회 등에 더 근접할 것입니다.

이병한 : 근현대 아랍 사상가들의 저작을 일별해보면, '움마'라는 단어가 특별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움마를 재구상하고 재구성해낼 것인가가 20세기 아랍 사상의 귀결점으로 보이더군요. 움마를 국민으로 삼으면 일국주의가 되고, 아랍인으로 삼으면 아랍 민족주의가 되고, 무슬림으로 삼으면 이슬람 세계 전체의 통합을 지향하게 됩니다.

울라마 : 움마는 각국의 헌법에도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1950년 시리아 헌법에 최초로 '아랍 움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1952년 요르단 헌법에도 같은 말이 나오죠. 1956년 이집트 헌법에도 채용되었습니다.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일하면서 출범한 아랍연합공화국의 헌법에도 명기됩니다. 1960~70년대 걸프만의 신생 독립 국가들도 공식적으로는 '아랍 움마'의 일원으로 자국을 자리매김합니다. 자국의 영토조차도 '아랍 조국의 일부'라고 표기한 경우도 있었어요. 즉 아랍 세계의 독립국들은 초기부터 이미 '주권 국가'라는 발상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넘어섰다기보다는 애당초 국가 의식, 국민 의식이 희박했다, 낯설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겠죠. 1950~60년대 아랍의 통일 국가를 수립하자는 아랍민족주의의 실험에 아랍인들이 열광했던 까닭입니다.

이병한 : 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988년 발표된 팔레스타인 독립선언서에도 '팔레스타인은 아랍 민족의 불가분의 일부이다.'라는 표현이 재차 나오더군요. 움마의 관성이랄까, 자성(磁性), 근성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울라마 : 아랍-움마의 실험이 좌초하면서 부상한 것이 무슬림-움마입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기폭제였습니다. 같은 해 11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아랍통일연구원 주최로 8개 국 30명의 지식인이 참가한 국제회의가 열립니다. '아랍민족주의의 이념과 실천'이 주제였는데요. 아랍민족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전환되는 이정표가 된 행사였습니다. 그때 명성을 쌓은 이로 카이로 대학의 정치학자 알리 히라르가 있습니다. <이슬람적 움마 부흥을 위한 주요 노선>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죠. 1980년대부터 이 문건이 아랍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이에 화답하듯 시리아의 무슬림 동포단 이론가였던 사이드 하와우도 <신의 전사 - 그 문화와 논리>를 집필합니다. 이슬람주의에 바탕한 혁명국가 노선을 표방한 강령 문건쯤 됩니다. 크게 3단계를 제시했어요. 이슬람적 인격의 형성, 각 나라에서의 이슬람 국가 수립, 그리고 움마의 통일입니다. 이슬람적 인격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슬람 국가가 수립될 수 없고, 각국에 이슬람 통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무슬림의 통일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발상입니다.

이병한 : 저도 두 팸플릿을 읽어 보았습니다. '사회주의 국제주의'에 빗댈 수 있는 '이슬람 국제주의' 문건 같더군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서, '만역의 무슬림이여 단결하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한 편으로는 이슬람판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로 보이기도 했고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아랍-이스라엘의 중동 전쟁에 대한 역사 해석이 달라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랍인 대 유대인의 민족 간, 국가 간 대결이 아니라, 이슬람과 유럽 간 문명의 충돌로 이해합니다.

