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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는 왕조시대 '正史'의 부활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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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뉴라이트는 왕조시대 '正史'의 부활을 꿈꾸는가?"

[화제의 책]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

이명박 정부의 역사 교육 '분서갱유'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역사학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생물학에 관한 지식은 생물학자에게, 경제학 문제는 경제학자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을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전공의 학자와 정치가가 주도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교과서 검정 권한을 가진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내용을 첨삭 수정하고, 교장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도 교육청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이 같은 처사가 옳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나 역사 교사는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도대체 정부가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가 함께 집필한 역사 교과서 대신에 비역사 전공자가 쓴 이른바 '대안 교과서'를 더 신뢰한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의 역사학과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고 있는 특정 역사 교과서 탄압과 그 교과서 집필자에 대한 '마녀 사냥'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견될 만하다. 도대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이 같은 야만적인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

왕조시대 正史로서 역사 교과서?

▲ <뉴라이트 비판>(김기협 지음,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역사 교육 '홀로코스트'의 중심에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근거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역사 교육 대학살을 감행하는가? 그들을 해부하고 비판하는 수많은 논문과 칼럼이 나왔다. 그 가운데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은 가장 근본적이다. 모든 학문적 논의의 근본은 인간이다. 김기협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그들의 인간관에 근거해서 제기한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데 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맞다. 그러나 그것만인 것이 아니다. 이기적 성향을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행동이 좌우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뉴라이트는 만들고 싶은 것이다." (10쪽)

뉴라이트는 한국이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가 되면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파시즘을 꿈꾸는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파시즘과는 정반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봉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민족주의를 단연코 배제한다. 단지 하나 걸리는 것은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운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근대를 수단으로 해서 반근대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독일 나치즘은 근대를 지양할 목적으로 프로파간다와 대중독재라는 근대적 수단을 사용했다. 이에 비해 뉴라이트는 국가 권력을 전 방위적으로 동원하는 파쇼적 수단으로 자본주의 문명화를 목표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근대적이다. 그럼에도 뉴라이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대의 원칙을 역사 교육에 적용하는 방식은 너무나 전근대적이다. 그들은 왕조시대의 정사(正史) 개념으로 근대국가의 역사 교과서를 이해한다. 왕조를 위해 좋은 역사가 올바른 역사이듯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옹호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역사만이 역사 교과서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민주적이고 반시장적인 뉴라이트 역사 교육관

뉴라이트 역사 교육관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모순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다. 각 개인의 다른 생각을 공론의 장에서 펼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면 자유민주주의는 사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의견의 시장인 여론을 통해 여과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한다.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 교과서는 자유발행제가 돼야 하며, 어떤 역사 교과서를 선택할 것인가는 자유로운 시장, 곧 교육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국가가 교과서 서술의 지침을 제시하고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이 특정 교과서를 선택하지 말 것을 강요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어떤 근거로 뉴라이트는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봉자들이라고 주장하는가? 김기협은 인간 관계는 결국 이기심에 의거해서 구성된다고 보는 신자유주의 인간관과 자본주의 문명관을 그들이 견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적자생존 원칙에 따라 승리한 자가 성공한 삶을 산 것이며, 역사 교과서는 그런 삶을 영위한 사람들의 관점에 입각해서 기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건설을 둘러싼 노선 투쟁에서 이승만이 승리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박정희 주도아래 근대화 혁명이 성공을 거뒀다는 결과에 근거해서 역사 교과서 서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 말대로, 역사 교육은 개방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시민 교육을 하며 나아가 사회 비판적 안목을 형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진다.

반면교사로서 역사

역사교육의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요청되는 것이 다양성이다. 적자생존은 진화의 가시적인 현상일 뿐, 본질은 다양성의 확대다. 생물종의 다양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유전자 풀(pool)을 늘려가는 과정이 진화다. 역사란 흔히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이 말뜻은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로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가 이룩한 빛나는 업적으로 그들이 한국 현대사에 드리운 어둠을 은폐하는 역사 교과서는 반면교사가 될 수 없다.

뉴라이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는 연설을 함으로써 대통령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 투쟁을 벌였던 애국지사의 자손들은 비참하게 사는 데 일제 협력자의 자손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예회복은 아직까지 안 됐는데 독재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계속 권력 가까이에 있는 승자의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옹호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의식인가?

사마천 이래 역사가들은 "역사는 과연 정의로운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실증사학은 승자 중심의 역사를 탈피할 수 없다. 사마천은 천하의 나쁜 도적은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리고 살았지만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는 역사가 과연 천도(天道)를 실현하고 있는지를 회의했다. 그럼에도 그가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무릅쓰고 역사를 썼던 이유는 현실의 부조리를 역사로 기록함으로써 현실이 결핍하고 있는 천도를 역사 서술로 보상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가란 실제 일어난 역사의 불의를 역사서술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역사란 나의 존재와 인식을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하려는 인간적 노력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를 낳을 수 있으므로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가 될 수 있고,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성공을 낳음으로써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가르치는 것이 역사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의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개발독재를 21세기에서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가가 대한민국을 이끌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것은 역사다. 고로 모든 것은 역사다." 하지만 특정 관점과 이데올로기에 의거해서 변화를 보지 못하거나 막는다면 모든 것을 역사로 만들 수 없다. 사마천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여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통달하는 것을 역사서술의 목표로 삼았다. 오늘의 역사 교육이 이 같은 역사의 높은 이상과 도덕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더 이상 삶의 스승이 될 수 없다.

21세기 '환경 시대'로의 전환을 위한 역사 교육

신자유주의 인간관과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이 뉴라이트는 한국 근·현대사를 자본주의 역사의 관점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가 한국 자본주의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21세기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인류가 계속해서 자본주의 문명을 향한 '돌진적 근대화'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문명화를 위한 '성찰적 근대화'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가?

독일의 바이츠제커(E. U. von Weizsäcker)는 20세기가 국민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전지구적 정치가 요청되는 '환경의 세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경제 시대'의 방식대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경제 개발을 한다면, 인류의 멸망은 시간문제다. 2007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의 참석자들도 인류가 직면한 최대 문제로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를 꼽았다. 이제 역사의 화두는 무한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 돼야한다. 이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해서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역사 교과서를 집필해야 한다.

끝으로 나는 뉴라이트가 제기한 문제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정당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은 잘못 태어난 국가라는 원죄의식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내전이 헤게모니 투쟁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인 정체성을 결정하는 코드가 민족인가 국가인가와 대한민국이 어디로 향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정립을 둘러싸고 벌이는 역사 담론 투쟁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의 정치화'를 지양하고 '정치의 역사화'로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들에게 논쟁의 주도권을 되돌려 줘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정상화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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