울라마 : 이슬람 세계에 주입된 유럽의 식민지가 이스라엘입니다. 이를 아랍인 대 유대인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입니다. 아랍과 유럽의 모순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유럽인이었습니다. 폴란드인, 러시아인, 독일인, 프랑스인 등 유럽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유럽인이 팔레스타인에 만든 식민지로서, 유럽 최후의 교두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탄생 또한 유럽식 국민국가의 모순을 이슬람 세계로 이식한 것입니다. 국민국가란 '국민의 헌신을 요구하는 리바이어던=우상 숭배' 체제입니다. 그 유럽의 근대에서 '유대인'들은 국민국가라는 우상에 전면적으로 충성하지 않을 수 있는 비국민의 전형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개별 국가로부터 배제시키고, 유럽의 바깥으로 배출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 파장이 곧장 아랍 세계에도 미쳤습니다. 조상 대대로 아랍인이면서 유대교를 믿는 신도들이 적지 않았어요. 이슬람 세계에서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식 체제가 이식되면서 그들의 존재 또한 애매해진 것이죠. 아랍인 동포로부터 적대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이슬람형 공존 체제가 유럽식 분단체제로 전환되면서 소수자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도 결국 고향을 떠나서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일어납니다. 이 수십만의 '아랍인 유대교도'야말로 유대인 대 아랍인의 대결 구도가 허상임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이병한 : 예루살렘에 갔더니 의외로 아랍어가 통하는 곳이 많아서 신기했던 경험과도 무관치 않을 듯합니다.

울라마 : <메카 회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1902년 카와키비가 저술한 가상의 회의록이죠. 최후의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의 붕괴가 머지않았음을 예감하고 미래를 상상하여 그린 공상과학소설입니다. 국가별로 쪼개졌던 움마들이 메카에서 회합함으로써 칼리프를 재옹립하고 무슬림 세계를 재통일하는 과정을 토의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죠. 실제로 이슬람 국제 회의 기구가 출범한 것이 1969년이에요. 그 책이 발간되고 70여 년이 흘러서 '이슬람'을 표방하는 국제기구가 등장한 것입니다. 기독교 문명권이나 불교 문명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죠. 다시 70년이 더 흐른 2040년이 되면 <메카 회의>의 결말처럼 칼리프 국가가 재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러시아와 같은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국가도,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10억이 넘는 인구를 포함한 국가도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움마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사회경제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자원과 자본, 노동력을 확보한 이슬람 연합 국가가 창출될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칼리프의 복원 선언을 중세적 신정국가로의 반동이라고만 이해하는 것 역시 일면적인 것입니다. 도리어 탈식민 운동의 지속이자 심화이며 완성일 수도 있어요. 이 세계의 근본적인 복수화,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뿌리를 상실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무슬림-움마의 터전을 이 세계에 다시 확보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이나 민족이 아니라 무슬림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헤겔이나 마르크스가 '보편사'라고 정립한 역사의 법칙에 종속되는 인간이 아니라, 인류사의 진정한 창조적 주체로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 콤 출신인 마흐드 아잘란. ⓒ이병한

이병한 :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의 캉유웨이의 <대동서>와 견줄 수 있는 작품일 것 같네요.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칼리프의 부활을 선언한 IS가 2014년에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기관지 <다비크>를 읽노라면 '하나의 움마, 복수의 국가'라는 모순, 즉 서구가 주입한 국가간 체제, 작위적인 국경선을 허물고 이슬람적 세계 질서를 복구하겠다는 의사 표명이 확실합니다. IS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울라마 : 이슬람 국가에도 계보가 있습니다. 20세기 최초로 이슬람을 국명으로 삼았던 나라는 파키스탄이었어요.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인도에서 분리하여 세운 국가가 바로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었죠. 그럼에도 결국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비극을 경험하고야 말았습니다. 즉 '일국 이슬람주의'가 실패한 것입니다. 세계주의와 보편주의를 내장하고 있는 이슬람주의는 일국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일국주의를 강제하는 국가간 체제를 지속해야 만이 이슬람주의를 봉쇄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병한 : 램프 속의 거인, 지니처럼 국가 속에 갇혀 있는 움마, 라고나 할까요. 그러하면 현재의 '난민 위기' 또한 20세기의 '국민'으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움마를 회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2016년 시리아 난민 통계를 보니, 이미 중동에 주입되었던 '국민국가' 체제는 내파되고 있는 듯합니다. 터키에 260만, 레바논에 110만, 요르단에 65만, 세르비아에 32만, 이라크에 25만, 이집트에 12만의 시리아 난민이 수용되었더군요. 여기에 이라크와 리비아 난민까지 보태면 더 복잡해질 것이고요. 기성의 국민과 새로운 난민이 혼종됨으로써 국민도 난민도 아닌 '움마'가 되어간다고 할까요. 난민대국 터키에서 '신오스만주의'가 제기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흐름 같습니다. 오스만 말기 국민도 난민도 아닌 움마의 근대화로서 창출된 개념이 바로 '신오스만인'이었습니다.

울라마 : IS가 국제질서와 상충되는 근본적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IS는 현재의 국제질서의 근본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라는 인공국가가 파탄나면서 불거진 난민 위기가 그러하죠. 이슬람에서는 '난민'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라는 것이 애당초 없기 때문입니다. 국경이라는 것 역시도 부재하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시키는 것이 국경입니다. 대지에 철조망을 쳐서 인간의 이동을 가로막는 것이죠. 국가를 만들고, 국경을 쌓고, 국민을 형성했기에 난민 위기가 초래되는 것입니다. 이 '난민 위기' 또한 21세기의 새로운 사태가 아닙니다. 20세기 초 유럽의 질서가 아랍으로 이식되면서 줄곧 난민 위기는 지속되었습니다. 억지로 국민국가들을 만들어 가다보면, 그 국민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곧 난민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난민위기는 '국경 문제', '국가 문제', '국민 문제'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코란>에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이 세계의 하늘과 땅의 주권은 알라에 귀속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영토를 일정한 시기에 점하고 있는 일부의 인간들에게 주권이 귀속될 수 없습니다. 무슬림이 별개의 국가들에 나뉘어서 살아가고, 서로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체제야말로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것입니다. 대지는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르고, 분포되어 있는 자원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특정한 지역이 일시적으로 자연재해로 생활이 곤란해질 수도 있고요. 따라서 이주의 자유는 인류의 생명에 공정과 평등을 보장해주는 제1원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국경의 폐지는 이슬람 질서의 재건에 필수불가결한 사항입니다. 유럽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 민주, 정의, 인권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개별국가권력의 카르텔에 불과한 국가간 체제를 해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본래적으로 내재적으로 '세계화'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늦게 등장한 종교임에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넓은 지역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움마와 칼리프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고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며 사막 지대부터 열대 우림까지, 북아프리카부터 동남아시아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실현해왔습니다. 국가주의에서 세계주의로 흐름이 바뀌는 21세기에 더더욱 강력한 대안적 세계화의 첨병으로 이슬람은 부흥할 것입니다.


다만 현재의 IS는 이슬람의 원리에 기반해 있는 국가가 아니라 전쟁 중에 가동되고 있는 전시체제국가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움마의 복원과 칼리프의 수립을 어떠한 방법론에 기초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사상적 토론이 치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슬람법의 구현을 표명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전시 체제, 치안 유지를 위한 전체주의 경찰국가에 가깝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류에게 요청되는 국민국가의 폐지와 공정한 세계화, 즉 전 지구, 전 인류, 전 생명을 영토적 국민국가로부터 해방시키는 이슬람의 과업은 IS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될 것입니다.

이병한 : 탈냉전 이후 세계화를 이끌었던 미국은 자국 중심주의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 빈 자리를 중국의 물류와 이슬람의 문류가 주도하는 '다른 세계화'가 펼쳐질지도 모르겠군요. 이슬람 사상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국가라는 말의 어원이었습니다. 아랍어로 다우라, 라고 하지요. 본래 뜻은 순환, 변천, 교체입니다. 즉 국가라는 것은 흥망성쇠의 숙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항구적이고 항상적인 존재가 아닌 국가에 성심을 바칠 수가 없다는 논리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국법 위에 이슬람법, 샤리아가 있는 것이고요. 무슬림이 따르고 지키며 귀의해야 할 대상 또한 국법이 아니라 샤리아입니다. 샤리아로 주제를 옮아가 보겠습니다. (계속)


▲ 바드다드 출신인 하삼 알바야티.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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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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